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안내] 라캉, 데리다 등 철학자들의 사유와 개념 문학 작품 통해 다시 읽기

문학과 철학의 향연
양운덕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1만 5000원

자크 데리다가 제임스 조이스 학회에 초대된 적이 있다. 제임스 권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일개 철학자가 뭘 할 수 있었을까? 그는 <율리시즈>에서 유독 작가가 'Yes, Yes'를 두 번씩 쓰는 특징을 발견하고, 이 소설에서 'yes, yes'라고 쓰인 구문을 찾기 시작했다.

총 200여 회 나온다고 하는데, 그는 이 사례를 통해 기표와 기의 간에 인과관계는 없으며, 의미는 오직 차이에 의해서만 정해진다고 설명했다. 데리다의 개념을 모두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우리가 흔히 접하는 소설과 영화에 철학적 개념이 대입 가능하다는 것은 재미있는 사실이다.

철학자 양운덕은 90-2000년대 국내 유행한 정신분석학과 철학의 개념을 문학 작품을 통해 설명한다. 신간 <문학과 철학의 향연>은 이 작업을 정리한 책이다.

하이데거, 푸코, 세르, 베르낭, 지라르, 구스 등 여러 철학자들의 개념을 포의 <도난당한 편지>, 카프카의 <법 앞에서>, 횔더린의 시, 플라톤의 <향연>, 보르헤스의 <자이르>, 라퐁텐 우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을 통해 다시 읽는다.

이를테면 라캉의 포 읽기는 <도난당한 편지>를 프로이트의 반복강박의 틀로 재해석하면서 각 장면에서 기표들의 상징질서에 사로잡힌 주체들의 모습을 부각시킨다.

'잃어버린 편지는 라캉의 해석이나 정신분석을 통해서 제자리를 찾고 그 숨겨진 의미를 온전하게 드러냅니다. 지연된 편지, 지연된 의미는 바로 기표가 걸어가는 길이죠. 주체들은 그것이 우회한다고 생각하지만, 기표는 그렇게 다른 기표들을 가리키면서만 자기 자리를 마련하죠.' (76페이지, 1장 주체들을 길들이는 기표, 뒤팽도 벗어나지 못한 기표의 질서 중에서)

데리다의 카프카 읽기 역시 마찬가지. 저자는 해체의 틀로 <법 앞에서>를 독해하면서 텍스트의 접근 불가능성, 접근할 수 없는 것에 접근하려는 시도를 소개한다. 4장에서는 푸코의 '윤리적 주체의 자기 형성' 틀로 플라톤의 <향연>을 읽는다. 고전학자 베르낭, 비평가 르네 지라르와 구스의 경우를 참조해 오이디푸스를 읽는 7장 역시 흥미롭다.

정신분석학과 철학을 문학과 겹쳐 읽는 것은 저자의 자의적 방식이 아니다. 이 책에 소개된 내용은 거의 모두 근현대 지식인들이 실제 자신의 사유와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서 문학작품을 예로 든 산문과 논문의 내용을 대중 언어로 쉽게 설명한 것이다.

지식인의 책무는 고도의 지적인 활동과 함께 그 지적인 결과물을 사회에 환원하는데 있을 터다. 철학자 양운덕의 미덕은 그것이다. 지식인 사회의 한 풍경을 대중의 언어로 소개하는 것. 이 책이 소개되야 하는 이유다.

독거미
티에리 종케 지음/ 조동섭 옮김/ 마음산책 펴냄/ 1만 원

프랑스 누아르 작가 티에리 종케의 추리소설. 한 성형외과 의사가 벌이는 복수극을 줄거리로 영화적 긴장감과 속도감 있는 전개가 쾌감을 준다. 알모도바르의 영화 <내가 사는 피부>의 원작 소설로 다수 캐릭터가 등장하고,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방식은 알모도바르의 영화와 닮았다.

고의는 아니지만
구병모 지음/ 자음과 모음 펴냄/ 1만 1000원

청소년 소설 <위저드 베이커리> 장편 <아가미>로 알려진 구병모의 첫 소설집. 표제작인 '고의는 아니지만'은 말 한번 잘못했다가 살해당하는 유치원 교사 이야기. 이밖에도 2009년 등단 후 2년간 발표한 단편 2편과 신작 2편을 묶었다. 7편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사회와 인간의 폭력성과 일상의 공포와 경이를 차분하게 풀어낸다.

긴 여름의 끝
다이앤 듀마노스키 지음/ 황성원 옮김/ 아카이브 펴냄/ 1만 8000원

환경호르몬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책 <도둑맞은 미래>로 알려진 다이앤 듀마노스키의 신작. 환경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한 저자는 전작의 문제의식을 '전지구'로 확대한다. 요컨대 지구가 어떻게 시스템을 유지하는지, 현대 문명이 지구의 균형을 무너뜨리는지, 그에 대해 지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해 소개하는 것. 저자는 작금의 위태로운 시기에 인류가 살아남기 위한 대안을 나름의 시각에서 제시한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