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르 이 저자] W.G 제발트보편적·개인적 경험 문학으로 승화… 최근 번역 출간

스필버그부터 코언형제, 타란티노까지 미국 영화 안에서도 스펙트럼이 나뉘듯, 같은 독일 문학권 안에서도 다양한 작가들이 있다.

'헤르타 뮐러'로 대표되는 최근의 독일 소설은 국내 독자들의 정서와 상당히 거리가 있지만, 대체로 어둡고 진중하면서도 시적 표현이 아름다운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헤르타 뮐러와 함께 국내에 가장 잘 알려진 현대 독일 작가가 W.G. 제발트다. 그는 영미평단에서 먼저 소개된 작가이자 '현재 가장 활발하게 토론되고 있는 독일 작가'(독일어판 위키피디아)이다. 그리고 2008년 그의 작품이 번역 출간되기 시작하면서 국내 문단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해외작가 중 한 명이 됐다.

W.G. 제발트.(Winfried Georg Sebald) 1944년 독일 남단 알고이 지방에서 태어나 2001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비운의 작가. 프라이부르크대학과 프리부르대학에서 독일문학을 공부하고 66년 영국으로 가 어학과 문예학, 독일문학 등을 가르치며 작품을 썼다.

그가 첫 소설을 낸 것이 1990년이고 마지막 <아우스터리츠>를 내고 세상을 뜬 것이 2001년이니 작가로 활동한 것은 불과 11년 안팎이다. 그의 작품들은 영미 문학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두 번째 소설 <이민자들>이 발표된 후 독일문단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단 네 편의 소설로 그는 독일문학을 대표하는 현대작가가 됐다.

그의 작품은 이 시기 활동한 대부분의 독일작가가 그러하듯 이민과 전쟁, 분단의 트라우마에 집중돼 있다. 작가는 고향을 떠났거나 더 이상 고향이 없거나 고향에서 추방된 이민자의 시선, 희생자의 기억으로 역사를 재현한다.

그렇고 그런 유럽 68세대 작가들과 제발트가 갈리는 지점은 이 보편적이면서도 개인적인 경험을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말하기 방식에 있다.

제발트는 작가 자신의 분신인 듯한 일인칭 화자를 내세워 그가 살아온 역사를 말한다. 국내 소개된 첫 작품이자 그의 두 번째 장편인 <이민자들>은 화자가 만나게 되는 4명의 이민자가 차례로 등장하는 연작 산문 혹은 단편 형식을 취한 작품이다.

이들의 진술을 기록한 이야기 속에 사실과 허구는 교묘히 섞이고, 화자가 보고 듣는 환경과 그의 내면 심리가 섬세하게 묘사되며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지막 장편인 <아우스터리츠>와 연결되는 느낌을 받는데, 2009년 국내 번역 출간된 이 작품 역시 일인칭 화자가 조국 독일을 떠나 영국으로 입양된 유태인 아우스터리츠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진행된다. 기억과 시간은 그의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주된 정서이자 모티프다.

지난주 그의 세 번째 소설 <토성의 고리>가 번역 출간됐다. 영국 동부지방을 여행한 후 쓴 작품으로 내면적 공허를 치유하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화자는 과거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열기가 남긴 상처들을 만난다.

'나는 제발트를 처음으로 알게 된 날의 풍경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 나는 제발트를 읽었다, 그 이후에도 하루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변한 것은 단 한 가지, 제발트 이전과 제발트 이후가 있을 뿐.'

<토성의 고리>에 붙인 소설가 배수아씨의 추천사다. 배씨는 몇 년 전 독일에 머물었을 때 제발트의 작품을 처음 접했고, 제발트를 모티프로 몇 편의 단편을 썼을 만큼 그의 문학작품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녀뿐만 아니라 황정은, 김유진 등 최근 활발하게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은 인터뷰에서 제발트의 소설을 추천했었다.

꽤 많은 작가들이 그의 작품에 매혹된 이유는 방대한 지식과 경험, 통찰력을 소설로 바꾸는 정교한 언어 때문일게다. 그의 소설은 개별적이면서 보편적인 역사적 경험을 진술하는 가장 세련된 방식을 보여준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