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소위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우울증약을 복용하는 중고생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약을 복용하게 되는 이유는 첫째, 본인이 불안과 우울 증세를 힘들어 하고, 둘째는 이를 쳐다 보고 있어야 하는 부모님들이 견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선은 그런 증세를 덜어 줄 수 있는 약을 찾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지요.

그렇지만 중고생들이 보이는 고통과 이상행동을 우울증이라는 병으로만 간주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개인중심의 서양인을 위한 우울증 또는 조울증이라는 진단들은, 관계가 중시되는 한국인의 심리와 행동을 설명하는 데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는 점입니다.

둘째, 약으로만 증세를 억누르는 것은 우리 아이들과의 진정한 의사소통을 그만큼 회피하게 만든다는 것이지요. 셋째, 중고생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본인 자신의 병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성장하면서 넘어야 할 과제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넷째, 최근 부모들의 아이 키우기 방법은 아이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게 하기 보다는 대신 해결해주는 과보호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 아이들은 성인들이 성장했던 과거의 시대와는 너무도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자신을 성찰하거나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시간을 거의 없게 만드는 무한경쟁의 교육제도, 형제도 거의 없고 친척도 거의 만나지 못하는 핵가족 시대, 대화 상대라고는 부모가 아니라면 실제 인물이 아닌 인터넷이나 게임 상에 존재하는 가상 인물들, 이전보다 훨씬 빨라진 사춘기에 따른 신체의 급격한 변화 등, 우리 아이들이 넘어야 할 삶의 과제는 기성세대의 상상을 불허합니다.

그런데,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가 거의 전부이었던 어른들의 눈으로 보면, 우리 아이들의 이런 모습은 나약하기 그지 없는 것으로 이해하기 힘들 수가 있는 상황이지요. 삶의 방식의 이런 차이는 부모-자식간, 교사-학생간 또는 세대간 의사소통과 감정교류의 장애를 가져옵니다.

우리 아이들의 고통과 이상증세는 뇌의 질병이라기 보다는, 이러한 삶의 과제들에 대해 적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데에서 주로 옵니다. 증세가 아무리 심하고 병적으로 보인다고 하더라도, 병으로만 보고 증세만 치료할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의 진정한 어려움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려는 부모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실 아이들의 부적응에는 부모들의 과보호가 기여한 바가 크기 때문이지요. 약을 찾아 증세를 줄여 주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만, 우리 아이의 삶의 과제를 정확히 이해하고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습득시켜 주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 아닐까요?

다른 병과 마찬가지로 소위 우울증도 약으로는 완치가 안 되어도, 스스로 적응능력을 익혀가면 완치시킬 수가 있습니다.



유태우 교수 tyoo@unh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