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작가] 오창은 중앙대 교양학부 교수

우리가 한 권을 책을 고를 때, 도대체 누구의 말에 의지해야 하는 것일까? 박상륭과 이외수 사이 영겁의 거리가 있듯이, 평론가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이 평론가에게서 별 5개 받은 작품이 저 평론가에게는 쓰레기로 치부되는 일도 허다하니까.

이 코너에서 작가뿐만 아니라 평론가를 부지런히 만나려는 이유다. 요컨대 책의 바다로 안내해 줄 선장들을 스펙트럼 별로 소개할 테니, 취향껏 선택해 보시라. 그렇게 만난 첫 평론가는 오창은 중앙대 교양학부 교수다.

그렇게 말하니 위안이 돼요

라고 말하고 그가 덧붙였다. "내가 워낙 당위적인 사람이라…."

인터뷰 말미, 오창은 교수는 새 평론집에 관한 의견을 물어봤고, 필자는 "문학작품이나 사회분석이 아니라 고민의 흔적으로 읽힌다. 한번 더 읽어봐야겠다"고 말했다.

"복잡다단한 현실을 너무 쉽게 얘기하지 않는 걸로 읽혔다면, 위안이 되네요."

이 말에 그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

오창은 교수를 알게 된 건 햇수로 5년 전쯤이다. 당시 그는 하승우 한양대 연구교수, 문학평론가 이명원 씨와 함께 연구공동체 '지행네트워크'를 운영하며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강좌를 한 달에 한 번 열었다.

이 강좌는 지금 중단됐지만, 그는 여전히 한 달에 한 번, 대중과 문화예술 책읽기 모임을 갖고 교도소 재소자에게 인문학 강좌를 한다. 지행네트워크 홈페이지에서는 이 단체를 '행동하는 지식을 꿈꾸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문학적 좌표를 보자. 오창은 교수는 어느 비평에서 이렇게 썼다.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던 때에, 나는 이런 고민을 하곤 했다. "작가론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쓴다면 누가 그 대상작가일 수 있을까?" 그때 내 뇌리에 떠오른 작가는 이문구, 조세희, 황석영이었다.'('그는 우리 시대 일그러진 텍스트, 작품엔 경의를, 작가에겐 야유를' 중에서)

그는 계간 <실천문학> 편집위원, 한국작가회의 정책위원장,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력으로 추정컨대, 그가 작심하고 말하는 작가들은 대개 리얼리즘 언저리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일 것이다.

무의식의 상처도 발견하는 작품들이죠

'당신의 평론집에 실린 작품들의 공통점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

잠깐 평론집 <모욕당한 자들을 위한 사유>를 소개한다. 여기서 '모욕당한 자'들은 바로 국가로부터 모욕당한 자, 그럼에도 국가체제 바깥을 상상할 수 있는 자를 일컫는다. 오창은 교수는 첫 평론집 <비평의 모험>을 낸 후 6년간 쓴 비평 중에서 국민국가와 국가주의에 관한 비평을 골라 새로 다듬어 묶었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된다. 우리 사회에서 불가촉천민이 된 이주노동자를 살펴본 1부, 국가란 이데올로기로부터 해방의 기획을 다룬 2부, 6·15공동선언 이후 변화된 분단현실의 재인식을 요구하는 3부, 체제 바깥의 상상력을 통한 '다른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논한 4부로 전개된다.

"이 평론집은 '국가'란 관점에서 쓴 글을 묶었기 때문에 문학사적 맥락에서 의미 있는 작가보다는 우리사회 풍경, 시대 감수성을 표현할 수 있는 작가를 소개했어요. 문학작품을 통해 사회를 말하기보다 우리사회 풍경 중에 문학으로 표현된 작품과 작가들을 조명한 거죠."

그렇게 언급된 작가들을 옮겨 본다. 시인 김정환, 이시영, 하종오, 소설가 박범신, 김재영, 전성태, 허혜란, 강영숙 등이다. 이기호와 편혜영이 이 테두리에서 조금 벗어나 있지만, 한번씩 분단이나 이산, 국경넘기 등 국가와 국가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낸 작품을 쓴 바 있다.

어떤 방식으로 다루냐가 중요하죠

'연민에 호소하는 게 좋은 문학인가?'란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도덕적으로 사는 것이 좋은 인생일 수 없듯, 당위적으로 옳은 말을 하는 문학이 좋은 문학일 리 없다. '모욕당한 자'와 '모욕한 국가'를 이분법적으로 그린 작품이 과연 좋은 문학일까. 앞서 언급한 작가들이 '의미 있는 작가'란 문단 한편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작품이 2010년대 감각을 공유하고 있는지는 의문이 들었다.

3D영화와 HD드라마가 넘치는 세상에 분단과 이주노동자를 말하는 시와 소설이 얼마나 읽힐까. 이 작품을 읽고 전율하는 독자가 얼마나 될까.

"이들 작품이 복잡다단한 세계를 단순화시켰다, 이주노동자나 탈북자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을 강화시켰다는 지적은 당연히 문제제기돼야 하고 작가들이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죠. 이들이 이런 문제를 처음 문학작품으로 썼다는 점에서 성긴 부분이 없지 않아요. 근데 그런 성긴 방식으로나마 문제제기 하지 않았다면 우리 문학담론에서 이런 문제를 이 정도로 말할 기회가 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작품인 거죠."

이렇게 딴지를 걸면서도 이 코너에서 오창은 교수를 첫 평론가로 소개하는 이유가 뭘까.

국내 꽤 많은 평론가가 해외에서 번역된 인문서를 읽고 이 내용에 기대어 작금의 한국문학을 저울질하고 있다면, 오창은 교수는 한국사회 현실과 시대 감수성이란 맥락에서 작품을 찾고 해석한다. 해외 석학의 글을 인용해 비평의 권위를 세우지 않는다. 요컨대 그는 남의 눈을 통해 작품을 걸러내지 않는다.

작품을 평할 때 에둘러 말하는 법이 없다. 일상의 경험을 비평에 섞기도 한다. 비평적 말하기에 익숙지 않은 독자가 읽기에도 그의 글은 부담이 없다.

"한국 문학사적 근원에서 전개하려는 태도를 내 나름대로 몇 가지 기준에서 쓰려고 해요. 별로 실천하진 못하지만 어렵게 쓰지 말자는 것도 그 기준 중 하나고요. 이 평론집에서 일화나 에피소드가 많아요."

한 때의 김연수

"평론가의 입장과 별개로 독자로서 좋아하는 작가를 꼽아달라"고 질문에 "<구경꾼들>의 윤성희"와 더불어 그가 꼽은 작가다.

"저도 실험적인 작품 잘 봐요. 근데 그 작품들을 내 비평의 전향에서 받아들이는 것과는 별개인 거죠. 시적인 작품 좋아해요. 이를테면 공부하면서 썼던 한 때의 김연수.

- 한 때의 김연수라면 <세계의 끝 여자친구>(2009) 이전의 김연수겠군요. (비평집에서 그는 김연수를 '리얼리즘을 회의하면서 리얼리즘적 성취를 구현한 작가'라고 평했다.)

"그렇죠. 실험적 시도 측면에서는 <구경꾼들>의 윤성희.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이어가는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냈구나 하고 생각했죠."

이번 평론집에는 이런 개인적 취향이 묻어나지 않는다. '국가주의' 포섭망에서 벗어난 비평은 책 한 권 분량만큼 남았고, 이 글들은 다음 평론집에서 묶을 생각이라고.

"우리와 서구는 사회인식과 감각의 지평이 다르죠. 우리는 식민지 역사적 경험을 했고, 그 경험에서 극도로 누군가에 의해서 조정된 게 있잖아요. 그런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이데올로기를 해방시키겠다고 글쓰거나 말하는데, 이걸 객관화시켜 볼 때 한국은 여전히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죠. 우리 처지에서 사회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우리의 무의식의 상처까지 발견하는 게 저는 문학이라고 생각해요."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