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윤기 씨 유고집 단편 4편에 작가ㆍ작품론 등 묶어

유리 그림자
이윤기 지음/ 민음사 펴냄/ 1만 원

번역가 겸 소설가 이윤기 씨의 유고집 두 권이 나란히 출간됐다. 산문집 <위대한 침묵>과 소설집 <유리 그림자>이다. '나는 아버지를 소설가라고 부르고 싶다. 아버지가 듣기 원하는 이름이었을 것 같다.

아버지는 1998년 동인문학상을 받았을 때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된 것에 기뻐했다'는 딸 이다희 씨의 글(아버지의 이름, 산문집 <위대한 침묵>)처럼, 그는 다양한 직함 중 소설가란 이름을 가장 좋아했을 것 같다. 소설은 오롯이 작가 이윤기가 만든 세상과 인물들이 있는 곳이니까. 두 유고집 중 <유리 그림자>를 빼든 이유다.

이 책은 단편소설 4편과 작가론, 작품론과 연보로 구성됐다. 네 작품의 분량을 다 합쳐도 87페이지, 소품이라 부를 정도로 짧다. 책은 150페이지가 조금 넘는다.

그 짧은 이야기들은 최근 젊은 작가들의 발랄하고 가벼운 소설들과 동떨어져있다. 그것은 정갈하면서도 겸허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동서양의 유려한 문장을 누구보다 많이 읽고 옮긴 이 작가의 가장 큰 미덕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말만을 쓴다는 것이다.

그가 감당할 수 있는 말은, 당연히 오늘의 젊은 작가보다 크고 넓을 것이다. 그는 1947년에 태어나 독학으로 외국어를 익혔고, 베트남전에 참전했고, 공사판을 전전했고, 생계를 위해 창작보다 번역에 매진했다. 작가는 이 굴곡의 세월을 에둘러서 '한 번도 '꽃'으로 피어 보지 못한 채 나는 '잎'으로만 살았다'고 말했다.(산문집 <위대한 침묵>)

표제작 '유리 그림자'는 유리 탁자의 그림자를 보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투명한 유리탁자에 어떻게 그림자가 생기는가? 그 그림자는 송홧가루가 쌓이며 만들어진 것이다.

'사물은 그림자가 있어야 비로소 온전해지는구나, 싶었다. 송홧가루는 우리가 짓는 일상의 작은 허물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65페이지)

주인공 나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한 여자 친구가 있다. 이 여자 친구의 연애사에 나는 항상 맞물린다. 딸의 결혼식을 앞둔 여자 친구는 말한다. "너에게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 이 여자 친구는 군대 시절 내가 보낸 편지를 통해 나의 친구와 연애를 했고, 결혼했다가, 이혼 후 홀로 아이를 키웠다. 여자 친구 딸의 결혼식에 참석한 나는 송홧가루가 만든 유리 그림자 이야기를 들려준다.

표제작을 비롯해 4편의 이야기는 소설 첫 장면의 장악력 안에서 일목요연하게 펼쳐진다. 이윤기의 소설은 대체로 하나의 핵심을 향한 여러 개의 이야기 덩어리들이 병렬적으로 나열되는 방식이다.

압축된 작은 이야기 덩어리들은 전체 이야기의 완급을 조절하고, 인물을 조명하며, 이미지를 만들며 핵심을 향해 나아간다. 그의 소설에서 인간에 대한 인식과 각성의 순간이 날카롭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유고집의 단편에서 그 스타일을 감상할 수 있다.

소설(小說). 소소한 이야기란 뜻이다. 일상의 작은 사건을 통해 미학적 울림을 끌어내는 이야기가 소설이라면, 이윤기는 그 정의에 가장 부합한 이야기를 만든 작가다.

문화로 재테크하다
토비 월른 지음/ 김혜영 옮김/ 이마고 펴냄/ 1만 6000원

샤넬과 루이비통 가방은 묵힐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재테크 상품이란 점에서 여느 명품 브랜드와 다르다. 마찬가지로 바비 인형과 테디 베어는 재테크가 가능하단 점에서 여느 장난감과 다르다.

이 책은 문화에 재테크할 수 있는 노하우와 종목을 알려준다. 저자는 레고나 모노폴리 같은 장난감 악기, 생활 소품 등 101가지 투자상품을 통해 문화도 재테크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일기
체 게바라 지음/ 김홍락 옮김/ 학고재 펴냄/ 1만 6000원

쿠바 혁명 영웅, 체 게바라의 일기. 그가 유로 계곡에서 생포당할 당시 지녔던 두 권의 일기와 사진은 카스트로에 의해 68년 <볼리비아 일기>로 발간된 바 있다. 신간은 탄생 80주년인 2008년에 공개된 원본을 토대로 김홍락 주 볼리비아 대사가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1966년 11월 7일 시작해 체포 전날인 1967년 10월 7일 끝난 이 일기에는 게릴라 부대의 생활이 꼼꼼하게 담겨 있다.

다음 국가를 말하다
박명림, 김상봉 지음/ 웅진 지식하우스 펴냄/ 1만 4000원

한국전쟁에 관한 독보적인 연구로 한국사회를 해석한 박명림 교수, 거리의 철학자로 불리며 학벌사회에 관한 충격적인 비판을 던진 김상봉 교수. 두 저자가 함께 썼다는 이유만으로도 눈에 띄는 책이다.

각각 정치학과 철학에서 탁월한 사유를 보여주었던 이들은 '민주공화국'을 주제로 질문을 던진다. '왜 지금 공화국인가',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등 13가지 주제를 통해 우리사회를 돌아본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