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르 이 저자] 박노자 오슬로대학 교수선천적 타자의 시선과 후천적 내부자의 고민 책에 담아

박노자 오슬로대학 교수의 책을 처음 읽을 때 독자 반응은 대개 두 단계로 걸쳐 나온다. 우선 한국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과 유려한 문장에 감탄한다. 두 번째 그 유려한 글을 쓴 사람이 파란 눈의 이방인이라는 데 또 한번 놀란다.

토종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사람. 그의 이름 앞에 흔히 붙는 이 수식어는 우리 사회가 아직 그를 온전한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

그의 본명은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다. 러시아에서 태어난 그는 2001년 한국으로 국적을 바꿀 때 스승인 미하일 박 교수의 성을 따르고, 러시아의 아들(露子)이라는 뜻의 이름을 붙여 호적에 올렸다.

고등학생이던 1980년대 후반 러시아에서 우연히 북한영화 '춘향전'을 접했고, 불교관련 학과로 진학하려다 경쟁률이 낮은 조선학과로 방향을 틀었다.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과 모스크바 대학의 대학원에서 한국사학을 공부했다. 고려인 3세인 미하일 박 교수를 만나 논문 '5세기 말부터 562년까지의 가야의 여러 초기 국가의 역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이력은 지식인 박노자가 쓴 책의 모양새를 가늠하는 데 긴요하다. 그의 관심 영역은 통일신라시대의 불교에서 현대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이르기까지 폭넓다.

남을 살리는 불교적인 삶을 동경한다고 말하는 그는 한국사를 설명하면서 불교적인 생각을 사회과학적인 용어로 풀어왔다. 인문학자는 동시대적인 담론을 생산하고 화두를 제공하는 지식인으로 활동해야 한다고 여긴다.

1990년대 후반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기존의 한국사의 과도한 국수주의, 쇼비니즘, 파시즘을 지탄한 글을 발표하며 지식인으로 활동했다.

한국 지식인 집단에서 박노자의 스펙트럼을 그어 보자. 좌우의 이념을 가른다면 그는 분명 왼쪽에 있고('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민족대 탈민족의 개념으로 나눈다면 탈민족에 속한다.('우승열패의 신화')

대중이 그를 인지하게 된 계기는 2001년 <당신들의 대한민국>를 내면서부터다. 그는 한국 사회 경험담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보여준다.

왜 대학생들은 영어를 배우기 위해 자신에게 친구가 되자고 하는지, 왜 군대에 다녀와야 남자가 되고 사람이 된다고 한국인이 생각하는지를 한국인에게 되묻는다. 경험과 관찰을 통해 한국사회 이면을 통찰한 이 책은 대학생 필독서로 꼽히며 지난 10년 동안 사랑받아 왔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이 박노자 판 대중서라면, 2008년 출간한 <우승열패의 신화>는 보다 전문적인 지식으로 무장한 인문서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국내 사학계에서 금기시해온 한국 민족주의 담론의 형성과정과 그 기원을 탐색한 책으로 개화기 시절 사회진화론과 민족주의 담론의 역사를 살피고 있다.

1900년대 중국의 대표적인 논객 량치차오의 사상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주의, 서구 유럽의 사회진화론이 중국과 일본을 거쳐 한국에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외에도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하얀 가면의 제국>, <씩씩한 남자 만들기>,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박노자의 만감일기> 등 일련의 책을 통해 그는 집단성과 파시즘, 국가주의 등 한국사회 모순을 파고든다. 선천적 타자의 시선과 후천적 내부자의 고민이 버무려진 그의 책은 일부 보수층의 맹렬한 비판에도 끊임없이 출간되고, 다시 읽힌다.

이제 그는 선거와 월드컵, 금융위기 등 우리사회 변화의 기로에서, 진보 언론이 찾는 대표적인 지식인이 됐다. 아마, 이 이중의 시선이 보편성을 갖기 때문일 것이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