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반송

비 맞고 나니 반송의 초록빛 잎새가 더욱 싱그럽고 짙푸르다. 소나무 종류 중에서도 반송은 언제나 안정감 있는 모습이 좋다. 올해 새로 난 잎들은 연두빛에서 어느새 초록빛으로 변하였다. 햇볕을 받아, 열심히 광합성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우리 주변에 심는 모든 나무, 풀, 혹은 과일 같은 먹거리 등도 따지고 보면 자연에서 가져온 것이며 그 자연의 모습을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과장되게 만들었을 것이다.

반송 역시 매우 자연스럽고 조형적인 아름다움이 한데 어우러져 큰 사랑을 받는 조경수이고 비교적 자연의 모습이 변형되지 않고 그대로 우리 곁에 옮겨 앉은 대표적인 나무이다. 조금은 오래 된 고궁이나 공원 혹은 주요한 시설의 정원에선 어김없이 반송을 만날 수 있다.

반송은 소나무과에 속하는 소나무의 자연품종이다. 꽃이나 열매 같은 모든 중요 특성들은 우리의 소나무와 완전하게 동일하다. 다만 나무의 중심 줄기가 그냥 소나무처럼 하나로 굵게 올라가지 않고 반씩 갈라져 전반적으로 반원형의 수형을 만들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재미난 것은 이러한 특징이 그대로 고정되어 후대에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송이 조경수로 워낙 인기가 높던 시절, 반송 묘목을 많이 만들어 키워보겠다고 반송의 씨앗을 받아 뿌리면 그 다음에 자라 올라오는 나무들은 반씩 갈라지는 반송도 있고 그냥 올라가는 소나무들도 있다.

그래서 반송은 소나무와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종으로 구분하지 않고 소나무의 고정 안 된 변이를 가진 품종으로 취급한다. 그래서 소나무 잎으로 만든 여러 음식, 처방, 꽃가루로 만든 다식 등등 모든 쓰임새에 소나무와 동등하게 쓰인다. 다만 모양을 보고 심는 조경수만 빼고. 쉽게 말해 봄에 노란 꽃가루를 털어 송화다식을 만들거나 가을에 솔잎을 따서 송편을 쪄도 된다. 줄기의 갈라지는 특징을 빼고는 암꽃, 수꽃, 열매, 잎 수피의 색깔까지 같으니까.

사람들이 반송을 사랑한 역사는 꽤 오래된 듯하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남아 있는 아주 오래된 나무들이 꽤 여럿 있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무주 설천면의 곰솔, 문경 농암면의 곰솔 등등 많지만 가을 즈음에 추천하고 싶은 것은 천연기념물 293호 상주 화서면의 반송이다. 논 중간에 있어서 황금빛으로 변한 벌판에 반송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반송에 대한 우리들의 사랑은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가장 품격 있는 곳, 가장 힘이 센 곳 등의 정원엔 반송이 들어가곤 했다. 청와대에 들어가는 입구에도 오래 되고 큰 주목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무에도, 소나무에도 유행이 있는가 보다.

이즈음엔 조형소나무란 이름으로 그냥 소나무가 심어지고 때론 못 생기고 쓸모 없어 살아 남았다는 구불거리는 소나무들이 멋스러움으로 인기를 얻기도 한다. 심지어는 장대 같은 금강소나무까지 도심으로 실려와 어렵게 살아간다. 그 변함없는 푸르름 때문에 지조와 절개를 이야기하는 소나무에게 닥친 변화여서 더욱 재미나다.

그래도 왠지 그 키 큰 소나무들은 자신이 살았던 심산에서 실려와 맞지 않는 환경에서 위태롭게 느껴질 때가 많고, 정원에 심어진 반송은 마음의 편안함을 주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