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솔나리

세상에 얼마 만에 보는 햇살인가. 투명하여 청명한 가을 하늘같다. 바람속에는 가을도 들어있고 여름도 남아 있다. 더워도 상큼한 그런 날씨이다. 오랫만에 오래도록 수목원 정원을 돌아보았다.

피고 진 꽃들이 확연하게 달라 보인다. 여름 꽃도 가을 꽃도 함께 보인다. 수생식물원엔 아쉽게도 노랑어리연꽃이 보이질 않는다. 지난번 큰비로 물이 넘쳤을 때 함께 떠내려간 것일까?

아니면 꽃을 포기한 것일까? 식물들의 이런 저런 근황이 궁금하여 기웃기웃 그렇게 오래 숲가를 맴돌았다. 문득 햇살을 오롯이 받으며 산행을 하고 싶어졌다.

멀지않은 명지산 자락이라도 땀 흘리고 오르고 나면 묵은 세포들이 깨어날 듯 싶었다. 그러다가 생각난 꽃이 솔나리이다, 지금쯤 그 선정 바위틈 어딘가에서 볼 수 있을 텐데.

솔나리는 백합과 나리속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솔나리란 이름은 잎이 솔잎처럼 가늘어 붙은 이름이다. 나리집안에는 한 대 무성하던 참나리를 비롯해 하늘나리, 털중나리, 땅나리 등 여러 종류들이 있지만 솔나리는 여러 면에서 독특하다.

우선 그 꽃 빛깔이 남다르다. 대부분은 진하기가 더하고 덜하고 하겠지만 대개 주황색에서 주홍색 사이의 꽃들이지만 솔나리는 분홍색이다. 이 땅에 산과 들에 핀 백합을 우리말로 나리라고 한다면 이런 주황색 나리에선 흰 꽃을 분리해낼 수 없지만 분홍색인 솔나리에선 찾아낼 수 있다.

쉽게 말해 우리의 토종 흰색 백합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종류라는 점이다. 아주 드물게 자연에서도 흰 꽃을 만날 수 있고 이를 흰솔나리라고 부른다.

사는 곳도 좀 다르다. 숲 가, 숲속에 보통의 나리들이 사는데 솔나리는 유독 산의 높은 곳, 능선이나 정상부분에 바위틈이나 풀밭에서 다른 풀들과 크게 섞이지 않고 자란다.

분포도 제한적이고 자라는 곳도 까다로워 좀처럼 만나기가 쉽지 않다. 현재는 멸종위기 2급에 속하는 법적보호종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얼마 전 환경부에서 솔나리를 제외시킬 예정이라고 하여 논란이 많다. 자생지를 좀 더 찾았다고 보호대상에서 빼 버리면 정말 아주 취약한 상태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는 의견들 때문이다.

법적보호종이어서 더 열심히 찾아보고 하였는데, 그 결과로 알려진 자생지가 늘어나 보전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들이다. 자연을 사람이 관리한다는 문제는 참 어려운 일이어서 정답이 무엇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솔나리는 꽃이 피는 시기도 다른 나리보다는 아주 약간 늦은 편이다. 높은 곳에, 서늘한 곳에 있기 때문일까. 내게는 다른 나리들의 화려함 대신 청초하고 고결함에 까다로움이 더하여 훨씬 마음을 끄는 그런 풀이다.

다른 나리들처럼 알뿌리를 약으로 쓰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귀한 풀이니 어디에 무엇을 쓰기보다는 잘 증식하여 자생지를 잘 보전하면서 이 아름다운 꽃을 아끼는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분에 키워 가꾸기도 하고, 큰나무 아래 아주 작은 봄에 꽃피는 풀들과 함께 심어주면 이즈음 봄풀들은 지면을 덮어 땅의 기온을 낮추어주어 솔나리가 꽃대를 올리기 수월해진다.

정말 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 고귀한 꽃이 사는 산에서 내 곁으로 가져오는 사람이 아니고 씨앗을 뿌려 키워 많은 이들에게 나누어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 좋겠다. 오래도록 우리 산에서 이 솔나리를 보고 싶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