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좁쌀풀

식물 보는 사람들은 날씨에 매우 민감하다. 제대로 핀 꽃 한번 만나고 싶어도, 충실히 익은 적기의 열매를 만나고 싶어도 지난해와 비슷하게 길을 떠나서는 낭패하기 쉽다.

동물과는 달리 움직이지 않으니 지난번 장소를 그대로 찾아가면 되겠지 싶어도 기대했던 식물이 이런 저런 이유로 나타나지 않거나 때를 못 맞추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더욱이 모처럼 찾아간 꽃 산행에 비가 내려 꽃송이가 망가지거나 햇볕이 없어 꽃을 열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 언제나 예민하게 날씨를 주목해야 한다.

그런데 올해는 하도 변덕스럽고 극과 극을 달리는 날씨의 변화에 적지 않게 당황하고 있다. 장마도 끝나고 후텁지근한 날씨가 견디기 어렵다고 생각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시 우중충한 날씨가 마음을 무겁고 지치게 만든다. 이런 날 좁쌀풀의 환하고 풍성한 꽃송이들은 분명 마음을 밝고 가볍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좁쌀풀은 앵초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분홍꽃의 앵초와 꽃이나 잎모습도 크기도 느낌도 전혀 다르지만 아름답다는 점은 같다. 물론 식물에게 있어서 속이나 과 같은 집안을 나누는 일은 꽃이나 열매의 구조를 따지는 일이니 이 두 꽃들도 사림이 보는 선입견을 빼고, 구조적으로 들여다 보면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키는 보통 허벅지 높이쯤 큰다.

좁쌀풀이 자라는 것은 주로 습지 주변이다. 물속에서 자라는 것은 아니지만 주로 습한 초지에 볕이 잘 드는 그런 곳에서 자란다. 마치 따가운 여름 햇살을 꽃잎에 다 담은 듯 밝은 노란색의 꽃들이 송이송이 가득 달린다.

꽃말은 별 혹은 동심의 꽃이란다. 사실 꽃말이란 것이 우리나라의 문화가 아닌 까닭에 이 꽃말은 나중에 누군가가 만들어 낸 것처럼 생각되지만 꽃잎이 다섯 장 아주 적절하게 벌어져 별이라고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고, 동심을 느낄 만큼 밝으니 이 말에도 의의는 없다.

이 꽃들은 이미 여름이 시작할 무렵부터 피기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만나진다. 별을 닮은 꽃들은 한 송이씩 달리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는 고깔 모양의 원추형 꽃차례를 만들며 달리니 풍성해 보인다.

잎은 좁은 타원형인데 돌려나거나 마주나기도 해서 이 식물을 특징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좁쌀풀이이란 이름은 작은 꽃들이 다닥다닥 많이 달려 붙은 이름이라는데 사실 꽃의 이미지와 걸맞은 건 아니다. 누구는 꽃이 아니라 꽃봉오리가 좁쌀 같다고 하는 이도 있지만, 꽃봉오리도 좁쌀처럼 작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노란꼬리풀이라는 별명도 있다.

한자로는 황련화(黃蓮花)라고 하며 한방에서 쓰인다. 여름에 베어 말렸다가 쓰는데 소염, 지사, 지혈 작용 등이 밝혀졌다고 하고 그에 따라 설사, 위염, 각혈, 적리, 치질로 인한 출혈 등에 쓴다고 알려져 있다. 봄의 어린 잎은 나물로 먹을 수 있다. 이 환한 좁쌀풀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다면 그때는 가을이 온 것이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