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르 이 저자] 소설가 이유정토속적이고 질퍽한 어휘, 풍자적 수법 등 소설의 새로운 방향 제시

해마다 봄이면 작가들이 춘천으로 간다. 그곳에서 소설가 김유정을 기리는 문학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김유정의 생가인 남내이작면 실레마을은 문학촌으로 꾸며져 관광객을 맞고, 각종 문학 행사들이 주를 잇는다.

그의 이름을 딴 문학상은 김중혁, 김애란 등 재능 있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 신뢰를 보낸다. 이미 알려진 작가들의 작품에 권위를 보태는 여타의 문학상과 다른 지점이다. 지역주민이 십시일반 모아 만든 상금도 의미 있다.

김유정문학제는 통상 4월에 열리지만 그가 작고한 날은 3월 29일이다.

'나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렸다. 나로 하여금 너의 팔에 의지하여 광명을 찾게 하여 다우.'

김유정이 숨지기 열하루 전에 조카에게 쓴 편지는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생의 의지를 놓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해학이 넘치는 소설과는 별개로 이 작가의 삶은 상당히 불우했고, 또 짧았다.

1911년 춘천에서 태어난 그는 5살인 1913년 서울로 이사를 간다. 불운은 이때부터 시작됐는데, 이듬해 어머니 심 씨가 병세로 사망하고, 아버지마저 3년 후 세상을 떠났다. 실질적으로 가장이 된 형 유근은 선대부터 악착같이 모은 재산을 주색잡기로 탕진했다.

실패한 첫사랑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다. 연희전문학교에 들어간 그는 명월관 기생이자 남도창을 하는 박녹주에게 첫눈에 반해 구애를 보내지만 짝사랑은 무참히 밟히고 만다. 혈서와 애원, 협박에 힘입어 기생 박녹주와의 염문은 장안에 파다하게 퍼졌다. 이 당시부터 늑막염을 앓고 있던 김유정은 1931년 고향인 실레마을로 내려간다.

스물아홉 해의 짧은 생을 사는 동안 그는 소설 30편, 수필 12편, 편지와 일기 6편, 번역소설 2편을 남겼는데 이 작품들이 집중적으로 쓰인 시기는 1933년부터다. 이해에 발족한 구인회에 들어가면서 김유정은 구인회의 회지 <시와 소설>에 '두꺼비'를, <개벽>에 '금 따는 콩밭'을, 조선일보에 '만무방'을, <조광>에 '봄봄'을 잇달아 발표한다.

구인회는 1930년대 모더니즘의 한 기류를 보여준다는 평을 받지만, 김유정의 문학은 구인회의 도시적 기법과 멀리 떨어져 있다. 그는 토속적이고 질퍽한 어휘, 풍자적 수법 등으로 평범한 일상사를 소설에서 해로운 형태로 살아나게 한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읽어 보았을 단편 '만무방', '봄봄' 등은 1930년대 농촌의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작가는 소설 속 작중인물들의 옳고 그름을 논하지 않고 이들의 행태를 유머, 아이러니로 그려낸다.

그의 삶은 구인회의 회원인 작가 이상과 묘하게 겹친다. 둘다 폐결핵을 앓았고 짧고 불운한 삶을 살다 같은 해 봄에 죽었다. 30년대 식민지 농촌전경을 해학적 언어로 그렸던 김유정의 문학은 같은 시기 근대 도시 폐허를 감각적으로 써간 이상의 문학과 대척점을 이룬다.

단편소설의 결정체로 불리는 김유정의 작품들은 카프 해체 등으로 인한 문학계 침체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풍자와 아이러니로 엮인 소설은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도 검열에 걸리지 않을 수 있는 돌파구를 열었다. 좌익계 소설에서 볼 수 없는 재미도 만만치 않아 우리 소설계에 새로운 방향과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는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