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안내] 독특한 만남과 사건의 도미노 속 밝혀지는 비밀

● 좀비들
김중혁 지음/ 창비 펴냄/ 1만 1000원

소설가 김중혁을 떠올리면 몇 가지 이미지가 함께 그려진다. 대다수 386 세대가 그러하듯 음악과 영화에 해박한 지식을 지닌 그는 한 때 요리 관련 잡지사에 기자로 일했고 모 일간지에 맛집 전문 기사를 연재하기도 했다.

작가가 작품을 구상하며 종종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는 명함만 파면 전문가로 활동해도 될 정도의 실력을 자랑한다. 새로 출시된 컴퓨터나 전자제품을 누구보다 먼저 받아들이는 얼리 어댑터(early adapter)이기도 하다.

그를 책으로 만나 본 독자는 그 발랄한 문체와 재미에 빠진다. 그의 소설이 '재미'를 주는 데는 앞서 나열한 이력과 취미가 한몫 한다. 김중혁 소설의 근저에는 공통 취향을 가진 두 인물들의 반복과 변주가 배치돼 있는데, 이 배치가 그의 소설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소설적 긴장감을 형성하는 동시에 공통 취향의 공간은 독자를 무리없이 공감하게 만든다. 이를테면 음악을 모티프로 쓴 작품을 묶은 두 번째 단편집 <악기들의 도서관>이 그렇다.

서두가 길었다. 그가 등단 후 10년 만에 낸 첫 장편 <좀비들>은 이 연장선에 있다.

주인공은 전국을 다니며 휴대전화 수신감도를 측정하는 일을 하는 채지훈. 갑작스럽게 죽은 형이 남긴 수많은 LP판 가운데 스톤플라워라는 1960년대 록그룹을 알게 된 지훈은 그들에 대한 자료를 찾으면서 도서관에서 일하는 거구 뚱보130, 스톤플라워 리더의 자서전을 번역한 할머니 홍혜정과 딸 홍이안을 차례로 만난다.

홍혜정은 지훈이 어느 날 일을 하며 알게 된 '아무 전파도 잡히지 않는 기괴한 곳, 고리오 마을에 살고 있다. 이 마을을 배경으로 첨단과 아날로그가 뒤섞이고, 현실인 것 같으면서도 현실이 아닌 새롭고 혼동된 세계가 그려진다.

소설이 시작되고 한참 후에도 좀비는 등장하지 않고 독특한 만남과 사건들이 도미노처럼 이어진다. 마침내 좀비가 나타나면서 마을이 봉쇄되고 좀비를 제거하려는 군인들이 나타나면서 마을의 비밀과 좀비들의 정체가 조금씩 밝혀진다. 책의 제목은 '좀비들'이지만, 사실 소설에서 좀비의 존재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이 책은 좀비로 호명되는 죽은 이들, 혹은 살아있는 이들에 대한 잃어버린 기억들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는 1960년대 팝음악, 음식 등 갖가지 재료로 일관되게 자신의 소설 안에서 무한대의 욕망과 경험들을 반복·중첩시켜 가며 소설 공간을 확장시켜 나간다. 역설적이게도 이 확장은 종국에 이르러 개인의 순수한 욕망을 만날 수 있도록 가벼워지고, 이 가벼움은 다시 무한대의 욕망과 경험들을 가로지른다. 김중혁의 이런 작업은 개인의 욕망을 직접 대면케 하는 동시에 소설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여겨진다. 재밌지만, 가볍지 않은 소설, 문학계가 이 작가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다.

● 비탈의 사과
연왕모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7000원

1994년 <문학과사회>로 등단한 연왕모의 두 번째 시집.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와 맞물려 아름답게 펼쳐지던 시인 특유의 상상력은 두 번째 시집에서도 이어진다. 첫 시집 <개들의 예감>이후 13년 만에 낸 이번 시집에는 여전히 강렬하면서도 존재 본연의 고독을 잃지 않는 61편의 시가 4부에 걸쳐 담겨 있다.

● 전통 예술의 미래
이동연 지음/ 채륜 펴냄/ 1만 8800원

국내 대표적인 문화연구학자 이동연 씨의 저서. 2005년부터 한예종 전통예술원에 재직한 저자는 문화연구 분야의 오랜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전통예술의 정체성을 새로운 시각으로 분석했다. 전통예술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설계한 1부, 전통예술 창작과 공연 양식 사례를 분석한 2부로 나뉜다.

● 국어 선생님의 시 배달
김영찬․박성한․정현근 엮음/ 창비 펴냄/ 9800원

지난해부터 '창비국어' 홈페이지(www.changbiedu.com)에 연재된 '국어 선생님의 시 배달'을 단행본으로 묶은 책. 전국 중고등학교 국어 선생님들의 추천 시와 해설은 물론 학생들이 직접 시를 골라 시인에게, 친구에게, 선생님에게, 부모님에게 배달하며 각자의 사연을 나누는 꼭지로 구성됐다. 시인과 인터뷰, 암 투병 중에 쓴 어머니의 편지 등이 함께 실려 감동을 더한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