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비평가 앙트완 콩파뇽-정과리 대담

프랑스 비평가 앙트완 콩파뇽(Antoine Compagnon)이 한국을 찾았다. 대산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제 3회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석한 그는 롤랑 바르트, 라캉, 레비 스트로스 등 1960~70년대 프랑스 철학의 황금기 이후 살아있는 프랑스 최대 지성으로 불린다.

국내에는 <모더니티의 다섯 가지 역설>(Les Cinq Paradoxes de la Modernite)을 통해 알려졌다. 본지는 앙트완 콩파뇽과 정과리 연세대 국문과 교수와의 대담을 준비했다.

처음 찾은 서울의 인상과 책이 출간된 후 지금까지 문학관의 변화, 소설의 미래에 관한 사유까지 다양한 대화가 오갔다.

콜레주드프랑스 강의는?

앙투완 콩파뇽은 파리의 에콜 폴리테크니크에서 공학을 전공한 독특한 이력의 문학비평가다. 파리4대학 소르본, 미국, 영국 등에서 가르쳤고 2006년부터 프랑스 최고 석학 교수들이 모인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프랑스 현대문학을 강연하고 있다.

그의 전공은 프루스트 연구이다. 프루스트는 영미 문학에서 제임스 조이스와 비슷한 평가를 받는 20세기 최고의 소설가다. 그러나 높은 문학성과 별개로 일반 독자들이 접근하기 매우 난해하다.

1인칭 시점으로 '시간의 파노라마'를 써내려간 그의 소설은 방대한 내용과 복잡다단한 전개로 악명 높다. 그가 작금의 미디어 시대, 소설의 미래로 하이퍼텍스트의 혼종성, 다차원성을 언급한 것은 이런 연구와 연관이 있어 보인다.

- 첫 한국 방문이라고 들었다. 서울에 대한 인상은 어떤가?

앙투완 콩파뇽 (이하 앙) "서울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현재성의 장막이라고 할 수 있는 높은 건물이 들어선 것이다. 그 거대한 장막을 거치고 나면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보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시차 때문에 호텔 뒷길을 걸었는데 걷자마자 커다란 대로에 장벽처럼 펼쳐진 건물 뒤에 도시가 아닌 듯한 풍경이 펼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서울은 현대성을 추구함과 동시에 소중한 것을 보존하려는 도시로 보인다."

정과리 (이하 정) "우연히 인터넷에서 선생의 강의록으로 보이는 '장르의 개념'(La notion de genre)라는 파일을 읽은 적이 있다. 장르에 대해 매우 정교하게 풀이되어 있는 것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장르에 대한 책을 낼 계획은 없는가?"

"장르의 개념에 대한 것은 소르본에서 강의한 것이다. <이론의 악마>란 책에서 장르에서 언급하지 않아서 그 요구에 부응하려고 쓴 것이다. 강의 내용이 인터넷으로 확산돼서 러시아, 포르투갈로 확산됐다."

"선생은 무엇보다 '프루스트 전문가'다. 프루스트의 소설이 갖는 의의를 설명해달라."

"대부분 근대 소설의 끝이 비극인데 그의 소설은 긍정적 결말을 준다. 그리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경우에 단락에서 독자를 웃게 하는 코믹한 소설이다. 하지만 거대한 소설이라 두려움을 주는 책이다. 처음엔 빨리, 긴 문장에 집착하지 말고 읽기를 권한다."

"프랑코 모레티는 <근대의 서사시>란 책에서 이제 조이스의 <율리시스> 같은 책이 교과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으르 찾아서>도 교과서로 읽힐 수 있다고 생각하나?"

"프루스트 소설에서는 사랑ㆍ질투ㆍ정열ㆍ죽음 등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중요한 감정과 주제가 다 표현되어 있다. 위대한 소설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갈지를 알려주고 타인과 자아를 알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이 교과서로 쓰기에는 좀 아닌 것 같다. 이 작품엔 규칙이 없다. 체험이자 삶에 대한 실험이다. 감정교육으로서 읽을 수는 있을 것이다."

"선생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프랑스 현대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이곳에서 학위를 수여하지 않는 시민대학도 운영하고 있다. 시민대학의 의미를 교육자 입장에서 말해달라"

"특징은 다양한 청중이 수강하고, 학위를 수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항상 새로운 것을 연구하고 강의하고 보여 줘야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 다양한 청중을 대상으로 한 강연은 교수에게 하나의 도전이다. 오늘날 이런 콜레주드프랑스 강연을 인터넷에서 반복적으로 볼 수 있다."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들은 어떤 조건으로 강의하나?

"인문학, 사회과학, 공학 등 52명의 교수가 선발된다. 현재는 48명의 교수가 강의를 한다. 문학 강의는 중세문학과 현대문학 전공자가 각각 한 명씩 강의한다. 일반 대학에서 강의는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콜레주드프랑스는 확실히 강의가 적기 때문에 해방감이 있지만, 발레리나 푸코, 부르디외 수준에 맞는 강의를 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된다. 청중도 수준 높은 청중이라 다른 쪽의 부담이 있다."

하이퍼텍스트 시대의 소설

이번 서울국제문학포럼에서 앙투완 콩파뇽은 세계화시대 문학에 대해서 말했다. 최근 프랑스 소설의 상당수는 이민자 2세나 불어권 작가들에 의해 쓰인 것이고, 세계화시대 이런 양상은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각종 전자기구들의 발달로 독서 양식도 변할 것으로 본다.

하이퍼텍스트를 통해 독서는 더 이미지화될 것이고 덜 상상적이 될 것이라는 게 콩파뇽의 전망. 그러나 그는 이런 소설의 계층, 매체적 '오염성'이야말로 소설 고유의 특징이고 라블레, 도스토예프스키, 프루스트 등이 이를 보여주었다고 말한다.

- 이번 서울국제문학포럼에서 발표하는 글의 제목은 '소설이 존재하는 한…'이다. 글에서 순수한 고유성은 오염성에 있다고 말하며 하이퍼텍스트로서의 소설에 대한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글에 대한 설명 부탁한다.

"디지털 환경이 문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결론짓지 못한 상태라고 본다. 디지털 기술의 독서의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독서는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고독한 작업이지만 이제는 멀티태스킹 시대가 되었다. 독서와 문학의 형태는 변할 것이다. 물론 이전에도 미디어 변화가 문학 형태를 변화시켰다. 예를 들어서 신문이 발달하면서 연재소설이 많이 나오게 됐고, 요즘 미국에는 다양한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을 수 있는 문학도 있다. 지금까지 디지털 방식을 사용하는 것은 소수다. 아직 아름다운 디지털문학이 나왔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소설은 혼종적 요소를 포함한다. 바흐친이 말하는 변증법적 대화 측면이 있다. 혹자는 디지털 글쓰기를 우려하지만 반대로 나는 굉장히 아름다운 문학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발제문에서 소설의 근본적 오염성에 대해서 말한다. 소설은 혼종성, 다차원성, 다성성의 특징을 갖는다. 이런 특징이 하이퍼텍스트의 특징과 일맥상통할 수 있다. 그러나 소설은 선조성의 숙명을 벗어날 수밖에 없다. 이 부분에 대한 견해를 말해 달라."

"소설에서 선조성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간에 끊어서 읽을 수도 있다. 독서의 차원에서는 선조성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독서는 내가 책을 읽을 때 시간관리 맘대로 상상력도 할 수 있다. 영화나 TV와 비교할 때 나만의 상상르 할 수 있다. 책이 영화가 되면 실망하는 게 자기 상상과 다르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선조성은 중요하지 않다."

"세계화 시대 우리 소설의 접근 방식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선생이 생각하는 세계시장은 무엇인가?"

"출판계에서 세계시장은 영어의 우월성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프랑스 책은 매년 다른 언어에 최소 10권 이내로 번역되지만, 같은 책만 번역된다. 조나단 리텔같은 성찰적인 책은 거의 번역되지 않는다. <고슴도치의 우아함> 같은 책은 프랑스에서 베스트셀러가 됐지만 독일어 영어권 시장에서 인기가 없었다. 책 시장은 특별한 경제구조다. 한 권의 책이 성공한다고 작가의 다음 편이 성공한다고 보장 못한다. 예측불가능한 상황이다."

진짜 모던은 반모던이다

콩파뇽은 '모더니티에 저항하는 사람이야말로 모더니스트'란 역설을 통한 탁월한 문화, 문학비평으로 이름을 알렸다. 반모더니스트들은 모더니티 안에 있으면서도 저항하고, 모더니티가 버리려는 것을 보존하려는 사람이라는 것. 그는 종종 근대의 문을 연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의 예를 꺼낸다.

보들레르는 근대를 지향했지만 그의 작품 속에서 근대를 통해 상실하게 될 요소에 대한 슬픔을 담았다. 이렇듯 콩파뇽이 생각하는 진정한 의미의 모더니스트는 반모더니스트이고, 이들이 문학의 본질에 가장 충실한 사람이다.

"선생이 <모터니티의 다섯 가지 역설>(Les Cinq Paradoxes de la Modernite)를 펴낸 건 지금으로부터 21년 전이다. 그리고 2005 <반-근대인들>(Les Antimodernes)을 냄으로써 모더니티 문제를 다시 환기시켰다. 두 책 사이에 어떤 문제의식의 변화가 있는가?"

"처음에 모더니티 역설에서는 역설의 다양한 관점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고, 계속 근대화에 들어가면서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을 연구하는 것에 관심이 맞춰져 있었다. 우리는 '어제 일은 이미 옛날'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 책을 출간하고 나서 반근대화란 생각을 하게 됐다. 진정한 반근대화라는 것은 모더니즘에 저항하는 것이 진정정한 반근대화라고 생각한다. 반근대화가 진정한 모더니즘과 통한다는 것이다."

- <모더니즘의 5가지 역설>은 연대기적인 해석을 통해 근대성을 말하는데, 이 해석은 80년대에서 멈추고 있다. 지금 현상에서 그 이야기가 유효한지를 물어보는 것이다.

"책이 출간된 당시만 해도 모더니티의 개념이 승리하던 때였다. 지금은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18세기 산업혁명의 동력인 과학기술에 대해 서구인이 의심을 갖고 있다. 과학 기술이야말로 모더니티의 모델이다. 19세기 전위예술의 분야에 과학기술을 포함할 정도였다. 하지만 오늘날 의학을 제외하고 과학에 대해 예전만큼의 믿음을 갖지 않은 것 같다. 이것이 현대 예술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모더니티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 책에서 진정한 예술의 조건은 자기지시성, 자율성이란 근대 예술의 상황을 명시한 바 있다. 오늘날에 그 조건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하는가?"

"예술의 조건은 애초에 한번도 목표를 달성한 적이 없었다. 순수예술이라는 말라르메, 발레리의 시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근대에 대한 환상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다. 이를테면 자유, 평등, 박애의 가치 같은 것 말이다. 아니면 우리는 정체된 사회에서 살아가야 한다. 환상과 예술 조건에 대한 명확성을 갖지 않으면 우리는 정체된, 마비된 삶을 살게 된다."

프랑스의 시대

근대의 시대는 끝났고 고로 근대와 함께 찬란하게 시작한 '소설의 시대'도 끝났다는 회의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이런 견해를 담은 일본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은 이제 현대 문학의 위상을 정의하는 고유명사가 됐다.

하지만 근대의 정의에 따라 지식인들의 진단과 대응방식은 천차만별의 차이를 보인다. 앙투완 콩파뇽이 '진정한 근대인은 반근대인'이란 역설을 갖는 것은 근대에 대한 정의가 장 보드리야르나 가라타니 고진과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반- 근대인들>에서 선생은 모더니티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근본적인 근대인들이라는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간단히 설명해 줄 수 있는가?"

"진정한 의미의 모더니스트는 반모더니스트다. 무언가 보존하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모던의 어원은 현재와 밀접하다. 모던은 현대를 사는 것이다. 현재의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항시성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모더니스트들은 모던에 대한 환상을 갖지 않았고, 현대성에 대해서 맹목적이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시간이 지나간다는 의식을 가진 것이다. 이런 의식을 수용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들은 모더니티에 저항하면서 보존하려는 욕구를 가진 사람이다. 보들레르는 모더니티란 개념을 창조한 사람이다. '우수'란 시를 보면 엄청난 멜랑콜리가 표현된다. 모던을 향해 가면서도 상실하는 요소들에 대한 슬픔을 표현한다. 미래를 향해 떠나기 때문에 상실한 것에 대한 회한을 표현하고 있다. 시가 구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 지식인마다 모던과 포스트모던에 관한 구분 방식이 달랐던 것 같다. 장 보드리야르는 모던과 포스트모던을 구분을 통해 단절시킨다. 자크 데리다가 말하는 근대는 이미 탈근대의 가능성을 가진 근대입니다. 앙투완 콩파뇽이 모던과 포스트모던을 구분하는 가장 큰 변별점은 뭔가? 그 기준으로 현재를 모던, 포스트모던 중 어느 시대라고 보는가?

"포스트모던의 정의는 언어권과 상호체계에 따라 다르다. 보들레르와 니체의 모더니즘 미학은 이미 모더니티가 갖는 체계, 형태로서 징후와 해결책을 함께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더니티 미학은 처음부터 포스트모더니즘이 갖는 것을 이미 내포하고 있다는 말이다.

때문에 내가 초기 모더니트스트들은 반 모더니스트이다란 표현을 쓰는 것이다. 전형적인 모더니스트로 꼽히는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작품도 모더니티만이 아니라 다른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이런 요소를 일부학자는 포스트모던이라고 말하고 나는 '안티 모던'이라고 말한다.

모더니티를 가지면서도 그에 저항하는 요소다. 보드리야르와 데리다 식으로 비교해서 말하자면, 나는 데리다의 개념에 가깝다. 데리다는 모든 요소에는 해체 가능한 것이 있다라는 말을 했다. 그것이 모더니티란 말에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20세기 후반 프랑스 철학과 문학 이론이 세계 인문학을 사실상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생은 <이론의 악마>(Ledemon de la theorie)에서 그러한 프랑스 이론의 득세가 20세기 후반 갑자기 나타난 현상으로 보고 있는데,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20세기 전반기 상황을 이 책에 설명한다. 프랑스는 20세기 전반기 세계 동향에 대해서 무지하다가, 갑자기 중반기 이후 관심이 나타났는데, '오히려 늦은 발견이 앞선 것'이 될 수 있다."

"그건 자기들의 잠재성의 발견 아닌가? 이론적인 것에 대해서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고도 교양을 쌓은 것이 프랑스인이라서 잠재적인 것 아닌가?"

"'늦은 발견'을 한 시기가 좋았다. 베이비붐 세대로 예전에 비해서 2배의 인구가 대학 교육을 받은 시기이다. 이것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미국도 마찬가지다. 정통 인문학 연구는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기반을 두었는데,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 오는 바람에 인문학이 민주화된으로써 연구방법을 바꿀 필요성이 대두됐다. 그 방법론을 제공해준 것이 이론이었고, 프랑스에서 이론을 신속하게 구축하게 됐다. 68혁명 같은 대학의 민주화가 그런 요구 뿐 아니라 이론적 구축도 가능케 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