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안내] 아름다움은 일상적이고 하찮은 것들에 있다고 주장

시간의 목소리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지음/ 김현균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1만 3000원

에르아르도 갈레아노는 라틴아메리카의 비극을 쓰며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1940년 우루과이에서 태어난 그는 14살에 사회주의 성향의 주간지 <엘 솔>(El Sol)에 캐리커처를 그리며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각종 좌파 매체를 거쳤고, 이 경력을 토대로 많은 정치적 연대기를 펴냈다. <1964년 중국: 도전의 연대기>, <라틴아메리카의 절개된 혈맥>, <라틴아메리카 연대기> 등이다. 단편집 <세상의 유랑자>, 소설 <우리들의 노래>는 그의 문학적 글쓰기를 보여주는 책이다.

애석하게도 작가의 화려한 이력은, 역으로 한국의 독자에게 거리감을 준다. 라틴아메리카는 우리와 너무 먼 곳에 있고 작가의 삶은 꽤 특별하고, 그가 낸 책 제목들은 하나같이 정치적이다. 그의 책이 너무 비장하거나 너무 대단해서, 독자는 선뜻 그의 책에 손길을 주지 못한다.

신간 <시간의 목소리>는 333개의 에세이로 엮인 작품집이다. 저자는 그의 이전 독자들의 기대를 배반하며 세상과 인간사를 깊이 있게 통찰한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사회를 비판하거나 독자를 계몽시키지 않는다.

이 책에서 '선'(252페이지)과 '악'(251페이지), '문명과 야만'(286페이지)은 '와인 바'(101페이지), '푸닥거리'(153페이지) 같은 것들과 동일하게 이야기된다. 저자는 문학과 역사, 정의와 사랑처럼 일견 대단해 보이는 것들이, 실은 일상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빚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시간으로 빚어졌다./ 우리는 시간의 발이며 시간의 입이다./ 시간의 발은 우리의 발로 걷는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조만간 시간의 바람이 흔적들을 지울 것이다.' (17페이지, '시간이 말하다' 중에서)

단 몇 줄의 문장만 읽어도 알 수 있듯 이 책은 상당히 문학적이다. 물론 골방에 틀어박혀 유유자적하며 스스로를 예술가라 자처하는 자들의 알량한 산문과도 다르다. 갈레아노는 출세작 <라틴아메리카의 절개된 혈맥>을 쓰고 고향을 떠나 아르헨티나와 스페인으로 망명 생활을 했고 타국에서 9년을 보낸 후 이 책을 썼다.

이 책의 짧고 간결한 언어 뒤에는 치밀한 미학적 태도와 전통적 장르를 깨뜨리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세상의 다채로운 풍경을 담은 이야기들은 실화에 바탕을 둔 것이거나 작가의 개인적 성찰을 담은 것들이다.

이 이야기들을 통해 그는, 아름다움은 사회가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일상적이고 하찮은 것들에 있다고 말한다. 사랑과 역사와 정의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몇몇 이야기에 따르면, 생명의 나무는 거꾸로 자란다. 몸통과 가지는 아래쪽을 향하고 뿌리는 위쪽으로 자란다. (…) 가장 내밀한 것과 가장 연약한 것을 땅속에 감추지 않으며 위험을 무릅쓰고 그것들을 악천후에 드러낸다. 맨살의 뿌리를 세상 풍파에 건네준다. "그게 삶이다." 생명의 나무가 말한다.' (110페이지, '알몸을 드러낸 영혼' 중에서)

강남좌파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1만 7000원

'모든 정치인은 강남좌파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가 강남좌파의 실체와 논란을 집대성한 책을 펴냈다. 강남좌파의 유형을 9가지로 분류해 총체적 분석을 시도한다.

어원과 등장 배경, 강남좌파의 원조격이라 할 '강단좌파'와 미국의 '리무진 진보주의자'에 대한 설명도 곁들였다. 조국, 손학규, 유시민, 문재인, 오세훈, 박근혜에 대한 인물비평을 통해 왜 모든 정치인은 강남좌파일 수밖에 없는지 저자 나름대로의 분석도 덧붙였다.

걸작의 공간
J.D.매클라치 지음/ 김현경 옮김/ 마음산책 펴냄/ 2만 6000원

19세기 미국 대표 작가 21명의 집과 집필실을 취재한 책. 저자는 <작은 아씨들>의 루이자 메이 올컷의 집필실부터 <톰 소여의 모험>의 마크 트웨인의 집, <모비 딕>의 허먼 멜빌의 집까지 작가들의 집을 살피고 이들의 인생을 소개한다. 작가들의 환희와 한숨이 오가는 공간, 그들이 쓴 작품 뒷이야기들이 수백 컷의 사진과 함께 엮였다.

잉여의 시선으로 본 공공성의 인문학
백소영, 엄기호 외 지음/ 이파르 펴냄/ 1만 2000원

지금 우리 청소년들은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불안한 미래를 살고 있다. 이른바 '액체근대'의 시대에 '몫 없는 자'로 살아가는 것는 '벌거벗은 삶'이 우리 젊음 앞에 펼쳐진 미래다.

이 책은 이 시대 청춘들이 짊어진 고통(1부), 이들의 저항(2부), 저항을 제도화하는 시도들(3부)을 분석한 책이다. 한신대 평화와공공성센터가 주최한 지난해 콜로키움을 중심으로 백소영, 김진호, 엄기호, 구미정 등 10명의 필자들이 쓴 12편의 글을 엮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