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요코 다와다-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대담이중 언어로 글 쓰는 이민 작가, 독일ㆍ일본 모두에서 문학성 인정받아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이본 소설가 요코다와다가 한국을 방문했다.(좌로부터) 소설가 요코 다와다, 서울대 독문과 최윤영 교수, 한양대 일분과 윤상인 교수, , 와의 대담을 진행하고 있다.
소설가 요코 다와다가 대산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제 3회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한국을 찾았다. 요코 다와다는 독일어와 일본어로 각각 21권, 17권의 소설과 에세이집을 낸 독특한 이력의 작가.

본지는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와 요코 다와다의 대담을 마련했다. 비교역사문화연구소는 국가 간 경계를 뛰어넘는 역사, 철학, 문학을 연구하는 '트랜스내셔널 협동과정'을 운영한다.

비교역사연구소에서 요코 다와다의 초청 강연이 있던 지난 5월 27일 강연 후 대담을 진행했고, 연구소 소장인 임지현 교수(역사학)를 비롯해 이창남 연구교수(독문학), 윤상인 한양대 일본언어문화학부 교수, 최윤영 서울대 독문과 교수가 함께했다.

경계의 문학

소설가 요코 다와다는 자신의 이력서에 항상 19살에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독일로 온 것을 적는다. 긴 기차 여행 동안 자신은 물을 갈아먹으면서 서서히 유럽에 적응해왔다는 것이다. 작가는 거의 모든 작품에서 나를 중심으로 이야기하지만, '나'는 고정된 주체가 아니라 물처럼 변하는 존재다.

소설가 요코 다와나
그녀는 이야기의 구성이나 줄거리, 사건에 의존하기보다는 '자아'와 '매체로서의 언어와 몸', '세계'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두 언어 안에 내재된 외국어적인 모습을 끌어내는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 특징. 이중 언어로 글을 쓰는 이민 작가로는 드물게 독일과 일본 모두에서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10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다고 들었다. 서울의 인상이 어떤가.

요코 다와다 "자동차들이 아주 많이, 빨리 돌아다녀서 놀랐다. 건널 수 없는 큰 강물 같았다. 문학에서의 언어 역시 건너갈 수 없는 큰 강물 같은 것이다.

독일과 일본어, 두 언어 사이 강물은 위험하지만 생산적이다. 처음 이중 언어로 소설을 쓸 때 강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두 언어를 각자 인식하며 작업했다. 최근 몇 년 사이 두 언어를 혼종하는 실험을 자주하고 있다. 강물 같은 서울의 자동차를 보고 언어의 차이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3권의 작품을 빼고 일본어와 독일어로 낸 작품이 모두 다르다고 들었다. 각각의 언어권 전공자들께 묻는다. 요코 다와다 문학의 특징이 뭔가?

한양대 일문과 윤상인 교수
윤상인 교수 "이번 서울국제문학포럼에서 조직위원을 맡았다. 요코를 섭외할 때 과정을 소개하겠다. 각 국에서 작가를 2명씩 불렀는데 요코의 경우 일본작가로 부르는가, 독일 작가로 부르는가가 문제가 됐다. 결국 독일과 일본이 각각 0.5명씩 양보했다. 이런 경우가 처음이었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이민 작가이면서 일본 문학계에서도 중요한 존재로 부각이 되고 있다. 요코의 소설을 읽다보면 굉장히 불편하다. 어떤 언어나 문화에 익숙한 독자가 소설을 읽을 때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다. 소설은 보통 어떤 공간에서 좌충우돌하는 사람이 난처한 지경에 빠지는 내용이다. 여행자의 성별, 국적, 피부색, 쓰는 언어를 알 수 없다. 여행자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도 알지 못한다. 소설을 읽으며 그야말로 트랜스내셔널(transnaional, 탈국가적) 경험을 하게 된다. 트랜스내셔널 개념을 이론을 통해서만 이해하게 되는데 요코의 소설은 트랜스내셔널의 가능성을 문학적 형상화를 통해서 보여준다."

최윤영 교수 "1960~70년대 독일 이민 작가들의 소설은 소수자, 소외, 고향 등의 주제를 다루었다. 이후 이민 작가 세대는 독일 내에서 작가로서 성공하고 싶어하는 의식이 강했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읽힐 수 있는 작품을 쓰려는 경향이 강하다. 동구권 출신의 이민 작가들은 완벽하게 독일어를 배우고 작품에 쓰려고 한다. 반면, 아시아계 이민 작가들은 모국어와 독일어의 차이를 인식하며 작품에서 다른 방식의 독일어를 구사하려고 한다. 요코 역시 독일어나 일본어로 작품을 쓸 때 언어에 동화되는 형태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언어의 균열을 통해 문화를 낯설게 보려는 시도를 한다."

작가로서 자기 정체성을 의식할 때 언제인가?

요코 다와다 "언어다. 말이라는 것과 마주보고 있을 때, 그것과 어울려서 어떤 개념, 상을 그려나갈 때 내가 작가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은 경계인이다

새울대 독문과 최윤영 교수
국내에 번역된 요코 다와다의 책은 소설 <목욕탕>과 에세이<영혼 없는 작가>, 도쿄경제대 교수 서경식씨와 함께 낸 서신집 <경계에서 춤추다> 3권이다. 앞의 두 책이 이중 언어의 이질성을 통해 세계의 경계를 인식한 작품이라면, 서신집은 일본과 독일을 오가며 느낀 디아스포라로서의 감수성을 담고 있다.

재일조선인 서경식씨가 모국을 잃은 상처로서 경계를 인식하고 있다면, 요코 다와다는 '모든 사람은 이민자'란 시선으로 경계를 인식하고 있다. 요컨대 여러 민족이 긴 세월 침략과 통합, 이주의 역사를 지나왔기에 사람들은 '정주자' 대 '이민자'의 단순 구도보다 '오래된 이민자'와 '새로운 이민자'의 구도로 대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언어와 국가에 대한 경계인으로서 인식을 하고 있다. 새로운 외국어를 계속해서 익히는 것도 그런 의도인 것 같다. 경계를 지속적으로 의도적으로 인식하려는 이유가 뭔가?

요코 다와다 "많은 사람들이 트랜스내셔널의 전제가 내셔널리즘이라고 생각한다. 배타적 민족주의,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트랜스내셔널을 연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트랜스내셔널은 결코 내셔널리즘을 출발점으로 삼지 않는다. 예를 몸 안과 몸 밖 사이에 피부가 있다. 저쪽 바다와 이쪽 육지 사이에는 항구가 있다. 나는 둘 사이의 경계인 피부나 항구를 섞어 보이지 않게 하는 데 관심이 많다."

윤상인 교수 "비교역사문학연구소 강연에서 번역과 문학에 관한 생각을 들려주었다. 강연 마지막에는 일본어와 독일어를 섞은 시를 발표했다. 명사를 일본어 한자로, 명사 이외 표현을 독일어로 쓴 시다. 재미있는 시도이지만, 이런 작품은 오직 한 사람만 읽을 수 있는 게 아닌가? 문학작품은 독자를 상정하고 쓰인다."

한양대 독문과 이창남 교수
요코 다와다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것은 시(詩)의 어떤 일부뿐이다. 이 시를 썼을 때도 마찬가지다. 문학은 항상 다양한 층위로 이뤄져 있는데 다 읽는 건 아니다. 그래서 같은 작품을 읽어도 10년 전과 지금의 감정이 다르다. 일본어가 하나의 언어라고 하지만, 나는 그 안에서도 굉장히 많은 언어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이창남 교수 "연구소 강연문과 발표 시를 번역을 담당했는데, 나 역시 재미있는 시라고 생각했다. 독일어와 일본어 사이 뿐 아니라 단일 언어 내에서도 완벽한 소통을 불가능하다는 것이 요지인 것 같았다."

요코 다와다 "사람들이 단일 언어로 의사소통할 때만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외국어로 의사소통할 때 오해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오해가 꼭 이해의 반대말은 아니다. 오해가 훨씬 더 나은 이해일 수 있다. 작가들에게 '트랜스내셔널 의사소통'(번역)은 오해 임에도 일어나는 게 아니라, 오해 덕분에 일어난다."

이창남 교수 "현대에는 국적이 다른 사람들이 의사소통할 때 거의 모든 경우 영어를 사용한다. 영어권 국가 국민도 영국 영어와 뉴질랜드 영어, 필리핀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자부심이 서로 다른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독일어와 일본어를 함께 사용하면서 언어의 위계질서를 느낀 적은 없는가?"

요코 다와다 "언어의 권력을 자주 생각한다. 17~18세기 일본이 서양문물을 배울 때 독일어는 권력이었다. 독일어는 더 이상 일본어에 권력을 가진 언어가 아니다. 때문에 내가 독일어를 쓰는데서 위계질서가 발생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국제학회에 가면 어디를 가나 영어로 말한다. 그럴 때는 일부러 일본어로 말한다. 일본어는 영어에 비하면 (권력이) 작은 언어이고, 항의하는 의미로 작은 언어로 말하는 것이다. 이번 서울국제문학포럼에서도 발제문을 일본어로 읽으려고 했다. 근데 한국에서 일본어는 작은 언어가 아니다. 그래서 이번 포럼에서만큼은 영어를 사용했다."

한양대 역사학과 임지현 교수
오만과 편견을 넘어서

대담은 문학에서 시작해 국가와 국가 간의 경계인식으로 주제를 넓혔다. 이번 대담을 준비하면서 가장 민감하게 생각했던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한국과 일본의 민족주의는 어떻게 형성되고 작동되는가? 2차 대전의 가해자로서 일본과 독일의 차이는 무엇인가?

요코 다와다가 활동하는 일본과 독일은 모두 2차 대전의 가해자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이 두 가해 국가의 전후(戰後) 태도는 달랐고, 피지배인들의 희생자 의식은 또 다른 민족주의를 작동시키고 있다.

정체성은 스스로 부과하기도 하지만 강자에 의해 부여되기도 한다. 일본인의 정체성은 어떻게 형성됐다고 보나?

요코 다와다 "일본은 19세기 유럽의 영향을 받았다. 당시 일본은 유럽 제국주의로부터 벗어나려는 저항으로 일본 제국주의를 만들었다. 이와 비슷하게 2차 대전 이후 일본인은 아시아인이란 정체성을 벗어나려 했다. 요즘 일본인들은 '아시아로 여행간다', '아시아 음식을 먹는다', '아시아 노래를 듣는다'는 말을 한다. 일본인은 일본을 아시아로 보지 않는다. 19세기 일본은 서양에 대항하는 개념으로 '아시아즘'을 주창했지만, 이제 일본은 하나의 제국이 됐다. 일본은 이제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말을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임지현 교수 "개인적으로 요즘 관심을 두는 주제는 '희생자 의식'(victim of national)이다. 설명하자면 우리가 일본에 대한 감정, 유태인이 독일에 대한 감정처럼 자기 민족을 다른 민족의 희생자로 여기는 의식이 민족주의를 강화시키는 기제로 쓰인다는 말이다. 요즘 희생자 의식이 동아시아에 얼마나 퍼져있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희생자 의식은 한국과 일본, 폴란드 독일이 함께 얽혀있다. 일본에 있어 희생자 의식이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기제로 사용된 적은 없나?"

요코 다와다 "19세기 일본이 유럽 제국주의 영향을 받았지만, 지금 유럽에 저항감을 가진 일본인은 없는 것 같다. 미국에 대해서는 다르다. 일례로 영어의 저항감을 갖는 일본인이 많지 않나."

현재 일본인이 한국인에 가진 감정은 어떤가?

요코 다와다 "일본인은 일본이 한국에 가한 역사적인 사실을 잘 모를 것이다. 특히 젊은 세대의 경우는. 지금은 드라마라든가, 여행 장소로 한국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인의 경우에는 독도문제 등 민족주의 자극하는 문제가 터졌을 때 일본 지배를 겪은 세대든, 겪지 않은 세대든 모든 국민이 분노의 감정을 갖는다. 임지현 교수가 말한 '희생자 의식'이 작동하는 것이다. 일본 우파들이 독도문제를 들고 나오지만, 전체 일본인은 그런 의식에서 자유롭거나 오히려 무관심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요코 다와다 "일본인은 독도문제를 민족주의로 보지 않는다. 나는 한국 사람들이 그런 문제들을 민족주의 감정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걸 일본인은 모른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라고 본다. 반면 일본의 오키나와 미군기지문제는 다른 방식으로 대응한다. 미군기지 이전 등이 사안으로 등장할 때는 일본은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인식한다. 이때 일본의 내셔널리즘을 드러난다는 느낌을 받는다. 임지현 교수가 '희생자 의식'이 민족주의를 강화시킨다고 말했는데 일본은 미국에 대해서 희생자 의식을 갖고 있는 셈이다. 러시아와 북방영토, 쿠릴열도의 문제가 불거지면 일본이 피해자인 것처럼 내셔널리즘을 이슈로 들고 나오는 우익세력이 있다. 하지만 한국과일본의 관계에서 희생자 의식을 느끼는 건 한국이다. 그래서 독도 문제가 불거질 때 한국에서는 민족주의가 작동되더라도, 한국의 이런 대응이 일본인의 감정을 자극하지는 않는다."

최근 임지현 교수가 '희생자 의식'에 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하고 있지만, 사실 2003년 사카이 나오키 코넬대 교수와 나눈 대담집 <오만과 편견>에도 이런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이때 희생자 의식에 반하는 '집합적 유죄의식'도 말했다. 이를테면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독일인들도 홀로코스트에 관해 집단 죄의식을 갖고 있는 현상 말이다. 요코는 일본인들이 한국의 민족주의 대해 무심하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서 희생자 의식은 작동하지만, 집합적 유죄의식은 작동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 어떻게 봐야 하나?

임지현 교수 "집합적 유죄의식을 강하게 느끼는 사회에서 이 의식이 다른 의미에서 국가의 단결성을 강조한다는 것이 한나 아렌트가 강조한 것인데, 요코의 말에 의하면 이 분석이 일본사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집합적 유죄의식보다 '집합적 책임의식'으로 바라보는 건 어떨까. 다시 말해 일본 전후세대가 자기들이 저지른 일에 책임의식을 갖지만, 죄의식을 느끼는 건 아니라고 말이다."

요코 다와다 "일본의 좌파는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대해서는 옳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2차 대전에 관해 일본사회에 내재된 의식은 자기들이 희생자란 의식이다. 자신들이 원자폭탄으로 인해서 피해를 입었다는 의식때문에 일본이 가해자의 입장에서 반성할 기회가 없었다. 나는 그것이 독일과 일본의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국민성인데, 독일에서는 자신이 잘못했을 때 '미안합니다. 다시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게 일반적인 태도로 자리잡혀있다. 일본에서 자기가 책임을 진다는 것은 할복한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책임의식이 결여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철도공무원이 전철을 철도 문 앞에 제대로 세우지 못하면 반성문을 쓰게 한다. 반성문을 몇 번 쓰고 그 죄의식에 시달려 자살을 한 경우가 몇 번이나 있었다. 그런 사회라서 그런 사죄가 힘들 수도 있다."

최윤영 교수 "그런 사회에서 책임지는 건 쉽지 않겠다.(웃음) 그런데 배를 가른다는 건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타인한테 사죄하는 것 같진 않다. 남한테 해를 끼쳤다는 미안함 보다는 자신의 미션을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했다는 의식이 더 강한 것 아닌가?"

요코 다와다 "전철을 좀 어긋나게 세운다고 누구한테 폐를 끼친 건 아닌데, 그걸 그게 반성문의 형태로 쓰게 되면 남에게 폐를 끼쳤다는 식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회다."

그렇다면 작가는 과거 일본 제국주의에 관한 일본의 무관심이 문제가 있다고 보는 건가?

요코 다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그것을 과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집의 쓰레기를 길에 버렸으니 내 집은 깨끗해졌다'고 생각하는 게 일본의 사고방식이다. 바깥에 쓰레기가 생긴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은 일본사회다. 역사인식에 대해서도 그런 시각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식의 대담이 한편으로 필요하면서도 작가 개인에게 미안할 때가 있다. 독일작가 잉고 슐체와 한유주 작가와 대담을 진행했는데, 대담이 끝나고 잉고 슐체가 고맙다고 말하더라. 자신은 동독출신 작가이라서 해외 학술제나 심포지엄을 가면 독일 정치투사로 비친다는 거다.

그런데 작가로서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기뻤다고 했다. 작가가 해외에서 활동하면서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여받을 때가 많을 것 같다.

요코 다와다 "독일에서는 작가보다 일본인으로 보는 반응이 더 많다. 프랑스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문학 얘기만 한다. 오스트리아도 독일권이지만 문학 얘기를 주로 한다. 하지만 나는 문학 이야기를 나눌 때 정치적인 요소가 전혀 들어와 있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프랑스는 식민지 지배를 한 역사가 있지만, 식민지 지배를 통해서 문화를 전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식민지 지배를 타당화하는 사람도 있다. 독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작가에게도 정치의식은 중요하다."

한국이 일본작가를 초청해서 인터뷰나 대담을 나누다 보면 꼭 대답이 정해진 질문들을 던지는데, 그 대답은 대부분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해야하는 대답이다. 작가 개인에게 죄의식을 강요하는 건 아닌가, 임지현 교수가 말한 '희생자 의식'이 이런 식으로 표출되는 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요코 다와다 "일본 정치가는 바보라서 자기들이 가해자인 것도 모른다. 나는 오히려 이곳에서 가해자로 말할 수 있어 기쁘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