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르 이 저자] 빔 벤더스영화 작업 틈틈이 찍은 사진과 글 모아 에세이집 출간

빔 벤더스는 전후세대 독일 영화인을 일컫는 '뉴저먼시네마'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1962년 젊은 영화작가 26명의 도발적인 선언("이제 아버지 세대의 영화는 죽었다.

우리는 새로움을 신봉한다")으로 시작된 이 영화운동은 2차 대전 이후 침체됐던 독일영화계에 새로운 숨결을 불러일으켰다. 뉴저먼시네마의 3인방 중 베르너 파스빈더, 베르너 헤어초크가 상대적으로 유럽적인 영화 양식에 치중했다면, 빔 벤더스는 미국적인 양식을 섞어 독특한 영화미학을 만든다.

그의 영화를 설명할 때 그가 어린 시절 미국 영화와 라디오를 보고 듣고 자랐다는 사실이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빔 벤더스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지만, 그를 이 코너에 소개하는 것이 어색하진 않다. 그가 미국적 양식을 영화에 차용했다 할지라도, 그는 분명 할리우드 상업시스템보다 유럽의 작가주의 경향으로 영화를 찍어온 예술인이니까.

빔 벤더스. 1945년 독일태생의 영화감독으로 10대 미국대중문화에 푹 빠져 목사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하고 아버지 뜻에 따라 의과대학에 진학하지만 2년 만에 그만두고 화가가 되기 위해 파리로 갔다.

그곳에서 오즈 야스히로, 로베르 브레송, 존 포드, 니콜라스 레이의 영화에 심취해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한다. 1967년 단편영화 <장소들>을 만들고 1971년 피터 한트케의 소설을 원작으로 <페널티킥을 맞이하는 골키퍼의 불안>을 만든다. 이 작품이 호평을 받아 그는 감독으로 본격적인 이름을 알렸다.

삶과 소통의 문제를 깊이있게 들여다 본 <도시의 엘리스>와 <시간의 흐름 속으로>, 미국문화에 대한 비판과 동경이 뒤섞인 <미국인 친구>와 <파리, 텍사스>, 오즈 야스지로 감독에 대한 오마주로 만든 다큐멘터리 <도쿄-가>등이 초기 대표작이다.

방랑하는 사람들, 풍경화 같은 장면으로 인물의 심리를 대신 표현해 내는 기법, 정적인 롱테이크, 미국 문화에 대한 애증이 그의 영화를 관통하는 특징들이다. 우리에게는 통일 직전의 독일을 배경으로 한 <베를린 천사의 시>로 알려졌는데, 그는 이 영화를 기점으로 한번 더 도약한다.

시간과 공간의 해체, 파편적인 내러티브 등 포스트모던한 경향을 보여준 것. 그는 이 영화로 칸영화제 감독상과 몬트리올영화제 작품상을 받았다. 하지만 1999년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이후 그의 영화는 침체에 있다. 과거에 비해 의미있는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데, 영화 전반을 흐르는 세속적인 낭만의 과잉 표출이 이제 한물간 멜랑콜리로 보이기 때문인 것 같다.

최근 그의 사진집 <한번은,>이 번역 출간됐다. 영화 작업 틈틈이 찍은 사진과 글을 모은 사진 에세이집이다.

그는 7살 때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1984년 <파리, 텍사스>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후 사진 인화작업을 시작하며 사진을 외부에 알리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1986년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첫 사진을 연 이래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개인전을 개최할 만큼 그의 사진 실력은 프로 수준이다.

책은 빔 벤더스를 거친 수많은 사람들과 장소, 이미지와 그에 대한 단상이 300여 쪽에 걸쳐 펼쳐진다. 장뤽 고다르, 오시마 나기사, 데니스 호퍼, 구로사와 아키라, 짐 자무시 등 20세기 영화인들의 사생활도 엿볼 수 있다. 몇 장의 사진을 시리즈로 묶어 하나의 스토리를 만든 구성도 돋보인다.

이제는 영화 감독보다 영화제 심사위원장으로 불리는 빔 벤더스지만, 피사체를 프레임 안에 잡아두는 감각을 보면 그가 왜 거장의 이름으로 불리는지 알 수 있을 터다. 그는 이제 사진으로 말한다. '나는, 전설이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