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냉초

냉초가 시원하게 피었다. 늦여름의 냉초모습이 초록 녹음과 어우러져 더없이 시원하다. 남보라빛 꽃빛깔도 아름답게 시원한 빛깔이며, 작은 꽃들이 모아진 꽃차례의 끝이 자유로운 영혼을 닮은 듯 그 끝이 하늘을 향해 뻗은 듯 휘어진 모습도 시원하다.

다른 풀들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층층이 달린 잎들도 그 배열과 초록이 시원하고 무엇보다도 허리 높이를 넘어서 훌쩍 큰 키가 시원스럽다., 이렇게 이리저리 시원해서 냉초인가 생각해보았는데 아니란다.

이 식물의 뿌리를 한자로 냉초(冷草) 라고 쓰며 여인들의 냉증에 효과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다. ‘아! 그렇지 옛 어른들은 풀이나 나무의 쓰임새에 지금의 우리보다 훨씬 많은 지혜를 담고 계시지’ 하는 생각이 그제야 떠올랐다.

냉초는 현삼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산에서 그것도 다소 높은 산의 다소 습기가 있는 곳에서 자란다. 우선 크게 자라는 줄기에 달리는 잎만으로도 충분한 개성이 나타나는데 한뼘쯤 되는 길이의 잎 세장에서 많게는 여덟 장까지 자루도 없이 줄기에 돌려나는데 그것이 여러 층을 이루어 달린다. 꽃이 없이 잎만으로 금새 구별할 수 있는, 그것도 큼직해서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것이 식별상의 장점이다.

꽃은 한 여름에 핀다. 5갈래로 갈라지는 꽃받침에 통보양의 남보라색 꽃들이 달린다. 하나하나의 꽃은 매우 작아 5mm는 넘지만 1cm도 훨씬 못 미치는 아주 작은 꽃 들이 작은 꽃자루를 가지고 차례로 모며 달린다. 포도송이처럼 달린다고 생각하면 쉬운데 좁고 길게 달리는 차이점이 있다. 아래서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차례로 피어나간다.

이 작은 꽃송이들도 좀 더 가까이 확대경이라도 들고 들여다 보면 그 안쪽에 털이 나와 있고, 키가 엇비슷한 수술과 암술이 꽃잎 밖으로 나온 모습을 볼 수 있다. 식물이란 것은 알면 알수록 큰 시야로 볼수록 작게 확대하여 들어갈수록 각각 무한대의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는 것은 언제나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다. 마른 껍질로 일어 벌어지는 열매는 가을에 익는다.

쓰임새로 치면 우선 어린 순은 나물로 먹는다. 생잎을 먹는 것이 좋지만 약간 쓴 맛이 있을수도 있어 우려내 무쳐 먹기도 한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약용으로의 쓰임새가 있는데 주로 민간에서 이루어지는 요법이라고 한다. 그밖에도 여자들의 대하증을 비롯해 열을 내리는 효과 등이 있고 하여 감기, 각기병, 류머티즘, 관절염 등 다양한 증상에 처방한다고 기록돼 있다. 민간에서 약으로 쓸 때는 뿌리를 끈적일 정도로 달여 놓고 조금씩 물에 풀어 복용한다고 한다. 한방에서는 전초를 말린 것을 참룡검(斬龍劍)이라 한다.

최근에는 관상적인 가치로 주목을 받는다. 처음 말한 키나 꽃이나 잎이나 어느 하나 빠질것 없이 개성 있고 그래서 더욱 훌륭한 조경소재가 될 수 있다. 독특한 풍광을 만들 수 있는 화단용 식재의 소제는 물론 꽃꽂이용으로도 이용이 가능하다. 다만 더위에 약한 점을 고?여 바람이 통하는 곳에 반그늘쯤에 키우는 것이 가장 좋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쪽에서는 보기 어렵고 주로 중북부 지방에 자라고 중극으로 이어져 북쪽의 시베리아까지 분포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고 보면 찬 것을 좋아하여 냉초는 아닐까 하는 유래에 대한 새삼스러운 의심이 다시 한번 고개를 든다. 식물이름에 냉초라는 것이 처음엔 좀 어색했는데 이러한 궁리를 하다보니 이래저래 냉초는 냉초가 가장 어울리는 이름인가 보다. 민간에서는 민들냉초, 숨위나물 같은 재미난 별칭들도 떠돌아 다닌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