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환 갈무리 출판사 주간 출간

우리나라 대표적인 자율주의 이론가 조정환 씨가 10년 동안의 연구를 집대성한 책 <인지자본주의>를 냈다. 마르크스와 안토니오 네그리에 사상적 뿌리를 대고 있는 그는 기존 다양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인지과학의 성과를 접목해 현대사회에 대한 분석을 내놓는다. 노동과 자본 형태의 변화란 거시적인 틀 속에 사회 현상을 총체적으로 밝히려는 시도다.

제목처럼 그의 생각을 관통하는 것은 '인지'와 '자본주의'다. 여기서 인지는 생명체가 지각하고 생각하고 이해하고 판단하고 의지하는 등의 활동에 포함된 정신적 과정을 총칭하는 용어다. 저자는 이런 인지 개념을 자본주의 분석틀에 연결시킨다. 상업자본주의, 산업자본주의에 이어 작금의 시대는 사람의 인지활동 즉 정신이 노동과정의 주축이 된 '인지자본주의 시대'라는 것이다.

이 관점 아래 저자는 노동과 자본 형태, 시간과 공간, 정치와 계급 등의 문제를 재구성한다. 신자유주의, 금융자본주의, 탈산업사회, 정보화 사회 등 현대사회를 지칭하는 다양한 분석은 인지자본주의란 개념 아래 포섭된다.

500여 페이지, 두툼한 책을 들고 저자를 만났다.

현대사회를 설명하는 다양한 용어가 있다. 이 중 '인지과학'을 키워드로 잡은 계기가 뭔가? 언제부터 준비했나?

"자본주의에 관해서는 30년 정도 연구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인간의 인지 활동을 원천으로 삼는다고 파악한 건 1990년대 하반기다. 그때부터 인지과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생물학이나 자연과학과 연결돼 있는 부분이라서 인문학 전공자가 공부하기 만만치 않았다. 2005년경 인지생물학자 움베르토 마투라나, 프란시스코 바렐라 책을 갈무리에서 출판기획하면서 공부했다."

자본주의를 1차(상업자본주의), 2차(산업자본주의), 3차(인지자본주의)로 나눠 설명했다. 하지만 분석의 큰 틀은 마르크스의 <자본론> 즉 산업자본주의 분석틀에서 빌려왔다. 마르크스의 틀이 현대 사회에 여전히 유용한 점과 더 이상 유용하지 않은 점은 뭔가?

"아담 스미스나 리카도 역시 1800년대 초반 산업자본주의 시대를 상업자본주의 틀로 분석하려 했다. 1850년대 마르크스가 한 일은 산업자본주의의 틀로의 전환이었다. 현재도 역시 마찬가지다. 노동의 다수가 육체보다 인지행동으로 넘어온 인지자본주의로 패러다임이 전환됐는데, 여전히 사회를 산업자본주의로 분석하는 전통이 남아 있다. 인지자본주의 시대라고 하더라도 첫째 산업자본주의를 지탱한 골조들, 예컨대 공장, 상품, 유통구조, 산업노동자들의 노조는 남아있다. 무엇보다도 산업자본주의에서 발생한 '자본과 노동의 적대 혹은 갈등관계'는 인지자본주의에서도 관철된다. 다만 인지자본주의에서 생산은 자동차나 컵 같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비물질적인 것이다. 강의실의 수업, 공연이나 연극, 병원의 서비스처럼 생산과 유통, 소비가 한꺼번에 이뤄진다. 우리사회 상당한 부분이 이처럼 인지노동으로 충당된다. 구글이나 네이버처럼 부상하는 기업들은 상품을 직접 생산하지 않는다. 이것이 산업자본주의에서는 예외적 부분이었는데 이제 사회주류가 됐다."

여전히 1차 농업, 2차 공장제 기계공업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3차 서비스산업이 새로운 흐름인 것은 분명하지만, 장하준 교수처럼 3차 산업이 사회전체 틀에서 1,2차 산업에 비해 역할이 과대평가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산업이나 농업도 인지자본화되었다. 예컨대 자동차처럼 산업자본주의의 핵심 산업도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탱한다. 그런데 나는 이 산업들이 인지화를 통해서 살아남았다고 본다. 포드는 이제 쇳덩어리와 바퀴의 결합이 아니라 미학적인 디자인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다른 자동차와의 차별화를 통해서 살아남아야 한다. 산업자본이 임금과 공장지대 임대료보다 광고나 마케팅에 더 많은 비용을 투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농업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농업은 자연에 의지하기보다는 생물, 유전공학에 의지한다. 남미에서 생산되는 옥수수의 99%가 GMO 옥수수다. 이 옥수수가 다시 가축의 대량생산에 사료로 이용된다."

시대 패러다임이 산업에서 인지로 넘어왔다면, 우리 삶에는 어떤 변화를 보일까? 저자는 인지자본주의 변화상을 공간, 시간, 계급, 정치 등 여러 층위에서 살펴본다.

벤야민의 메트로폴리스론과 데이비드 하비의 도시공간론(7장 공간의 재구성), 베르그송의 지속의 시간 개념과 들뢰즈의 잠재성의 시간론(8장 시간의 재구성), 네그리, 아감벤, 지젝, 샹탈 무페, 발리바르, 랑시에르 등 현대 유럽 정치철학자들의 문제의식(10장 정치의 재구성) 등 2000년대 주목받은 저서들이 저자의 감식안으로 재해석됐다.

책에서 자본주의 변화상을 분석한 틀은 상당부분 마르크스에 기대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의 독창성이 빛나는 부분은 책의 중간 부분인 시간과 공간분석으로 같다. 벤야민, 들뢰즈, 베르그송의 개념을 현대 자본주의와 연결시키고 있다.

"인지자본주의를 공간적으로 보면 메트로폴리스라고 볼 수 있다. 파리, 도쿄, 뉴욕처럼 세계 전역에서 양자간 물리적 경계가 허물어지고 긴밀한 연관을 갖는다. 글로벌 차원에서 해양과 육지 경계조차도 넘어선 지점에서 인지자본주의가 발전한다. 시간은 산업자본주의가 시작되면서 절편성의 개념으로 탈바꿈한다. 시간을 시계의 시간으로 구조화시킴으로써 권태롭고 따분하게 만들었다. 몇 시에 출근하고 퇴근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를 보면 노동자들이 파업을 할 때 공장 문 앞의 시계탑을 깨뜨리고 시작했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인지자본론에서는 베르그송의 지속 이론이 굉장히 중요한 아이디어를 줬다. 끊임없이 폭발하는 운동으로서의 시간, 약동의 시간을 말하는데 이런 시간의 개념은 상업, 산업자본주의에서는 억눌려왔다. 지금의 노동은 출퇴근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 창의적인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고 출근했다고 시작하고 퇴근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란 말이다. 막 잠에서 일어나거나 샤워하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인지자본주의 시대에는 인간의 창의성이 어떻게 가치창출과 연결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고, 출퇴근을 자유롭게 한다든지 열린 시간대를 제공한다. '때'의 자유를 부여하면서 지성이나 아이디어를 낼 여지를 열어두는 것이다."

저자의 저서에서 이탈리아 정치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책의 후반에 소개한, 서로 다르면서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의 복합체인 '다중' 역시 네그리의 개념어에서 차용했다. 많은 저서 중 유독 네그리의 저서에 '꽂힌' 이유가 있나?

"90년대에 이탈리아의 70년대 운동에 흥미가 끌렸다. 이탈리아는 반도인데다 남북이 정치적 차별이 심한 국가다. 한국과 여러모로 유사한 점이 많다. 70년대에 우리의 80년대와 같은 노동 운동이 일어났는데 그 운동가 중 하나가 네그리였다. 이 사람의 텍스트를 집중적으로 읽어보았는데, 우리나라와 유사한 사회적 상황에서 분석이나 판단이 전혀 달랐다. 이탈리아에서 이를 자율주의 운동이라고 부르는데, 배경은 1970년대 유럽이다. 프랑스에서는 68혁명으로 나타났다가 빨리 이 흐름이 꺼졌다. 이탈리아는 69년부터 시작돼 10년 이상 지속됐다. 노동운동, 학생운동, 청년운동, 반핵운동, 지역자치 주민운동, 페미니스트운동이 무지개처럼 나타난 게 70년대였다. 그 운동을 연구하면서 한국사회를 '다중'의 과점과 연동시켜 보게 됐다."

새로운 것을 함께 창조하는 관계를 맺는 '공통되기',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향해 약동하는 자기생성적인 힘인 '삶정치' 등은 이미 저자가 이전 책에서도 즐겨 구사해온 개념어 가운데 하나다.

이 책 12장에서 상품사회를 넘어설 대안을 이런 개념어와 연관시키고 있다. 요컨대 다중의 인지활동에 자유와 효율성을 부과하면서 그 분산된 활동을 집중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인지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공통되기'를 제시했다. 분석은 경제의 틀로 했는데 대안은 사회적인 맥락에서 찾은 건 아닌가? 무엇보다 너무 이상적인 방안 같다.

"독자들은 대안을 체제의 밑그림을 보여주는 것으로 기대를 한다. 대안이 과연 생산보다는 생성이란 말이 더 적합하다. 신자유주의는 계속 개인되기의 과정이다. 예전에 임금투쟁이 연대임금이라서 가능했는데, 오늘날에는 연봉제로 바뀌면서 성과에 따라 임금이 달라진다. 이런 상황에서 공통되기는 개인화 과정에서 파열을 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개체성으로 인간을 밀어 넣는 과정을 역류하면서, 혹은 횡단하면서 서로간의 소통과 공감의 구멍을 만들어 내는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 공통되기는 개인화되는 인지자본주의를 부수진 못해도 균열을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댐의 균열처럼 확장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균열의 균열이 연쇄반응을 일으킴으로 해서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의 관계를 만드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

책의 서두에 인지자본주의의 대표적인 사례로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아랍혁명을 들었다. 개인화과정의 균열로 보는 건가?

"튀니지 혁명은 야채행상 모하메드 부아지지가 경찰단속에 걸려서 항의하다 여자 경찰에게 뺨을 맞고 모욕감을 느껴서 시청 앞에서 분신하면서 시작됐다. 흔히 SNS의 힘이라고 분석하지만, 사실은 '내가 부아지지'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부지기수로 널렸던 거다. 이집트 혁명 역시 마찬가지다. 2007년 실종된 후 죽어서 발견된 칼레드 사이드를 추모한 페이스북 '우리 모두가 칼레드 사이드'를 빌미로 경찰이 운영자 와엘 그호님을 구금했고 이것이 1월 25일 광장 시위의 시발점이 됐다. 이런 혁명은 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에 지난 30~40년 동안 독재로 쌓인 균열이 터져 나오는 과정이다."

앞으로 쓸 책 <세계 대혁명>에서 인지자본주의 대안에 대해 쓸 거라고 했는데, '공통되기'의 사례를 소개한다는 것 같다.

"대안의 설계도라기보다는 방향성을 소개하고 싶다. 19세기부터 21세기까지의 세계 도처의 혁명을 짚으려고 한다. 파리코뮌, 러시아혁명, 68혁명, 라틴아메리카의 혁명이 제각각 다르다. 책에서 아주 큰 보편성 속에서 다양한 특이성이 움직이는 과정을 찾으려 한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