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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소식에 관한 일련의 기사들은 씁쓸한 인상을 준다. 승리의 서사 아래, 준비과정에서 사람들의 애환이 소개되고, 근거나 출처 없이 경제 파급효과가 운운된다. 김연아가 프리젠테이션 과정에서 입은 옷도 화제에 오른다. 공항에 모습을 보이지 않은 그녀는 며칠 후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제 다 나았다.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국가적 행사 앞에는 아픈 것도 죄가 되는 이 이상한 논리를 기특하게 전하는 뉴스는 우리가 결코 정상적인 국가에서 살고 있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정당과 이익단체들은 올림픽, 독도 문제, 과거사 문제 등 국가적 대의 앞에서 일관되게 대동단결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렇듯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갈등, 가치관은 국가나 민족이란 '대의' 앞에서 다양성을 상실한다.

내셔널리즘(nationalism: 국가주의, 민족주의)은 이제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지양해야 될 가치관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저런 '국가적 사안'을 눈앞에 두게 되면 그것은 이미 항상 애국심이란 이름으로 사람들을 움직인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상상의 공동체>에서 "민족은 만들어진 허구"라고 말하지만, 국가적 갈등을 앞둘 때면 한국의 단일민족 신화는 불변하는 진실로 상정된다.

국내 지식인 사회에서도 네이션(nation: 민족, 국민국가)의 허구성과 내셔널리즘의 한계를 말하는 것은 여전히 소수 진보적인 학자들의 몫이다.

이들은 내셔널리즘의 허구성을 기원부터 설명해야 하고, 제 1세계 제국들의 민족주의와 제 3세계 저항적 민족주의가 (내셔널리즘 아래 모든 가치가 포박된다는 점에서)거기서 거기임을 증명해야 한다.

지난 주 내셔널리즘에 관한 두 권의 책이 출간됐다. 박유하 세종대 교수가 쓴 <내셔널 아이덴티티와 젠더>와 임지현, 박노자, 이진경 등이 엮은 <근대 한국, '제국'과 '민족'의 교차로에서>(이하 근대한국)가 그것이다.

저자들의 지적 스펙트럼은 다르지만 내셔널리즘에 관해 지속적인 문제제기를 해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전자는 일본 근대문학을 통해 국민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을, 후자는 근대 한국사회에서 내셔널리즘이 성립·작동되는 과정을 밝히고 있다.

<마음>이 일본을 만들었나

일본의 지성 가라타니 고진은 책 <내셔널 아이덴티티와 젠더>에 이런 표사를 썼다.

'일본의 문학 비평은 소세키를 어떻게 읽을지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 나 자신의 소세키론을 비롯한 수많은 소세키론에 속에서 이 책은 획기적이다.'

이 맥락을 알기 위해서는 고진의 대표작〈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을 읽어야 한다. 소설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있다면 비평에 고진이 있다고 할 정도로 그가 유명해진 데에는 이 책의 공헌이 지대한데, 고진은 이 책에서 미셸 푸코의 고고학 방법을 원용해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을 파헤친다.

그는 근대 국민국가가 형성되고 난 뒤 국민문학이 성립됐을 거라는 기존의 통념을 깨고, 근대문학이 국민이라는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데 핵심 요소로 작용했음을 입증한다. 문학을 통해 국민이란 개념이 생긴 과정을 보여준 셈이다.

박유하 교수는 소세키의 대표작과 대표작이 쓰인 시대, 일본에서 읽힌 서구 문학을 통해 고진의 이 주장에 힘을 보탠다. 저자는 우선 나쓰메 소세키가 영문학자에서 소설가로 변해가는 과정과 서양에 대한 그의 '모방성의 욕망'을 읽어낸다.

'소세키가 영문학자에서 한 사람의 소설가가 되어가는 과정과 그 후의 텍스트가 보여주는 것은, 사카이 나오키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방성의 욕망"이다. 다시 말해 서양에 있는 문학이 일본에서 있을(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했고, 그게 대항할 수 있는 문학을 구상하고, 그와 같은 문학을 하기 위해서, 소세키는 개인의 안위를 버린 것이다.' (329페이지)

그리고 <도련님>, <문>, <마음>, <행인>등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작에 등장하는 내셔널리즘을 지적한다. 저자는 "소세키 텍스트에 나타나는 외부에 대한 저항의식과 내부에 대한 강한 소속의식이, 소세키를 '국민작가'로 만들었다"(338페이지)고 말한다.

요컨대 소세키는 '문명=교육의 세례를 받은 일본, 도회지, 엘리트, 남성' 중심적 발상에 근거한 담론을 통해 '아시아, 시골, 무교육, 여성'의 영역을 차이화하는 텍스트 썼고, 이를 통해 일본의 국민작가, 국민문학을 창출하는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총 10장으로 구성된 책인 소세키의 유년시절부터 소세키의 제국주의적 감성, 대표작 <그후>와 <문>에 드러난 근대국민국가 질서사상 등을 분석한다. 그리고 종장 '근대를 넘어서'에서 보수평론가 에토의 소세키론을 통해 소세키가 국민작가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고찰한다.

트랜스내셔널 코리아

국내 내셔널리스트들은 서구 내셔널리즘과 제 3세계 저항적 내셔널리즘을 동일선상에서 논의하는 것은 물의라고 반박한다. 그리고 국내 내셔널리즘 비판 논의가 사실상 제 1세계 사회의 가치관을 답습해 그들의 논리를 강화하는 기제로 쓰인다고 역비판한다.

그러나 (아파서)"심려 끼쳐 죄송하다"는 김연아의 저 발언처럼, 환경파괴를 우려한 올림픽유치 반대 행동이 국내에서 깡그리 무시된 것처럼, 사회 모든 다양성이 애국이란 이름으로 파괴된다는 점에서 저항적 내셔널리즘 역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근대한국>은 이 지점에서 근대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분석한 책이다. 2008년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을 '반(反) 기념'하기 위해 열린 학술회의 'Modern Korea at the Crossroad between Empire and Nation'의 발표문을 수정, 보완한 책으로 여기서 '반기념'은 국가 권력의 정통성을 옹호하는데 치중했던 궁정역사학에서 벗어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저자들은 말한다. 우리에게 식민지 기억은 지우고 싶은 기억이면서 동시에 해방 이후 한반도에 탈식민적 권력의 자산으로 작동해 왔다고. 저자는 이런 식민주의의 희생자 의식에는 제국에 대한 동경이 무의식적으로 감추어져 있다고 지적한다.

제국에 대한 동경과 식민지로 전락한 회환이 희생자 의식 밑바닥에 숨어 있다는 것. 이 책은 한국 근대 담론을 읽는 두 키워드, 제국주의와 민족주의라는 틀에서 그동안 제국주의 피해자로만 인식해왔던 시각에서 벗어나 민족주의에 내재된 제국주의 속성을 밝히고 제국과 식민지가 주고 받는 상호 관계를 고찰하고 있다.

책은 총 12편의 개별 글을 묶어 3부로 나눠 소개한다. 일본의 비평가 와타나베 나오키는 문학평론가 임화의 이식문화론을 통해 한국 문학이 외국문학의 모방과 의식의 제작 주체로서 조선의 이중성을 분석한다.

트랜스내셔널리즘을 해체주의(deconstruction)의 접두사 'de'처럼 경계를 무너뜨리며 동시에 재구성하는 의미로 사유하는 윤성호는 백낙청의 민족문학론을 미국의 트랜스내셔널리즘에 대한 비판적 관점에서 살펴본다. 손희주는 민족국가의 단일성, 민족문화 정체성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 모순을 지적한다.

'같은 민족을 강조하는 전략은 해외 한인을 동포라는 개념에 포함시켜 국제적인 연대를 확대하는 방안으로, 해방과 분단 후 남한의 문화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한 문화정책의 주요한 일부였다. 한국적 문화정체성을 만드는 것은 대한민국 문화 정책의 핵심적인 요소였다.' (369페이지)

근대 일본과 한국 두 나라의 내셔널리즘을 고찰한 두 책은 묘하게 닮아 있다. 일본은 제국을 통해 스스로 제국이 된 유일한 아시아 국가다. 박유하 교수는 소세키의 텍스트를 빌려 서양의 모방을 통해 국민국가의 틀을 만들면서도 동시에 서양의 국민국가에 저항하는 일본 근대를 설명한다.

같은 시기 근대 한국의 지식인들 역시 일본을 모방하는 동시에 일본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국민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만든다. <근대 한국>의 12명의 저자들은 문학, 영화, 담론 등을 통해 이 과정을 밝히고 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