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쳐 & 피플]박서보 화백, '묘법' 명제 끝없는 발전… 추상 미술 60년 화업 돌아보는 전시 열어

한국 추상화단을 대표하는 박서보 화백(홍익대 명예교수)의 화업 60년을 돌아보는 전시가 마련됐다.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는 11월 25일부터 박 화백의 일생을 아우르는 작품을 전관에서 시대별로 전시하고 있다.

국내 대표적 화랑인 국제갤러리가 2007년 신관을 연 이래 한 작가의 작품만으로 본관과 신관 전시장 전체를 채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박 화백이 우리 화단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다.

박 화백은 1950년대 불모지나 다름없던 우리 미술계에 낯선 추상미술을 선보인 이래 일평생 '묘법'(ecritureㆍ쓰기)을 명제로 끊임없이 발전하는 추상미술의 본령을 보여왔다.

박 화백은 홍익대 미대를 나와 1957년 한국 엥포르멜(Informel) 운동에 주도적 역할을 한 뒤 1960년대 추상표현주의 미학을 바탕으로 원형질, 유전질, 허상 시리즈를 발표한데 이어 1970년대부터 '손의 여행'으로 일컬어지는 묘법(描法) 회화의 정점을 이뤄갔다.

1980년대 후반에는 종이 대신 한지를 쓰는 커다란 변화를 시도하고, 2000년대 들어서는 색채 회화로 또 다른 세계를 열어갔다.

이번 전시는 박 화백의 회화 변천사에 따라 세 부분으로 짜여졌다. '에크리뛰르', 즉 연필로 끊임없이 선을 그은 전기 묘법시대(1967년~1989년), 한지(닥종이)를 겹겹이 화면에 올린 뒤 그 위에 물감을 얹고 긋거나 밀어내는 방식의 제작, 그리고 2000년부터 시작한 유채색 모노크롬 작업을 포함한 후기 묘법시대(1989~현재), 작품의 뼈대로 회화의 다층적 구조를 잘 살펴볼 수 있는 에스키스 드로잉(1996년~현재)이 그것이다.

이렇듯 변화를 거듭한 60년 화업은 실제 "그리기는 자신을 갈고 닦는 수신(修身)"이라는 박 화백의 성찰로 귀결된다. 그는 늘 본인의 작업에 대해 '마음을 비우는 명상과 관련된 것' 이나'시각적 탐구를 넘어서는 것, 즉 저절로 이루어진 것' 이라고 언급하곤 했다.

"묘법은 도(道) 닦듯이 하는 작업이에요. 그림이란 작가의 생각을 토해내는 게 아니라 비워내는 것입니다. 나를 비우기 위해 무수히 수련한 과정이 묘법이죠"

박 화백은 팔순임에도 하루 10시간 넘게 작업에 몰두한다. 국내외 전시 제의도 줄을 잇고 있다. 그가 여전히 예리한 안목으로 현대 미술의 맥을 짚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그러한 열정 때문일 게다.

"예술이란 작게는 개인 경험의 전달이지만 크게는 시대의 산물인 만큼 21세기의 예술은 디지털시대 스트레스라는 새로운 문제를 치유하는 기능도 해야 합니다."

"21세기 문화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아시아 미술에 희망을 걸고 있어요. 그런데 요즘 작가들은 패셔니스타 같아. 유행에 민감하고 추종하고. 내가 늘 하는 말이 있지.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변하면 추락한다. "

후학들에게 부단한 노력을 훈계하는 박서보 화백다운 일침이다.

그의 삶이 배인 모처럼의 전시는 국제갤러리에서 내년 1월 20일까지 열린다. 이어 부산시립미술관과 부산 조현갤러리에서도 대규모 작품전(12월 11일~)을 갖는다. 02)735-8449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