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가 계획한 '애플'의 미래는스티브 잡스가 남기고 싶어하는 애플은 제품 그 이상의 것을 파는 기업이다 그가 만들어 온 것은 제품보다도 아이디어가 유산이 되는 회사다

스티브 잡스
'디지털 시대의 혁명가'로 불려온 애플사의 창업자이자 전 최고 경영자(CEO)인가 5일 사망했다고 애플 이사회가 공식 발표했다. 잡스 앞에는 화려한 수식어가 많이 붙어 다녔지만, 유력 경제전문지 포춘의 한국어판인 포춘 코리아 최신호(10월호)는 를 화려한 광고도 팡파레도 없이 사랑하는 회사가 영원할 수 있도록 지금껏 조용히 기반을 다져 놓았다'고 평가했다.

포춘 코리아 최신호에 따르면가 지난 8월 말 CEO 자리에서 물러나기 전 마지막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곳은 연출된 애플 신제품 발표회가 아니라, 애플 본사가 있는 쿠퍼티노의 시의회 한 회의실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애플의 단일건물 신사옥을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가 발표한 신사옥은 고도의 기교와 연출과 과장을 곁들인 둥그런 고리 모양의 초대형 구조물이다. 잡스는 신사옥이 "지구에 착륙한 우주선과 약간 닮은 모양"이라며 "세계 최고의 사옥을 세우겠다는 우리의 시도"라는 말을 덧붙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IT 블로거들 사이에선 아이스페이스십(iSpaceship)이 화두로 떠올랐다.

애플 신사옥이 쿠퍼티노시의 허가를 받아 건설되면 사원 1만3,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현재 쿠퍼티노에서 근무 중인 애플 직원은 총 1만2,000명으로, 대부분이 낡은 임대건물 한쪽 구석에서 일하고 있다. 따라서 신사옥 아이스페이스십은 기존 본사와 함께 애플의 미래 성장 기지가 될 것이다.

필생의 역작 아이스페이스십

아이스페이스십은 곡면 유리로 겹겹이 둘러싸인 미래지향적 디자인의 거대 건축물로, 수많은 다른 애플 작품처럼 세련미와 번득이는 재기가 보인다. 아이스페이스십은 가 필생의 역작을 얼마나 오랫동안 열심히 준비해 왔는지 가장 확실히 보여 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필생의 역작이란 아이폰도 아이패드도 아니다. 바로 영원히 죽지 않는 애플 그 자체, 회사의 아이콘인 잡스가 떠난 뒤에도 계속 살아있는 양식과 절차와 도구, 그리고 영혼을 가진 회사 애플이다.

7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의 길모퉁이에 스티브 잡스의 '영정'이 담긴 아이폰이 촛불, 사과와 함께 놓여 있다. 잡스를 추모하기 위한 뉴욕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곳으로 이어졌다. 뉴욕=연합뉴스
포춘 코리아에 따르면 잡스 이후의 애플은 최대 성공작인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인기 가도 위에서 시작한다. 그렇지만 잡스가 만든 애플, 잡스가 남기고 싶어하는 애플은 제품 그 이상의 것을 파는 기업이다. 애플이 파는 것은 제품에서 서비스(아이튠즈를 생각하면 알 수 있다)와 매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가득 채우는 세련미와 간결함이다.

IT 업계 전문가 폴 사포는 "애플은 제품도 뛰어나지만, 잡스가 그 동안 만들어 온 것은 제품보다도 아이디어가 유산이 되는 회사"라고 말한다.

포춘코리아에 따르면 애플 제품군은 새로운 컴퓨팅의 시대를 여는 생태계와 관련이 돼 있는데, 최근까지만 해도 이 생태계는 미완성이었다고 한다. 이 미완성의 퍼즐에서 빠진 조각을 채워 넣기 위해 잡스는 지난 6월 아이클라우드(iCloud)를 선보였다.

첫 공식 전기 11월 출간

이것은 모든 애플 제품을 한데 묶어 수백만 사용자가 보다 쉽게 애플 기기를 통해 음악, 사진, 파일, 소프트웨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온라인 서비스다.

'지구에 착륙한 우주선과 약간 닮은 모양' 인 애플의 단일건물 신사옥 아이스페이스십(iSpaceship).
일부에서는 아이클라우드가 쓸만한 소프트웨어 도구 몇 가지의 조합에 불과하다고 일축한다. 그러나 잡스는 아이클라우드가 애플의 미래를 여는 가장 중요한 열쇠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그는 노스캐롤라이나에 세계 최대 규모의 데이터 센터를 설립했다. 최근 문을 연 이 데이터 센터의 크기는 축구장의 아홉 배, 금액적 가치는 10억 달러에 달한다.

잡스는 아이클라우드 출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PC와 맥의 역할을 단순 장치 수준으로 축소할 것이며, 여러분의 디지털 라이프의 중심, 디지털 허브를 클라우드로 이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1980년대 PC 시대를 여는 데 앞장선 그가 이젠 직접 나서서 PC 시대를 마감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잡스는 PC 이후 시대에 애플의 입지를 한층 더 굳건히 하고, 그와 동시에 더 크게 자신의 족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포춘 코리아는 잡스의 이번 계획도 일견 무모해 보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잡스가 버지니아에 첫 매장을 열고 소매업에 진출할 때도 일각에선 회의적이고 심지어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10년이 지나고 345개가 넘는 매장이 생긴 지금, 애플은 세계에서 가장 존경 받는 소매업체의 반열에 올라 있다. 애플은 이미 경영학 교수진에게 의뢰해 애플 매장을 비롯해 애플의 주요 행보에 대한 사례연구 보고서를 여러 편 발간했다.

미래의 애플 리더들도 이 자료를 바탕으로 경영수업을 받을 것이다. 애플 대학이라는 이 프로그램은 잡스가 디즈니에 매각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픽사의 한 프로그램에서 따왔다.

잡스는 또 지난 18개월 동안 타임지 전 편집장 월터 아이작슨과 함께 자신의 전기를 준비해 왔다. 집필은 아이작슨이 맡고 잡스 자신은 책 집필에 어떤 권한도 행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1월 출간 예정인 이 책은 잡스의 첫 공식 전기가 된다. 자신의 인생을 공식적으로 기록해 잡스식 문화에 대한 자세한 매뉴얼을 남기려는 그의 노력이 오롯이 담긴다. 이 책도 미래 애플 직원들의 필독서가 될 것이다.

캐리 그레이슨이 7일(한국시간) 미국 시카고의 한 애플 스토어 유리창에 스티브 잡스를 추도하는 메모를 붙이고 있다. 시카고=AP 연합뉴스
포춘코리아에 따르면 그의 지인들은 잡스가 사임을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한 것이 지난 7월 말이었다고 한다. 그 무렵 잡스는 자신이 애플에 복귀하기는 힘들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CEO 자리를 유지하며 일상적 운영을 후계자인 팀 쿡에게 맡기는 체제를 유지할 수도 있었지만, 그것마저 접기로 했다. 8월 24일은 그가 은퇴를 공식 발표한 날이다.

그의 후계자는 팀 쿡이다. 그는 이미 두 차례나 왼팔과 같은 팀 쿡을 시험했고, 쿡은 두 번 다 그의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를 보여 주었다. 지난 1월 잡스는 세 번째로 병가를 냈다. CEO 직함은 그대로 지니고 있었지만, 다시 한 번 지휘권을 쿡에게 맡겨 마지막으로 시험했다. 그리고 그때 애플은 태블릿 시장 주도권을 굳혔고, 휴대폰 사업에서도 가속도를 붙였다. 잠시나마 엑슨모빌을 제치고 미국 내 기업가치 1위 자리에 등극하기도 했다.

는 자신 이후에 애플이 전성기를 맞을 준비가 갖춰져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직서에는 이렇게 썼다. "본인은 가장 밝고 혁신적인 미래가 앞으로 애플에 펼쳐질 것이라 믿습니다."

애플은 잡스가 떠난 뒤 결코 전과 같을 수 없으리라. 잡스의 사임 발표 이후 애플 주가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지만, 죽음은 다르다. 월스트리트는 잡스가 CEO직을 떠난 후의 애플을 보았고,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듯하나, 잡스가 완전히 사라진 후 애플의 향배는 아직도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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