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성인 10명 중 1명 꼴로 우울증을 경험하게 됩니다.

때때로 슬프거나 기분이 가라앉는 것은 우리 모두가 느끼는 정상반응이지만, 우울증은 질병으로서 다음과 같은 증세의 상당 부분을 거의 하루 종일 2주 이상 겪을 때를 의미합니다. 즐겁고 흥미를 끄는 것이 없어지고, 이유 없이 슬프거나 울게 됩니다.

자신이 무가치하거나, 더 이상의 희망이 없어지고, 죄의식이 느껴지지요.

몸이 처지거나, 안절부절못하게 되고, 식욕과 체중의 변화가 있어 감소하기도 하고 늘기도 합니다. 기억력, 집중력 또는 판단력이 다 감소하게 되고, 불면증 또는 수면과다가 있으며, 만성 피로를 느끼게 됩니다. 두통과 소화불량의 증세가 있고, 죽음 또는 자살에 관한 생각도 자주 하게 되지요.

우울증의 주된 원인은 어려운 인생살이입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 이혼, 실직 같은 인생의 주요 문제나 인간관계의 어려움, 인생의 발달단계에 대한 부적응 등이 우울증을 일으키게 되지요. 그 외에도 약물이나 알코올중독, 중증 질환 등이 있을 때 우울증이 병발할 수 있으며, 유전적인 요소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한국사람의 우울은 서양사람과 달리, 유전적이거나 뇌의 신경전달물질의 결핍 등 생물학적인 원인보다는, 삶의 어려움과 상실, 받아야 할 관심과 사랑의 부족 등이 주된 이유가 됩니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더 감성적이고, 빠르게 정서가 변하는 한국인의 기질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지요. 잡아 먹을 듯이 화를 내고 싸우다가도 쉽게 화해하고 친해지기도 하고, 한참 신나다가도 자신도 모르게 우울해지기도 하는 것이 한국인의 기질입니다.

서양사람들에게는 조울증이라는 병이 있습니다. 역시 유전적 원인이 큰 병으로서 조증, 즉 지나치게 즐겁고 활발한 증세와, 우울증이 교대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병입니다.

조증일 때에는 기분을 가라 앉히는 약으로, 우울증일 때는 기분을 높이는 약으로 치료를 하지요. 그런데, 삶의 환경에 따라 쉽게 신이 났다가 쉽게 슬퍼지기도 하는 한국인의 기질을 서양인의 조울증으로 잘 못 진단하여 치료받는 경우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조증에 복용하는 약이나 항우울제 모두 증세만을 고쳐주는 약입니다. 생물학적인 원인이 있고, 그 증세를 잘 없애 줄 테니 삶의 문제와 스트레스는 스스로 잘 알아서 처리 하라는 것이지요. 크게 보면 이 약들은 진통제와 거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증세는 낫게 하지만, 그럼으로써 원인은 오히려 더 악화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삶의 환경, 스트레스가 한국인의 기질을 만났을 때 나타나는 일시적인 증상을, 서양인과 같이 약으로만 증세를 호전시키는 것은 그 약을 장기간 복용하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거꾸로 우울증약을 장기간 복용하고 계신 분들은, 지금이라도 자신과 삶의 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하면서 풀어 나가면, 약에 대한 의존을 줄여 가면서 궁극적으로 약을 끊을 수가 있는 것이지요.

지속적으로 우울하고 고통 받는 삶을 사느냐, 여기서 빠져 나와 힘차고 행복한 삶을 사느냐가 바로 오늘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유태우 tyoo@unh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