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선거 바라보는 '대선주자' 속마음은나경원·박영선 당선땐 '여성 대통령' 걸림돌 될수도 손학규, 박후보 절대적 지지… 실패땐 대표유지 어려울 것 정동영위원 일단 숨고르기… 누구든 당선땐 대반격 노려

경제학의 대 근거로 '인간은 인센티브에 반응한다'는 말이 있다. 누구나 이익을 좇아 움직인다는 뜻으로, 범인(凡人)들은 큰 틀에서 이런 범위 안에서 행동한다. 하물며 대권을 앞둔 대선주자들이야 오죽하랴. 대선 승리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못하겠는가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10ㆍ26 서울시장 보궐선거라는 큰 판이 눈 앞에 와있는 상황이라면 대선주자들의 속내가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단순히 자당(自黨) 후보가 이기는 게 대선에서 유리할 거라고 보면 너무 순진한 접근법이다. 내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까지의 여론 변화를 감안하면 이번 선거를 바라보는 계산법이 일반인과는 확연히 다르다.

범여권 후보로 거론되던 이석연 변호사가 사퇴한 이후 여권 후보로는 한나라당 나경원 최고위원이 사실상 단수 후보다. 자유선진당 지상욱 후보가 나서긴 했으나 대세의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

물론 여야 싸움이 박빙의 승부로 치달을 경우는 문제가 다르다. 지난해 6월2일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는 민주당 한명숙 후보에게 47.4% 대 46.8%로 불과 0.6%포인트 차로 신승했다.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는 3.3%, 자유선진당 지상욱 후보는 2.0%였다.

박근혜
만일 후보간 단일화가 이뤄졌다면 당락이 바뀌었을 수도 있을 것이고, 오 후보가 선거 개표에서 조금 수월했을 수도 있다.

결과를 놓고 가정을 해보면 그렇다는 거지만 현재로서는 대부분의 유권자가 나 후보를 여권의 단일 후보로 여기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야권 후보는 10월3일 단일화를 위한 경선을 치러야 승자가 결정되겠지만, 현재로서는 박원순 변호사가 한발 앞선 가운데 민주당 박영선 후보가 무서운 기세로 뒤쫓는 형국이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정치권에 돌풍을 일으킨 뒤 시장 선거 출마를 양보할 당시만 해도 민주당 박 후보는 박 변호사의 지지율에 절반도 못 미쳤다.

하지만 이후 손학규 대표를 비롯한 당 차원의 지지를 바탕으로 양 박(朴)의 대결은 접전 양상이다. 민주노동당 최규엽 후보는 야권 통합 선거에 참여한다는 데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훗날의 야권통합을 위한 또 다른 초석인 셈이다.

그러면 선거 구도가 한나라당 나 후보 대 민주당 박 후보, 또는 야권통합 후보인 박 변호사간 양자 대결로 압축된다.

선거가 마음에 안드는

여기서 대선주자들의 속내를 들여다보자. 전 한나라당 대표는 누가 이기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을까?

먼저 박 전 대표가 우려하는 대목은 첫 여성 서울시장의 탄생이다. 자신이 첫 여성 대통령을 꿈꾸는 상황에서 여성 시장은 껄끄럽다. 이 경우 내년 대선에서 상대방이 "여성 시장에 이어 여성 대통령까지 뽑는 건 문제가 있다"고 공세를 취할 땐 아무래도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 박 전 대표가 자당 후보임에도 선뜻 나 후보를 지원하지 않는 이유와도 맥이 닿아 있다. 같은 이유에서 당마저 다른 박영선 후보의 당선은 더욱 생각하기 싫은 카드다.

그렇다고 박원순 변호사의 당선을 바랄까? 진보색채가 진한 박 변호사가 되면 차기 대선에서는 보수가 결집하게 되므로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볼까? 거기에도 적잖은 고민이 있다.

박 변호사가 당선되면 박 전 대표 입장에서는 수도 서울이 야권 시장에 야당 시의회 및 구청장으로 뺑 돌아 포위된다는 현실적 문제가 있다. 내년 대선의 최대 승부처인 서울지역의 고전이 우려되는 것이다.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박 변호사의 승리가 자칫 시민사회 중심의 정치 개혁 바람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 아직은 안철수 원장이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히진 않았으나 사회적 여론이 그를 대선으로 떠밀 수 있고, 시대 정신의 복판에 그를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 지금도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박 전 대표가 안 원장에게 지지율이 뒤지는 것으로 나오기도 하는 판에 이런 구도가 현실화한다면 그 때는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박 전 대표가 이번 서울시장 선거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가 이기든 유리할 게 없다는 점에서 아마도 이런 정치판이 생겨나게 만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꽤나 못마땅하게 여겨질 것이다.

따라서 당분간 시장 선거와 거리 두기에 나서되, 선거 막판에 가서 의례적이나마 자당 후보 돕기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당내에서 반박(反朴) 대열에 서 있는 정몽준 이재오 의원 등의 입장은 상반된다. 무조건 한나라당 승리에 매진하자는 쪽이다. 박 전 대표와 차별성을 띠우기 위해서라도 더욱 이런 입장이다.

야권도 주자별 입장 제각각

야권에서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박영선 후보의 당선이 제일 과제다. 본인이 지지한 후보로 당내 결선을 통과한 데다, 만일 박 변호사에게 단일 후보를 내 줄 경우 후폭풍이 어떻게 몰아칠지 예상키 어렵기 때문이다. 박 후보의 패배는 곧 손 대표의 패배로 귀결되면서 당장 대표직 유지마저 어려워질 공산이 크다.

더구나 박 변호사가 당선되면 민주당은 야권의 한 축으로 전락, 야권 통합의 주도권을 잃고 뒷방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손 대표에게 무거운 마음의 짐으로 남는다.

다행이 박 변호사가 당선을 전후해 민주당에 입당해 준다면 모를 일이지만, 현재로서는 그런 기대를 갖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손 대표에게 박 후보의 당선은 절박한 과제다. 기대대로 이겨준다면 손 대표의 대선가도는 더욱 탄탄해짐은 물론이다. 그래서 현재 앞뒤 안 가리고 박 후보의 도우미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자신이 지원하던 천정배 의원이 당내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기에 일단 한 풀은 꺾였다. 하지만 대선고지를 가기 위해서는 먼저 손 대표를 넘어서야 하기에 그런 점에서 보면 공격할 소지가 많은 현 상황이 크게 나쁜 것만도 아니다.

한나라당 나 후보가 이기면 손 대표의 리더십을 문제 삼아 당내 주도권을 되찾아 올 수 있다. 또 야권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박 변호사가 이겨도 같은 이유에서 손 대표를 공격할 여지는 충분해진다.

정 최고위원 개인적으로 박 후보는 MBC 직계 후배인 데다 열린우리당 당시 자신이 정계로 입문시킨 인연이 있다. 박 후보가 당선되면 손 대표에 대한 공격점은 줄어들더라도 차후 대선을 감안한 시정 운영 면에서는 적절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현재도 박 후보 선거를 측면에서 돕고 있다.

정세균 최고위원 입장에서는 민주당의 틀이 야권의 중심에 남아 있기를 바란다는 점에서는 자당 후보의 승리가 우선이지만, 박 후보의 패배로 인해 야권이 완전 재편되는 분위기를 타게 되는 것도 아주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친노 세력과도 가깝기 때문에 야권 통합을 조율해 갈 수 있는 힘이 그에게 일정 부분 있어서다.

문재인 노무현재단이사장은 당연히 박 변호사 쪽에 서 있다. 최근에도 만나 우회적인 지지의사를 표명한 바도 있다. 친노세력의 후원에다 박원순-안철수의 양 날개까지 등에 업는다면 문 이사장은 차기 대선의 강력한 주자로 급부상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박 변호사가 당선돼 제3의 정치세력을 갈망하는 여론이 높아지는 게 가장 유리하다는 분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박 후보가 이겨서 민주당이 상승세를 타는 것은 문 이사장에게 크게 좋을 이유는 없다. 차라리 나 후보가 이겨 야권이 재편 여론의 압박을 받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당장은 같은 날 치러지는 부산 동구청장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당선시키는 것이 이 지역 맹주로 일어서기 위한 첫째 관문이란 점에서 서울시장 선거까지 간여할 여유까지는 없어 보인다.

정치권과 거리를 두면서 숨 고르기를 하고 있는 안철수 원장은 뒤에서 박 변호사의 당선을 바랄 것으로 판단된다. 시민사회 후보로서의 첫 승리이기에 이런 기운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안 원장의 등장을 강요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전 대표와도 여러 면에서 일합을 겨룰 위치에 단번에 오를 수 있다. 만일 야권 후보들과 준결승을 거쳐 단일 후보로 나서게 된다면 그땐 더욱 폭발적인 위력을 갖게 될 수도 있다.

10ㆍ26 서울시장 선거는 이렇듯 대선주자들에게 서로 상반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적이 이기는 게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보는 주자도 있고, 같은 편이 이겨야 살아남는 절박한 상황 속에 놓인 주자도 있다. 하지만 이도 역시 대선으로 가는 험난한 여정 중의 한 고비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 1년2개월도 더 남은 대선까지 얼마나 무수한 고비와 변수가 남았겠는가 말이다.



염영남 한국일보 정치부 차장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