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꿩의밥

북쪽 사람들 굶주림이 심상치 않은 지가 오래이다. 산에 가면 이것 저것 무엇이든 먹거리가 있을 텐데, 산마저 헐벗어 민둥산이 되었다니 사람의 허기를 채워줄 식물이나 동물들의 먹거리도 사라져 더 어렵겠다 싶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의 동포가 배가 고픈데 먹거리가 넘쳐 비만을 걱정하고 있노라면 문득 죄스런 느낌도 든다.

우리의 옛 어른들도 배고픈 시절이 많았던 것 같다. 메꽃 덩이줄기나 칡, 도토리나 피처럼 진짜로 밥대신 허기를 채울 수 있는 먹거리를 산에서 찾기도 했지만, 이런저런 모습으로 식물에서 밥을 연상하기도 했다.

하얗게 핀 꽃이 이씨 왕족만 먹는 쌀밥 즉 이밥 같다 하여 이름 붙여진 이팝나무를 비롯하여 밥풀때기에서 유래했다는 박태기 나무도 있고, 조밥나무에서 된 조팝나무도 있다.

같이 사는 동물들을 생각한 식물들도 많다. 까치를 위해 남겨둔 감, 까치밥이 아니고 요즘 숲에서는 진짜 까치밥나무와 까마귀밥나무가 한창 꽃을 피우고 있고, 물위에는 개구리밥이 푸르르다.

고양이를 위한 괭이밥도 풀밭 한 켠에서 노란 꽃을 피우고 있다. 그리고 꿩의밥도 지금 양지 바른 풀밭에서 꽃이 한창 피고 있다.

꿩의밥이란 식물은 골풀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풀밭을 눈 여겨 들여다보면 잎이 마치 잔디인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

화려한 꽃잎이나 꽃받침을 갖고 있지 않은 식물 집안이지만 꽃이 한창 핀 이즈음 노란 수술이 가득히 눈에 들어온다. 다른 식물과 같은 두드러진 꽃잎과 꽃받침을 포기하고도 이토록 개성 넘치게 아름다울 수 있는 게 진짜 멋이고 아름다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왜 하필 꿩의밥일까. 꿩이 열매를 좋아했을까? 이전 저런 자료를 찾다 보면 모두 나와 같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데, 이 특별한 풀을 꿩이 즐겨 먹는 것을 관찰한 이는 없는 듯하다.

다만 이 풀들이 무리지어 자라는 곳에는 산비둘기를 비롯한 산새들이 모여 찾는 식물이고, 꿩들이 자주 나타날 듯한 숲가의 풀밭이니 그리 이름이 붙은 게 아닐까 짐작해 볼 뿐이다. 꿩밥, 꿩의밥풀이라고도 한다.

어떤 이는 어린 시절에 이 꽃을 따서 개구리 앞에 내밀면 얼른 혀를 내밀어 먹어서 동네 아이들끼린 개구리밥으로 불렀다고도 한다.(물론 물 위에 떠서 사는 개구립밥은 따로 있다.)

우리나라 전국에서 두로 볼 수 있다. 땅속에는 덩이줄기 같은 지하경이 있어 퍼져 나가니 보통은 여러 포기가 무리 지어 자란다. 모습만 보아서는 그저 잡초 취급을 당하며 살아왔을 듯 싶은데 한방에서는 지양매(地楊梅)라 하며 약으로 쓴다고 한다. 식물 전체를 쓰기도 하고 열매를 쓰기도 하는데 이질과 설사가 나면 다려 먹는다고 한다.

꿩의밥 꽃을 바라보면, 사람이 가진 꽃이라는 선입견은 얼마나 제한적인지, 그래서 자연은 얼마나 다채로운 존재인지 느낄 수 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