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작가] 김두식 경북대 교수<불편해도 괜찮아> 출간, 영화·드라마 등 80여 편 인용 법과 인권 풀어내

법전을 보고 있으면 우리나라가 두 개의 말을 쓰는 나라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자로 빼곡한 그것은 마치 안드로메다의 언어로 쓰인 경전 같다.

사람이 만든 법이 사람을 지배를 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일 게다. 써먹기는커녕 제대로 읽기조차 불가능한 난해함. '접근 불가'라는 고정관념은 사람들에게 법에 대한 무의식적인 공포감을 만든다.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안드로메다의 언어를 풀어 대중의 말로 전한다. 법률 전문가 집단과 대중 사이의 통역자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한 신문에 법률에 관한 칼럼을 쓰던 그는 2002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기독교 평화주의에 관해 쓴 책 <칼을 쳐서 보습을>을 냈고, 2004년 <헌법의 풍경>을 통해 대중에 알려졌다. 이 책은 국내 왜곡된 법조 문화와 시민의 기본권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다.

불편을 감수하는 것

지난해 미국으로 연구를 떠난 그는 부지런히 글을 써 3권의 책을 마무리했는데 <불멸의 신성가족>,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를 냈고, 지난 주 마지막으로 인권에 대한 책<불편해도 괜찮아>를 냈다. 법과 인권, 생각만해도 딱딱하고 지겨운 이 두 이슈를 영화, 드라마, 소설, 시트콤 등 스토리텔링이 있는 작품 80여 편을 인용해 맛깔스럽게 풀어내고 있다.

지난 한 해 미국에서 이 책을 썼는데, 돌아와서 한국사회가 변했다고 느꼈나요?

"우리가 18세기 국면에서 싸우고 있다는 굉장히 좋지 않은 느낌을 가져요. 법학 입장에서 볼 때 국가로부터의 자유권은 18세기에 논의됐고, 19세기 후반부터는 사회복지나 보다 확대된 의미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지요. 누가 어디 잡혀가고, 국가권력으로부터 부당하게 조사를 받고, 기소 당하는 일, 이런 문제를 갖고 주로 싸우는 건 법학에서는 200년 전 얘기라고 보면 되죠. 자유권에서 시작해서 복지를 넘어 그 이상의 인권으로 넘어가야 하는 세계사적 흐름 속에 있는데 옛날에 싸웠을 일이 논의되는 게 안타깝다고 생각해요."

이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인권과 영화 관련 강연도 하셨는데, 실제 로스쿨 수업에서도 영화와 인권에 관해 이야기기하나요?

"이번 학기에는 <경계도시 2>를 감독님 모셔서 같이 봤어요. 형사소송법에서 의미있는 판결이 많이 나왔던 송두율 교수사건에 관한 것이고, '변호사의 역할은 무엇인가?'에서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이지요."

우리 사회나 사법 제도에서 특히 인권에 취약하다고 생각하는 분야가 있나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경찰이나 검사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많고, 이 드라마에서는 흔히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수사하기 위해서 폭력이 동원되기도 하죠. 폭력에 의한 구원, 그것도 어떻게 보면 신화인데요. 악하고 싸우기 위해서는 우리도 더 강한 폭력을 갖고 상대방을 제압할 수밖에 없다는 거대한 흐름인거죠. 그런 맥락 때문에 피의자, 피고인의 인권을 이야기하기 곤란한 상황이고, 우리가 피의자 피고인과 동일시하기를 원하지 않죠. 자꾸 그런 걸 보면서 자기가 권력을 갖기를 원하고요. 범인을 잡고 쫓으려고 하지, 억울한 사람에 대해 이상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가 문제고 단순히 법학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피해자의 법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수사기관은 무엇을 해도 좋다는 인식이 문제인거죠."

이 전 책들이 국가와 개인과의 관계에 중점을 둔 책이라면 이 책은 폭이 더 넓어진 것 같습니다.

"여러 인권문제 중에서 주로 차별에 대해서 다뤘는데, 국가만이 차별하는 게 아니라 개인도 개인을 차별하는 일이 일어나잖아요. 그런 점에서 차별에 관한 시각을 좀 바꿔보자고 이야기하는 책이에요. 우리가 왜 사람과 사람사이에 불편함을 느끼는지, 어떤 것에 불편함을 느끼고 왜 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지에 대해서 말이지요."

책으로 넘어가자. 제목처럼 책의 키워드는 '불편'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인권이란 말을 멀게 느끼는 이유는 당장 내 문제가 아니면 살아가는 데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차별받지만, 불편하지 않다는 이유로 무심해진 태도 때문에 이 차별은 묻혀버린다. 저자는 '누군가 알아서 잘하고 있겠지' 방심하는 순간 인권 유린이 시작되고 '당장 나 먹고살기 힘든데'하고 넘어가다 보면 그 일이 구조화되어 내 문제로 바뀌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청소년,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인권에서 시작해 노동자, 종교와 병역거부, 검열 등 국가권력, 인종차별과 제노사이드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아우르고 있다.

입말 글의 맛

이 책을 포함해 김두식 교수가 쓴 대다수의 책이 친절한 구어체로 쓰였다. 그의 글은 상냥한 존댓말이 인상적인데, 이 말투는 독자가 딱딱한 법률 용어와 권력 구조를 쉽게 알 수 있게 도와준다.

'누군가 저에게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기회를 준다면, 먼저 최근 10년간 한국 드라마에서 따귀 때리는 장면만 모두 모아서 보여준 뒤 그 문제점을 지적해보고 싶습니다. 이 다큐멘터리 초반 10분 동안은 그냥 아무 설명 없이 따귀 장면만 계속 보여주겠습니다. 짝, 짝, 짝, 짝……' (3장 '뺨따귀로 사랑 표현하기-여성과 폭력' 중에서)

선생님 글을 '입말 글' 이라고 하던데, 존댓말로 책을 쓰잖아요. 이를 고수하는 이유가 있나요?

"이렇게 쓰는 게 훨씬 잘 써지고요. 생각도 진전이 훨씬 빨라요."

평소 보신 영화나 소설을 일기에 써둔다고 했는데, 일기도 이렇게 쓰는 건 아니겠죠?

"그럴 리가요. 저는 기독교인인데, 대학 1학년 때부터 교회 다니면서 성경말씀 듣고 저녁에 일과 정리하면서 쓰고 모은 거죠. 많이 쓸 때는 한 달에 A4 50장씩 쓸 때도 있고 적게 쓸 때도 원고지 300매 정도는 씁니다."

법이나 인권에 대해 쉽게 풀어서 설명하면서 선생님의 일상을 곁들인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제가 기준이란 뜻은 아니지만, 저는 잘 아는 사람이 쉽게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는 저자의 권위에 눌려서 책이 이해가 안 되면 '내가 머리가 나쁜가 보다' 생각하는데, 번역이 잘못된 경우가 많거든요. 한국의 법학 책은 한국말이 완벽한 사람이 읽어도 이해가 안 되는 책들이 있고 다른 분야 책들도 마찬가지죠. 너무 어려운 학문세계가 된 거잖아요. 저는 책을 쓰는 사람들이 좀 더 노력해서 자기가 더 이해하고 잘 소화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훨씬 쉬워질 것 같고요."

저자는 딸 아이의 사연으로 이야기를 풀어 쓴 청소년 인권 부분을 책에 넣느냐, 마느냐를 두고 아내와 딸의 의견을 듣느라 한 달을 미뤄 책을 출간했다. "딸도 30%의 지분을 갖고 동등하게 이야기를 나눈다"고 덧붙였다. 저자가 남기는 말은 결국 '남의 입장이 되어 보라'는 것인데,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딸에게 이를 보여준 셈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세상 누구도 소수자가 아니다. 책의 메시지는 이것이다.

'마지막 교정작업 중인 저에게 아내가 물었습니다. "당신이 이 책에서 말하려는 인권은 도대체 뭐야?" 제가 대답했습니다.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거야." 예수님 흉내를 낸 대답인데 인권의 정신을 이보다 멋지게 요약한 문장도 없는 것 같습니다.' ( 책머리에 '새로운 불편을 느끼기 위하여' 중에서)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