[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소사나무

신록은 어느새 녹음으로 변하였다. 올해는 비도 참 특별한 모습으로 내리는데, 어찌 되었든 비 그치고 나니 녹음은 더욱 짙푸르러진다.

멀리서 보아도 잎새들이 활기에 가득 차 반짝거린다. 충만해진 생명의 기운 때문일 것이다. 이런 날은 꼭 숲길을, 나무들 곁을 걸어야 한다. 내 스스로에게 그 맑은 기운을 채워 넣어야 한다.

소사나무도 녹음이 멋진 나무의 하나이다. 대부분의 소사나무들은 바람이 가장 많이 들고 나는 바닷가 산언덕 즈음에 무리지어 숲을 이루어 특별한 풍광을 자아낸다.

굵어도 아주 크지 않고, 적절히 자연의 선이라고 말해도 좋은 만큼의 이리저리 부드럽게 굽은 줄기 하며, 운치 있게 흰빛 도는 수피가 점차 짙어가는 초록의 잎새와 아주 멋지게 어울린다. 그 숲을 바라보는 시선의 끝머리에 넘실대는 바다라도 보이면 더욱 근사하다.

소사나무는 자작나무과에 속한다. 큰키나무라고 하기에도 작은키나무라고 하기에도 어정쩡한 높이인데, 줄기가 밑에서 하나로 올라가는 것은 교목성인 특징이지만 키가 크게 자라지 않는다. 한때 소사나무는 한국에만 있는 나무로 알려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소사나무가 속한 서어나무집안을 통째로 연구한 연구자에 의해, 중국이나 일본의 해안가에도 분포하는 산서어나무와 같은 것으로 판명이 되었고, 그래서 한국 특산임을 알려주던 학명은 국제적인 식물명에 관련된 규약을 따라 그 지위를 잃게 되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친숙한 소사나무란 이름만큼은 버리지 못하여 그냥 그리 불린다.

소사나무의 꽃은 사실 이미 피었다, 암꽃과 수꽃이 따로 있는데 풍매화이니 화려한 꽃잎은 아니지만 적어도 수꽃만큼은 녹갈색의 독특한 색감이나 송이송이 달리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잎은 이 집안 식물 중에서 가장 작다.

달걀 모양으로 손가락 한두 마디쯤 된다. 가을엔 아주 작은 열매가 날개 같이 생긴 포에 첩첩이 달려 가지마다 매달린다. 소사나무란 이름의 유래는 명확히 알려진 바 없는데, 소사나무가 속한 서어나무를 한자로 서목이라고 하였기에 잎도 키도 작은 서어나무란 뜻의 소서목에서 소사나무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소사나무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은 분재를 하는 분들이다. 흰빛이 나는 듯한 회갈색의 수피는 세로 방향으로 살짝 골이 지어 때깔이며 분위기가 아주 멋지며 연륜이 쌓일수록 더욱 품격을 높여간다. 거기에 적절히 작은 잎, 봄에 오래 묵은 가지에서 돋아나는 연두빛 새잎의 아름다움, 거기에 가을이 되어 드는 단풍빛은 다소 붉은 기운이 돌아 멋진 빛깔을 보여준다. 거기에 비교적 관리하는 데 어렵지 않은 장점도 있어 이래저래 분재의 소재로 최고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과 분재에 대한 애정이 오히려 해가 되기도 했는데, 바닷가에 아주 풍치 있게 자라던 수많은 소사나무들이 뽑혀 나갔다. 사실 섬지방에 가보면 집집마다 캐어 심은 소사나무 분재 몇 개씩은 다 가지고 있을 정도이다. 분재는 작은 나무부터 해를 쌓아가며 스스로 모양을 만들어 가야 하는데, 그 시기를 빨리 하여 돈을 벌고자 하는 상인들에 의해 생긴 폐해이다.

자연은 자연 속에서 볼 때 가장 아름답다. 적어도 내게는 분에서 어렵게 수십 년을 살아온 값비싼 분재 소사나무보다 이름도 없는 바닷가 산언덕에서 바람을 이고 마음껏 자라는 그 소사나무들이 훨씬 아름답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