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골풀

습한 무더위가 참 힘들게 한다. 어느 계곡쯤 찾아가면 골바람이 시원하려나 상상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원한 곳의 하나인 태백에도 열대야가 왔다니 참 대단한 더위이다.

콘크리트 숲에서의 여름보다는 풀과 나무를 스치는 바람이 부는 숲으로의 피서가 간절해진다.

숲에 가면 이즈음 반드시 만나게 되는, 그것도 물이 가깝게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반가운 풀이 있다. 골풀이다. 골풀을 보면 정확히 알지는 못해도 한번쯤은 어디선가 보았을 것 같은 모습이고 이름도 들어 본 듯한 느낌이 들 텐데, 맞다. 골풀은 그만큼 우리와 가까운 곳에서 자라며, 쓰임새도 제법 요긴하다.

골풀은 골풀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산의 초입의 물이 자작한 습한 곳, 저수지나 물길이 가까운 들길 가장자리, 오래된 논의 물길이 이어지는 그 어느 즈음에 자란다. 무릎 높이나 그보다 좀 크게 줄기가 싱싱하고 가늘고 뾰족하게 한 무더기씩 쭉쭉 올라간다.

그리고 꽃이 핀다. 이 꽃은 매우 독특한데 정확하게는 줄기 끝에 꽃들이 모여 있는 꽃차례가 달리고 그 아래에는 포라는 식물의 기관이 한 뼘 이상 달린다. 색이나 모양이 원줄기와 구분이 잘 가지 않는 까닭에 줄기의 3분의 2쯤 되는 높이 중간에 꽃들이 불쑥 올라와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연녹색의 작은 꽃들이 고운 꽃잎을 펼쳐내어 일반적인 기준의 꽃들과도 상당히 다르다. 가을이면 꽃은 열매로 익어가며 황갈색으로 변하고 줄기는 훨씬 진한 초록을 띤다.

잎 역시 독특하다. 사실 잎은 찾기가 쉽지 않다. 줄기의 아래 부분에 비늘모양으로 붙어 있는 것이 바로 잎의 포가 퇴화된 모습이다. 그동안은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임에도 불구하고 눈 여겨 보지 않으면 꽃이 피었는지 말았는지 모른 채 지나쳤을 것이다.

쓰임새로 가면 제법 요긴하다. 우선 줄기를 잘라 돗자리나 방석 등을 짜서 썼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다다미방 위에 까는 자리를 골풀로 만든다고 한다.

한자로는 등심초(燈心草)라고 한다. 골풀의 줄기 껍질을 벗긴 속심을 등불을 켜는 데 심지로 써서 붙은 이름이다. 한방에서도 같은 이름으로 속 부분을 주로 쓴다고 알려져 있는데 흔하면서도 약효가 높은 약재로 소문이 나있다. 열을 내리고 가슴이 아프고 불안할 때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고 이뇨제로서 한방이나 민간에서 많이 쓴다. 소변을 잘 나오게 하여 비뇨기결석, 소변장애 등에 두루 쓰이고 부기를 내리고 신장의 기능을 높인다고 한다.

최근에는 물이 있는 정원을 만들거나 습지를 복원하는 데 관상적이거나 기능적인 용도로 관심을 모은다. 물과 볕이 있다면 어디서든 싱싱하게 아주 잘 자란다.

골풀열매
골풀의 등심초란 별칭이 참 마음에 든다. 등불의 심지를 밝히는 풀. 무언가 중심이 상실된 듯 소란스럽기만한 이 세상에 골풀의 싱그러운 초록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