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르 이 저자] 존 어빙뛰어난 서사와 디테일 유명… 번역 출간

흔히 작가들에게 "어떤 소설을 쓰고 싶냐"?고 물으면 대답은 거의 한결같다.

"재미있는 이야기."

물론 재미의 기준이 제각각 다를 테니 쓰는 소설도 다르겠지만 말이다.

이점에서 현존하는 미국 최고의 작가 존 어빙은 꽤나 눈여겨볼만한 작가다. 그의 작품은 뛰어난 서사구조로 여러 편이 영화화 되기도 했는데, 이중 영화 <사이더 하우스>는 작가 자신이 직접 각색해 2000년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존 어빙. 1942년 미국에서 태어나 난독증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으로 책을 읽고 문학 공부를 했다. 필립스 엑서터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던 시절 레슬링에 눈 떴다. 이후 레슬링은 문학과 함께 그의 평생의 동반자가 된다.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다시 미국 뉴햄프셔 대학을 다녔다.

스물여섯인 1968년에 첫번째 작품 <곰 풀어주기>(Setting Free the Bears)를 발표했고 이후 <워터메소드 맨>(Water-Method Man), <158파운드의 결혼>(The 158-Pound Marriage)을 발표했다. 이 작품들로 그는 미국 예술진흥기금상을 받고 아이오와 대학의 '거주 작가'로 뽑히는 등 평단의 인정을 받았으나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우리에게 알려진 소설은 그의 네번째 소설 <가아프가 본 세상>이다. 자전적 이야기인 이 소설은 1978년 출간돼 작가에게 엄청난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이 작품으로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까지 올랐고 미국도서재단상을 수상했다. 이후 어빙은 발표하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려놓게 된다.

소설을 잠깐 읽어보자. 레슬링 선수이자 작가인 T. S. 가아프가 본 세상은 가망 없는 환자들로 가득 찬 곳이다. 자서전 <섹스의 이단자>를 펴낸 가아프의 어머니 제니는 여권운동의 지도자로 떠받들려지고, 급진 여성들이 주변을 둘러싼다.

욕정 혹은 성(性)이라는 통제 불능의 괴물은 콘돔, 결혼, 외도, 질투, 사고, 죽음, 강간, 성전환, 폭력, 암살 등 숨가쁜 파노라마로 가아프를 압박한다. 소설 속의 소설가 가아프는 글쓰기로 그 압박에 저항하지만 그가 최후까지 본 세상에서는 '우리 모두가 가망 없는 환자들'이다.

물론 뛰어난 소설을 줄거리로 요약해 소개하는 것은 생선에서 뼈만 발라 접시위에 두는 짓과 비슷하다. 어빙의 소설이 뛰어난 서사로 칭송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서사에 힘을 부여하는 것은 신기(神技)에 가까운 디테일이니까.

'그녀는 언제나 피에 젖은 신발을 기억하리라. 정확히 본 신발의 자세한 모양은 언제나 다리를 기억하게 하리라'(장편 <일년 동안의 과부> 중에서)란 구절처럼, 디테일은 수많은 독자들을 바로 그 자리로 데려다주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눈과 귀와 손으로 느낄 수 있게끔 말이다.

최근 그의 10번째 소설 <네 번째 손>이 번역 출간됐다. 제목은 주인공 패트릭의 없어진 왼손을 일컫는 말이다. 방송기자 패트릭 월링퍼드는 서커스단을 취재하다가 사자에 물려 왼손을 잃는다.

손 이식 수술을 하려던 패트릭에게 기증자가 나타난다. 사망한 남편의 손을 기증하겠다는 도리스 클로센. 클로센은 손 기증을 무기로 패트릭을 만나 그의 아이를 갖게 되고 패트릭은 클로센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싹튼다. 물론 이 소설의 재미 역시 이렇게 줄거리로 요약되기 어렵겠지만 말이다.

스토리텔링과 디테일이 만났을 때, 그래서 거짓의 세계가 사실의 세계로 건너오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 소설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존 어빙의 소설은 그 지점을 보여준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