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사망 후폭풍, 어떤 영향 미칠까 "삼성, 특허소송 취하 가능성 적다" 업계 전망속 전면전 분위기는 누그러져 애플, 잡스 부재 타격 클듯… 아이폰5 성공 여부 관건, 노키아 반격도 만만찮아

5일(현지시간) 췌장암으로 타계한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의 생전 모습을 담은 아이폰이 촛불, 꽃다발과 함께 미국 뉴욕의 한 애플 스토어 진열장에 놓여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IT 업계의 황제' 스티브 잡스(56)가 사망한 5일 전세계 관련 업체들은 '잡스가 떠난 IT 생태계에 어떤 변화가 올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내 업계에서는 잡스의 사망이 애플이 장악한 IT 시장 흐름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애플이 내놓은 각종 스마트 기기가 시장에 확고하게 자리잡은 데다 잡스가 이미 지난 8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만큼 직접적인 영향은 적을 거라는 얘기다.

물론 잡스의 사망이 국내 IT 업체들에게 유리한 상황을 조성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타났다. 삼성전자, LG전자 등의 주가가 잡스 사망과 동시에 상승세를 나타낸 건 역시 반사이익에 대한 기대감의 반영으로 풀이된다.

애플-삼성, 합의 이뤄질까

창업자인 잡스가 사망했다고 해서 애플이 당장 삼성과 특허소송에서 발을 뺄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특허소송은 일단 진행되고 나면 되돌리기도 쉽지 않다.

물론 반대의 시각도 있다. 잡스 사망 이후 삼성에 대한 애플의 특허공세가 주춤해질 거라는 분석이다. 잡스에 이어 애플의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팀 쿡은 비교적 유화적인 성품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잡스 사망 이후 '집안 단속'을 위해서라도 외부와 '전쟁'은 자제할 수도 있을 거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그와 반대로 강경 기조를 이어갈 가능성도 아주 배제할 수는 없다.

삼성 측의 입장 변화에도 귀추가 주목된다. 애플과 9개국 12개 법원에서 특허소송 전쟁을 진행 중이던 삼성이지만 잡스 사망 직후 다소 누그러진 분위기가 감지된다.

삼성은 "삼성전자의 최대 고객이기도 한 애플 창업자의 사망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고인을 추모하는 기간에는 소송과 관련한 어떤 언급도 부적절한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은 지난 5일 애플의 아이폰 4S가 출시된 지 15시간 만에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판매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공세의 고삐를 죄었다. 삼성이 애플을 상대로 소송을 먼저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잡스의 사망으로 애플과 삼성 간 전격 특허 합의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아이폰5 미래의 가늠자?

업계 전문가들은 내년 출시 예정인 아이폰 5가 애플 미래의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애플은 지난 5일 아이폰 4S를 출시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대체로 냉소적이다.

아이폰 5가 성공한다면 애플은 당분간 탄탄대로를 달릴 수 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그간 애플의 성공은 기업의 성공이 아닌 잡스 개인의 능력에 따른 결과라는 평가가 우세해질 것이다.

뚜껑은 열어봐야 알겠지만 현재로서는 애플의 입지에 큰 변화는 없을 거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잡스는 죽었지만, 잡스 밑에서 10년간 일한 팀 쿡이 건재하고, 아이폰 디자인을 주도하고 있는 조너선 아이브도 여전하다.

특히 애플의 핵심 역량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에 있다. 애플은 iOS로 대변되는 세계 최고의 운영체제(OS)를 보유하고 있고, iOS는 휴대폰 전쟁에서 필살기나 다름없다.

잡스 부재라는 사실만으로도 애플이 크게 흔들릴 거라는 전망도 없지 않다. 지난해 독일의 '슈피겔'을 비롯한 몇몇 언론들은 "잡스가 회사를 폐쇄적이고 독선적으로 운영했다"고 비판했다.

독특하면서도 때로는 괴팍한 경영방식에도 불구하고 잡스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세계 IT업계를 쥐락펴락했다. 개인적인 성향이나 스타일을 떠나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잡스만의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잡스가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애플이 예전만 못할 거라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는 이유다.

노키아 부활의 기회?

국내 휴대폰 시장에서 번번이 고배를 들었던 세계 1위 업체 노키아가 마이크로소프트(MS)와 손잡고 한국 시장에 다시 도전한다. 노키아의 세계 휴대폰 시장 점유율(공급 대수 기준)은 지난 2분 기준 24.2%였지만 한국에서는 수십만 대를 파는 데 그쳤다. 2위는 19.2%의 삼성, 3위는 6.8%의 LG, 4위는 5.6%의 애플, 5위는 4.5%의 ZTE였다.

노키아는 연말쯤 KT를 통해 MS의 최신 스마트폰 운영체제(OS) '윈도폰 7.5(망고)'를 탑재한 '망고폰'을 출시할 예정이다. 노키아는 올해 초 자체 개발한 OS '심비안' 을 버리고 MS와 전격 제휴했다. 한국 시장 재탈환을 위한 고육책이었음은 물론이다.

●잡스는 누구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난 잡스는 가난한 집에 입양됐고, 대학을 중퇴했으며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나는 수모도 당했다. 그러나 그는 쓰러질 때마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고 마침내 세계 IT 업계의 황제에 등극했다.

동양사상에도 관심이 많았던 잡스는 젊은 시절 한 사원(寺院)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먹기 위해 7마일(11.3㎞)를 걸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때 배운 서체 강의가 훗날 매킨토시의 서체 시스템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회고했다.

잡스는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서 쫓겨났지만, 좌절하지 않고 컴퓨터 개발사 넥스트와 컴퓨터그래픽(CG) 영화사 픽사를 설립해 다시 일어섰고 1997년 마침내 애플에 복귀했다. 이후 성공가도를 달리던 잡스는 2004년 췌장암 진단을 받은 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며 투병했으나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잡스의 업적은 글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잡스는 경영난에 시달리던 애플을 아이팩,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로 일약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일으켜 세웠다. 잡스가 내놓은 신제품들은 IT업계뿐 아니라 영화 음악 등 문화산업 전반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출생부터 사망까지 유난히 굴곡진 인생을 살았던 잡스는 스탠퍼드대학 연설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전진하라(Stay Hungry. Stay Foolish)."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