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이석주의 유고집… 아름답고 적막한 설국의 풍경

너 혼자 올 수 있니
이석주 사진/ 강성은 글/ 미래인 펴냄/ 1만 2800원

'그의 시는, 그러니까, 시인의 죽음과 함께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 기형도에게 죽음은 의미의 종말이 아니라 의미의 시원이었다.'

시인 기형도에 대한 문학평론가 정과리의 말이다.(기형도 20주기 추모집 <정거장에서의 충고>) 기형도를 둘러싼 신화들을 걷어내고 시집 자체만을 읽는 것이 불가능하듯, 기형도에게 삶과 죽음, 문학은 늘 동일선상에 놓인다.

여기, 죽음이 시원이 된 또 한 권의 책이 있다. 사진작가 이석주의 유고집이다.

기형도의 시집은 그의 삶을 통과할 때, 절절하게 읽힌다. 이 책을 펼치기 전, 역시 이석주에 대한 설명이 또한 필요하겠다. 그는 20대 젊은 예술가들이 그렇듯, 홍대에 스튜디오를 마련해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여러 문화예술가와 교류했다. 그러던 중 2009년 간암을 선고받았고, 폐암까지 전이된 몸을 이끌고 홀연히 홋카이도로 갔다.

지난해 2월, 그는 혼자서 사진기와 배낭 하나만 메고 폭설이 내리는 '러브레터' 마을로 떠났고 14일 만에 방대한 분량의 사진을 안고 돌아왔다. 진통제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사진작업에 몰두 했다. 눈(雪)을 주제로 한 책 출간과 사진전을 준비했지만, 그는 결실을 보지 못하고 지난해 봄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만 스물여덟.

'이 책은 이석주 사진가가 생의 마지막 여행에서 찍어 온 사진을 담은 책이다. 그는 살아 있는 눈이 많은 겨울 홋카이도를 선택했다. (…) 그는 이제야 사진이 빛을 담는 것이 아니라 빛을 비워내는 작업임을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내게 작은 메모를 남겼다. 여기 그의 사진에 실린 글은 그가 생의 말미에서 겨우 시작하려는 사랑을 강성은 시인이 그녀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도운 것이다.'

이석주를 대신해 쓴 김경주의 서문이다. 그의 사진을 모아 시인 김경주가 책을 기획했고, 시인 강성은이 글을 썼다. 홋카이도와 아키타의 풍경을 '눈을 만나다', '사랑', '상실', '너 혼자 올 수 있니', '자장가' 등 다섯 가지 테마로 담아냈다.

4번째 테마이자 이 책의 제목 '너 혼자 올 수 있니'는 박상순의 시 '너 혼자'에서 빌려온 말이다.

'너 혼자./ 1. 너 혼자 올 수 있겠니/ 2. 너 혼자 올라올 수 있겠니/ 3. 너 혼자 여기까지 올 수 있겠니// 안개가 자욱한데. 내 모습을 볼 수 있겠니. 하지만 다행이구나 오랜 가뭄 끝에 강물이 말라 건너기는 쉽겠구나. 발 밑을 조심하렴. 밤새 쌓인 적막이 네 옷자락을 잡을지도 모르니 조심해서 건너렴.' (212페이지, '너 혼자 올 수 있니 #01' 중에서)

스물 여덟, 작가의 마지막 사진에는 절절한 그리움이 묻어 있다.

서문에 미리 써 두었지만, '이 책에 실린 그의 사진 속에는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다.'(7페이지) 그 '찬란한 슬픔의 봄'에 작가는 말했다. '그 곳에서 사람을 담으면 너무나 그리울 것 같아서.'(같은 페이지)

아름답고 적막한 설국의 풍경에는 작가의 외로움과 쓸쓸함이 배어있다.


마오 Ⅱ
돈 드릴로 지음/ 유정완 옮김/ 창비 펴냄/ 1만 3000원

미국 포스트모던 소설의 대가 돈 드릴로의 장편소설. 주인공 빌 그레이는 세계적 작가이지만 은거하며 더 이상 작품 출판을 거부하고 대중과 소통을 거부하는 폐쇄적인 인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은 끊임없이 그를 대중 속으로 소환하려 하고 그의 눈에 비친 현대 매스미디어와 테러리즘은 과잉된 이미지와 소비주의, 집단주의에 사로잡힌 군중일 뿐이다. 현대문화현상, 주본주의 미디어 실상을 신랄하게 풍자한 수작.


한국 주거의 공간사
전남일 지음/ 돌베개 펴냄/ 2만 2000원

<한국 주거의 사회사>, <한국 주거의 미시사>에 이어지는 '한국 근현대 주거의 역사' 시리즈 완결편. 1879년 개항기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 근현대 주거공간의 역사를 공간사의 관점에서 정리한 책이다. 재항 이후 한국 근현대 주거공간 변천사를 건축 도면과 사진 등 시각 자료를 통해 꼼꼼히 정리하고 있다.


나쁜 소녀의 짓궂음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문학동네 펴냄/ 1만 4800원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바르가스 요사의 신작. 2006년 발표된 이 소설은 모험심 강하고 화려한 세계를 동경하는 '나쁜 소녀'와 그녀를 사십 년 넘게 사랑하는 '착한 소년'의 러브스토리를 정치, 사회, 문화 격변기였던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정황에서 녹여낸 작품이다. 작가는 1960년대 파리, 1970년대 런던, 1980년대 페루 등 20세기 사회 단면을 깊이 있으면서도 발랄하게 그려낸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