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르 이 저자] 호미 바바인도 출신 하버드대 교수… 번역 출간

책을 읽을 때 쾌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최근 탁월하다고 꼽히는 책들은 탁월한 만큼이나 난해함을 자랑하기 때문에, 이 쾌감이 지적 호기심에서 발현되는지, 지적 허영심에서 발현되는지 헷갈릴 때가 많다.

특히 호미바바 같은 사람의 글을 읽을 때는 말이다. 문학평론가이자 탈식민주의 연구가인 그는 프로이트에서 발터 벤야민, 프란츠 파농에 이르는 '매우' 다양한 이론가들의 통찰력을 빌리거나 재해석하는 글을 쓴다.

특히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 자크 라캉과 같은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이 제시한 '차이'의 철학을 식민주의 연구에 적용시킨다. 분석은 날카롭지만 문장은 시적이다. 뛰어난 비평은 한편의 문학작품으로 읽히고, 탁월한 문학작품에는 고도의 철학적 사유가 담겨 있다. 그의 글은 이 경지를 보여준다. 이를테면 이렇게.

'국민은 마치 내러티브와 같이 시간의 신화 속에서 자신의 기원을 잃어버리고 마음의 눈 속에서 자신의 윤곽을 온전히 드러낸다.' (<국민과 서사> 10페이지, '내러티브로서의 국민')

호미 바바. 1949년 인도 뭄바이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대학까지 마쳤다.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옥스퍼드대학에서 영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여러 대학을 거쳐 현재 하버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듯 그는 인도 내 소수민족인 파시교도 출신이다.(종교 박해로 8세기 페르시아에서 인도로 이주한 조로아스터교도의 후예로 이들은 흔히 '동양의 유대인'이라 불린다) 이런 바바의 배경과 개인적 경험은 서구 근대 담론이 규정하는 국민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 회의로 이어졌다. 어떻게? 식민주의 연구 선배, 에드워드 사이드를 넘어서는 방식으로.

주로 마르크스주의 전통 시각에서 수행됐던 기존의 식민주의 비판 연구의 한계를 지적하며 이 논의를 풍부하게 한 사람이 바로 에드워드 사이드다.

사이드는 대표작 <오리엔탈리즘>에서 보듯, 동양에 대한 서구 담론이 서구의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해 '타자로서 동양', '만들어진 동양'이었다고 지적한다. 호미 바바는 여기서 나아가 주체(서구)와 타자(동양)의 이분법적 구도 자체에 문제를 제기한다.

주체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타자에 의존해야 하고, 그러므로 주체는 그 내부에 타자성을 이미 품고 있어야 한다는 것. 요컨대 서구 근대 담론이 상정하는 문화 정체성이 실제로는 내부의 근원적 타자성에 대한 자기 부정과 균열, 불안을 억압함으로써 얻어지는 '내러티브 효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내러티브, 한편의 이야기는 사실의 파편들과 이 파편들의 틈을 메우는 인간의 상상에서 비롯된다. 고로 완결된 내러티브를 갖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사실이 필요하지만 또 한편으로 어떤 사실은 은폐되고 왜곡돼야 한다.

고로 호비 마마에게 '내러티브 효과'로 만들어진 국민, 국민으로 대표되는 문화 정체성은 서로 다른 문화의 경계들 위에서 엇갈린 시공간상의 차이가 만들어 내는 상상된 서사이다.

'후기 계몽기 영국의 식민적 담론은 허위의 혀가 아니라 갈라진 혀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문화의 위치> 4장 '모방과 인간')란 시적(詩的)인 서술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말이다.

올해 초 그의 저서 <국민과 서사>(류승구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가 번역출간됐다. <문화의 위치>와 함께 90년대 호미 바바의 대표저서로 꼽히는 이 책은 바바의 글 뿐 아니라 에르네스트 르낭을 포함한 다수의 저자들이 유럽, 아메리카 등에 걸친 폭넓은 '국민' 서사 양식을 분석하는 논문을 싣고 있다.

이제 그의 화두는 탈식민주의에서 세계화 시대 자유주의 담론-예컨대 인권, 다문화주의, 세계주의-으로 옮겨 갔지만 그의 기본적인 사유와 이후의 책을 읽는데 이 책은 여전히 유효하다. 출간된 지 20년이 넘어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출판사와 번역가가 이 책을 펴낸 이유일 게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