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공사, 메릴린치에 2조 투자 미스터리 "3년전 원금 20억 달러 현재 15억 달러 까먹어" "석연치 않다" 국감서 추궁 "KIC-메릴린치 사이 누군가 있을 것" 소문

한국투자공사(KIC)가 지난 2008년 메릴린치에 20억 달러를 투자했다가 현재 2조원 가까운 손실을 낸 것으로 국정감사를 통해 알려졌다. 사진은 미국의 메릴린치 본사 건물.
한국의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가 국정감사의 도마 위에 올랐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민주당 이용섭 의원은 지난 4일 국정감사에서 "KIC가 투자원금 20억 달러 가운데 15억 달러를 까먹는 등 막대한 외환 보유고 손실을 초래하고 있다"며 "이같은 KIC의 부진은 민간 운용사에 비해 낮은 투자 경쟁력과 주식 투자에 대한 사후관리 실패가 주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KIC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메릴린치 등에 투자해 2조 원에 가까운 투자 손실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KIC의 메릴린치 투자를 놓고 "어딘가 석연치 않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2조 원이라는 막대한 손실을 입은 투자 과정과 결정에 여러 의문점이 있다는 것이다.

인수위의 이상한 결정

KIC는 2008년 2월 메릴린치 증자에 앞서 20억 달러를 투자했다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 KIC의 메릴린치 지분 매입 당시 주가는 29달러 선이었으나 현재는 6달러 안팎이다. KIC는 또 메릴린치를 합병한 BoA로부터 메릴린치 지분 보유에 따른 배당금 1억4,500만 달러를 받아 올해 들어 지난 7월까지 7,800만 달러가량을 더 투자해 BoA 지분을 늘렸다. 말하자면 '되감기'식 투자를 한 것이다.

하지만 BoA 주가는 미국 신용등급 강등 이후 하락세를 이어가면서 KIC의 BoA 지분 재투자 역시 적지 않은 손실을 입었다. 그럼에도 KIC는 최근까지 BoA에 추가 투자를 계획하다 여론이 악화되자 급히 이를 보류했다.

투자전문가들은 KIC의 투자가 상식 밖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대위기를 맞고 있는BoA 리스크를 전혀 감안하지 않은 무모한 판단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도 국감에서"BoA 재투자도 신규투자와 다를 게 없는 것인데, BoA 투자는 리스크관리 부서의 의견을 무시한 채 투자운용본부장 전결로 처리됐다"며 절차상의 문제를 제기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BoA 파산설과 매각설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도 지난달 27일 BoA 리스크를 심도 있게 다뤘다.

경제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대체 KIC는 왜 이처럼 위험한 '돈 놀이'를 계속하려고 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KIC의 투자 의지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투자를 결정한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명박 대통령 취임을 전후해 메릴린치 투자가 결정된 것을 두고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라고 지적하고 있다. 야권에서는 KIC의 투자 이면에 '대미 관계 개선'을 노린 정치적 고려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KIC의 투자 에는 'MB정부의 역할'이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공약에서 KIC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밝혔고, KIC는 2008년 2월 투자 결정에 앞서 2007년 말경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보고를 해 '허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인수위 경제1분과에는 KIC를 잘 알고 있는 강만수 간사와 KIC 법 제정을 주도했던 최중경 전문위원이 포진해 있었다.

투자 중계인 존재 소문도

투자 전문가들은 2008년 KIC의 메릴린치 투자를 두고 "서브프라임 사태가 얼마나 더 확대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20억 달러를 쏟아 붓는 것은 무모한 결정"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MB정부는 듣지 않았다. 당시 재경부 조인강 금융정책 심의관은 "메릴린치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잠시뿐일 것"이라며 "이 투자는 몇 년 뒤 미국 금융산업까지 내다본 장기 투자"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때 경제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지금의 미국 금융위기를 예고하고 있던 시기여서 조 심의관이 밝힌 KIC의 장기투자 근거가 무엇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KIC 투자를 놓고 "KIC와 메릴린치 사이에 투자전문 브로커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현 정권과 깊이 연관된 누군가가 거액의 수수료를 챙겼을 수도 있다는 소문이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막연한 추측일 뿐 근거 없는 루머 수준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전 KIC 투자운용본부장이었던 구안 옹(Guan Ong)씨가 BoA 투자에 어떤 역할을 한 것 아니냐고 추측하고 있다. MB와의 관계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조카이자 이상득 전 국회부회장의 아들 지형씨가 헤지펀드 회사인 블루라이스인베스트먼트매니지먼트(Blue Rice Investment Management)에 몸담고 있는데, 국내에서 'BRIM'으로 통하는 이 회사의 대표이사가 바로 구안 옹씨다. 구안 옹씨는 미국 푸르덴셜금융그룹 글로벌 투자 총괄책임자로 있다가 지난 2006년 KIC와 인연을 맺었고 지난 2009년 임기가 끝나면서 자리에서 물러났다. 지형씨는 BRIM에서 마케팅 담당이사(Senior Director of Marketing)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지형씨는 서울대 법대와 미시간대 MBA를 마쳤으며 지난 2000년 맥쿼리IMM자산운용 설립시 파트너로 참여해 대표까지 역임했으며, 지난 2007년부터 2009년까지는 골드만삭스자산운용 대표로 일한 경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KIC 측은 메릴린치 투자가 충분한 분석 후 내린 결정이라는 입장이다. KIC측은"BoA에 대한 신용평가사 분석에 따르면BoA의 본질적인 신용에는 문제가 없다"며 "BoA 매각설이나 파산설은 소문일 뿐이고 BoA는 자산의 현금 전환 등으로 지금의 위기는 넘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윤지환 기자 jjh@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