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작가] 고봉준 평론가 <유령들> 발간… 현실과 문학의 틈 메워

각자의 개별적 이야기를 통해 보편적 진실을 말할 때, 우리는 그것을 '문학'이라 말한다.

좋은 문학 작품은 그 보편적 진실을 낯설게 바라봄으로써 허위와 가식을 벗기고 새로운 세계의 모습을 제시하는 작품이다. 때문에 근대와 함께 열린 저 찬란한 문학의 시대에 최고의 작가는 또한 당대 최고의 사상가이자 지식인이었다.

하지만 이 당위적 수사가 작금의 현실에서도 작동하는가? 문학이 정치적 문제뿐 아니라 개인적 문제, 그리고 현실의 모순까지 떠맡는다는 이 말은, 이제 교과서에나 등장하는 말이 됐다.

일본의 문학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은 바로 그 근대적 의미의 문학의 역할(문학이 개인과 현실의 문제를 떠맡는 것)이 끝났기 때문에, 근대 문학의 시대는 끝났노라고 선언했다. 그의 역작 <근대문학의 종언>의 요지다.

문학평론가 김종철은 "문학이 모든 것을 말할 수 있었기에 문학을 (전공)했다"고 말했고, "문학이 언제부터인가 협소한 범위로 한정돼 버렸다"며 문학을 버리고 생태운동으로 돌아섰다. <녹색평론>을 내기 시작한 무렵이 1991년이니까, 그가 '문학의 협소함'을 느낀 것은 근 20년이 된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문학은 모든 것을 말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믿는 문인들이 있고, 용산참사를 계기로 200명에 가까운 문인들이 선언문을 만들고, 1인 시위를 하며 이런 고민을 표출했다. '정치적이면서 동시에 미학적이고 싶다'는 이중의 욕망은 최근 몇 년 간 문학계의 이슈가 됐다.

최근 발간된 고봉준의 <유령들>(천년의시작 펴냄)은 이런 첨예한 고민을 담은 평론집이다.

몫 없는 자들, 유령들

당연한 말이지만 말과 글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언어에 민감하다. 거의 모든 평론집 제목은 저자의 문학관을 드러내는 말이 집약된 형태다. 이 책 <유령들>도 마찬가지다. 유령이란 누구인가.

'유령의 최대 문제는 존재 자체가 문제시된다는 것이다. 어떤 행동도 하지 않을 때조차 그들은 문제적이다. 현재에 속하지만 존재감을 부정당한 것들, 그들의 언어는 발화되는 동시에 '소리'가 된다.' (4페이지 서문)

이 유령은 죽어서도 구천을 떠도는 용산참사의 희생자 일 수도, 살아서도 시체로 간주되어 추방당한 네팔인 미누같은 이 시대 '몫 없는 자'일 수도, 쉴 새 없이 떠들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문학 작품 자체 일 수도 있을 터, 저자는 이 모든 것을 '유령'이란 말로 표상함으로써 작금의 현실과 문학의 간극을 잇고 있다.

총 3부로 구성된 평론집은 인문학 이론, 시인론,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시인들의 시를 대상으로 쓴 주제론을 차례로 엮었다. 1부는 이론적 성격의 글을 묶었는데, '정치적인 것'에 대한 고민이 주를 이룬다. 시와 정치에 관한 세 편의 짧은 글, 철학자 랑시에르에 관한 독자적 읽기가 담겼다.

평론은 2차 텍스트다. 시나 소설, 영화나 드라마가 없다면 그 콘텐츠에 대해 이러저러한 해석을 하는 평론은 존재하지 못한다. 이 말은 평론집 <유령들>이 2000년대 문학계 변화의 반영이라는 뜻이다. 이전 두 권의 평론집(<반대자의 윤리>, <다른 목소리들>)을 낸 저자는 이 책 2부에서 그 두 권의 책 출간 이후 발견한 작가들과 작품을 소개한다. 그가 주목한 시인은 김이듬, 최금진, 안현미, 신해욱, 강성은, 이문숙, 심보선, 황성희, 이근화, 신현정 등이다.

그 선정한 기준은 아마 다음과 같을 터다. '거칠게 말하면, 문학의 존재이유는 합의를 방해 또는 무산시키고, 경험을 언어화할 수 있는 방식의 범위를 늘리는 새로운 형식의 출현에 있다. (…) 현실의 변화와 개조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하나의 현실, 즉 견고한 대상으로서의 현실이라는 관념을 승인한다. 문학은 바로 그 '견고한 대상으로서의 현실이라는 관념'(합의)이 실상 무언가를 괄호침으로써만 가능하다는 것을, 더 풍요로운 장면과 그 사건들을 은폐함으로써만 성립될 수 있음을 증언한다.'(제 1부 정치적인 것, 46페이지)

이전 80~90년대와 단지 형태가 다른 시가 왜 정치적이냐는 질문, 혹은 이전 세대 비판에 대한 저자의 답변이다. 이들이 보는 '정치적인 시'는 신문 정치면 기사를 모티프로 쓴 시가 아니다. 이들에게 정치적인 것은 이를테면 "시를 쓰는 지게꾼"이 되면 "딴사람의 시같이 될 것이다. 딴사람-참 좋은 말이다. 나는 이 말에 입을 맞춘다"(김수영 <생활의 극복>)고 말한 김수영처럼 '온몸으로 쓰는 시' 같은 것이다.

3부에서는 200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시인들의 시를 대상으로 쓴 주제론을 엮었다. 젊은 시인들의 공통된 특징들, 미래파 논쟁 이후 시단의 풍경, 시 문법의 변화 등을 설명하고 있다. 이 한 권의 책은 문학과 정치에 대한 지식인의 고민, 그 고민이 개별적으로 드러난 시 읽기, 다시 이 개별성이 빚어내는 문학계 풍경을 그리고 있다.

시나 소설은커녕 영화 볼 짬도 내기 힘든 시대에 2차 텍스트인 평론을 굳이 읽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대답한다. 굳이 볼 필요는 없지만, 그 모든 텍스트를 독자 스스로 낯설게 바라보는데 평론은 조언자가 될 수 있다고. 문학이 개별적 사실을 보편적 진실로 승화시킨다면, 평론은 그 개별적 작품들을 통해 지금 여기를 구체적 언어로 전달한다.

젊은 비평가의 시선

문학평론가 고봉준을 비롯해 최근 3~4년 사이, 문학계는 젊은 비평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늘었다. 1970~1980년대 생의 이들 평론가 중 상당수가 출판사 문예지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한다. 편집위원은 문예지 작품을 청탁하고, 신인상 심사에 참여해서 신인을 등단시키고, 단행본을 낼 작가를 편집진과 결정하는 등 '문학판'을 꾸리는 데 결정적으로 역할한다.

이 편집위원이 30~40대 젊은 평론가로 바뀐다는 것은 이전 세대와 다른 감각의 작가들이 출현할 가능성이 높아짐을 의미한다. 이들 젊은 평론가들의 평론집을 읽어보면 이들의 시선을 가늠할 수 있다. 최근 발간된 두 권의 평론집을 소개한다.

출판사 이룸이 내는 문예지 <자음과 모음>의 편집위원인 복도훈 평론가가 낸 <눈먼자의 초상>(문학동네 펴냄)은 소설에 집중한 평론집이다. 박민규, 강영숙, 김영하, 신경숙 등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주목받은 작가들의 작품을 심도 있게 분석했다. 저자는 김연수의 장편소설 두 권을 심층 분석했고, 김훈, 신경숙, 김경욱의 사례를 들어 역사소설의 새로운 경향에 대해 설명한다. 그가 주목한 작품과 작품, 작가에 대한 설명을 읽다보면 2000년대 등단한 평론가들이 주목하는 지점을 알 수 있다.

<눈먼자의 초상>이 개별 작품과 작가론에 집중했다면, 소영현의 <분열하는 감각들>(문학과지성사 펴냄)은 각 작가들의 작품이 문학장 안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룬다. 쉽게 말해 한유주, 김유진 등 눈에 띄는 신예작가들의 특징이 무엇인지, 그 특징 중 하나인 그로테스크함은 어떤 형식인지, 이 형식이 왜 의미를 갖는지를 설명하는 방식이다.

출판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한 <완득이> 사례를 통한 청소년 출판시장 분석, 비평계를 달군 랑시에르에 관한 사유, 청년문학과 성장 소설 계보 설명 등 '문학계 지도 그리기'에 집중했다. 저자 소영현 평론가는 출판사 웅진이 운영하는 문학웹진 <뿔>의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