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유머의 대가, 미국 풍자 소설가가 쓴 산문집

●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
커트 보네거트 지음/ 김한영 옮김/ 문학동네 펴냄/ 9800원

100여 페이지, 짧은 산문집 가격이 1만 원에 육박한다. 아무리 책을 포즈로 읽는다고 해도 이 정도면 심하다 싶지만, 저자 이름을 보면 탐이 날 수밖에 없는 책이다. 커트 보네거트의 인터뷰집이니까.

해외 소설 좀 읽는다는 독자 사이에서 커트 보네거트는 블랙유머의 대가로 꼽힌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가진 미국 풍자 소설가다. '계보'를 부정하는 국내 문학판과 달리 미국 작가들은 자신이 누구에게서 영향을 받았는지, '라인'을 밝힌다.

커트 보네거트는 마크 트웨인의 계승자로 리처드 브라우티건, 더글러스 애덤스 등 많은 작가에게 영향을 미쳤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소설을 일본어로 번역하며 창작 훈련을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제5살장>, <갈라파고스> 등이 대표작이고, 지난 해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 워터씨>가 국내 번역, 출간된 바 있다.

신간 <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은 가상 인터뷰 형식으로 쓴 풍자 산문집이다. 셰익스피어, 아돌프 히틀러 등 역사적인 인물을 비롯해 독특한 발달심리학자 메리 D. 에인즈워스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인터뷰어 21인의 특징은 이미 저 세상으로 간 인물들이라는 것. 작가는 '사후세계'로 뛰어 들어가 가상의 인터뷰를 펼치며 이들의 삶을 조명한다. 이 삶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를 되짚는다.

'뉴턴 경은 팔십오 년 동안이나 지구에 살면서 미적분학을 고안하고, 중력, 운동, 광학 법칙들을 성문화하고 수량화했으며 반사망원경을 최초로 설계했지만, 이것으로 성에 차지 않는 듯했습니다. 그는 진화론을 다윈에게, 배종설을 파스퇴르에게, 상대성이론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게 넘겨준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69~70페이지, 아이작 뉴턴 가상 인터뷰 중에서)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고 싶은데." 내가 애원하듯 말했습니다. "당신의 왕성한 창작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아이작 아시모프는 한마디로 대답했습니다. "탈출이라네."' (105페이지, 아이작 아시모프 가상 인터뷰 중에서)

가상 인터뷰의 특징은 인터뷰 인물을 통해 저자 자신의 세계관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는 것. 이 짧은 인터뷰 형식을 빌려 저자는 현재의 삶에 충실하고, 그 삶을 긍정하며, 휴머니즘을 실천하며 살자고 말한다. 이는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을 관통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을 읽을 때 독자들이 기대하는 것은 웃음 끝에 오는 한 줄기 페이소스다. 소설만큼 유려하진 않지만, 산문집 역시 그 기대에 값한다.


● 기계, 인간의 척도가 되다
마이클 에이더스 지음/ 김동관 옮김/ 산처럼 펴냄/ 3만 5000원

유럽인들이 자기 문화의 물질적 우월성을 인식하면서 타인에 대한 태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산업혁명 이후 유럽인이 획득한 물질적 업적은 비서양에 대한 지배 이데올로기로 견고해진다. 종이, 나침반, 무기, 철도부터 천문학, 철학, 노동에 대한 태도까지 광범위한 분야에서 타자에 대한 '등급'을 매긴 서양인들의 사고를 추적한다.


● 대중을 유혹한 학자 60인
박종현 지음/ 컬처그라퍼 펴냄/ 2만 3000원

우리 시대 어니스트는 누구일까? 이 책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한국의 대표 지성인들의 사상과 담론을 소개한다. 유홍준, 정민, 최재천, 안철수 등 확고한 독자층을 확보한 저자 60인을 7개의 범주로 나누고 짤막한 인터뷰를 덧붙이는 형식이다. 세계일보에 2년간 연재한 칼럼을 다듬고 묶은 책이다.


● 그림, 문학에 취하다
고연희 지음/ 아트북스 펴냄/ 2만 원

왜 서양화보다 동양화를 감상하기가 어려울까? 옛 그림 속에 깃든 문학성, 이것은 그림을 독해하는 기본 문법이고 문자 향유의 특권을 누렸던 문사들의 지성, 감성을 동시에 건드린 장치이고, 그림 이해의 핵심 코드다. 저자는 문학작품을 통해 옛 그림의 매력을 소소히 풀어준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