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작가, 사회, 독자 키워드로 소설과 영화 통해 알려줘

명작을 읽을 권리
한윤정 지음/ 어바웃북스 펴냄/ 1만 6000원

우리는 제한된 시공간적 배경에서 영화와 연극, 뮤지컬과 드라마를 본다. 몇 명의 인물과 이들이 당면한 사건, 갈등은 단절된 형태로 전달되는데,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각 장르적 특징이 주는 여운(이를테면 영화에서 쇼트shot와 쇼트 사이, 시에서 행과 연 사이)을 통해 이야기를 재구성한다.

예컨대 평면 프레임 속 클로즈업 된 주인공의 표정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손을 상상한다거나, 절정 직전에 끝나버린 에피소드에 나름의 상상력을 부과하는 것 등등 말이다.

그러니 영화, 연극, 소설 같은 이야기들은, 기실 분절된 어떤 이미지들의 조합일 게다. 하나의 작품을 보고도 사람들마다 평이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마다 제각각 달리 볼 수밖에 없는 작품을 '객관적'으로 간추려 전달하는 것이 도대체 가능할까? 이 책의 저자 한윤정씨는 매일 이 불가능에 도전하는 사람이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20년차 기자이다. 경향신문에서 꽤 오랜 기간 문학 기사를 왔고, 경력만큼이나 깊고 예리한 눈을 자랑한다. 명료하면서도 유려한 문체로 문인들에게 '글 잘 쓰는 기자'로 알려질 만큼 신뢰도가 높다.

신간 <명작을 읽을 권리>는 이 장점이 십분 발휘된 책이다. 저자는 전문분야인 소설과 영화를 밑천삼아 '명작 보는 법'을 알려준다. 좋은 작품을 읽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그녀는 작품, 작가, 사회, 독자라는 네 가지 키워드를 사용한다. 예컨대 이렇게.

'공간(space)과 장소(place)는 비슷한 말이지만 개념상 차이가 있다. 공간이 추상적이고 중립적인 곳인 반면, 장소는 기억과 흔적이 남아있는 특정한 곳을 가리킨다. 대개 현대의 대도시는 공간이지 장소가 아니다.' (22페이지 '경계지대에 사는 불안한 소녀들' 중에서)

공간, 장소에 대한 차이 규정은 저자의 자의적 의미 부여가 아니라 비교문학에서 통념적으로 쓰이는 것이다. 저자는 이 키워드를 통해 오정희의 단편 <중국인 거리>와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를 본다.

서사란 삶과 가장 가까운 모습 때문에 설득력을 갖는 동시에, 일상과 완전히 같지는 않은 어떤 차원을 보여준다. 서사는 거칠고 난삽하며 동시다발적인 삶에 선형적인 질서와 의미를 부여한다.

나아가 삶은 서사의 형태로서 우리에게 기억되며 사후적으로 그 의미를 깨닫게 된다. 우리 삶의 파편적인 시간들은 서사란 실 위에 한 줄로 꿰어지는 구슬과 같다.

이야기는 잿빛 삶에 색깔을 부여하고 변형이나 가정, 객관화, 거리두기를 통해 절망과 상처를 치유하기도 한다. 우리가 이야기에 매료되는 건 이 때문이다.

이 명료하면서도 유려한 선언은 이 책 109페이지 '작품은 현실이다'에 실린 내용이다. 이 책에 눈길이 가는 이유, 충분하기 않은가?

세계가 우리집이다
지와 다리오 지음/ 휴 펴냄/ 1만 5000원

스페인 남자 다리오와 한국 여자 지. 인도 여행길에 만난 두 사람은 그 뒤 세계를 지붕삼아 캠핑생활을 하며 '진짜 우리집'을 찾고 있다. 집 없고, 돈 없고, 통장 단고도 없는 이들이 4년간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었던 비법은 길에서 만난 가족 덕분. 이 책은 4년간 캠핑 여행을 토대로 쓴 포토에세이다.

인정투쟁
악셀 호네트 지음/ 문성훈, 이현재 옮김/ 사월의 책 펴냄/ 2만 3000원

아도르노, 하버마스의 뒤를 잇는 3세대 프랑크푸르트학파 철학자 악셀 호네트의 대표작. 1992년 출간 이후 철학과 정치학을 혁신하며 사회이론의 지평을 확장시킨 현대의 고전이다. 이 책은 특별판 원고를 덧붙인 2003년 판본을 번역한 것으로 지난 10년간 절판된 책을 수정한 개정증보판이다.

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
이종묵, 안대회 지음/ 이한구 사진/ 북스코프 펴냄/ 1만 8000원

이종묵, 안대회 교수와 사진작가 이한구 씨가 유배객의 자취를 찾아 섬을 탐방해 쓴 책. 위도, 거제도, 교동도, 대마도, 진도, 백령도, 제주도 등 14개의 유배의 섬을 찾아 유배객들의 삶의 궤적을 좇았다. 짧게는 20여일부터 길게는 27년까지 섬에 머문 유배객들의 삶, 이들이 유배를 가게 된 배경, 유배 섬의 이야기와 풍경을 담았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