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남자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이유


상담실에서 부인들에게 성적으로 불성실하거나 경제적으로 무책임한 남편을 고쳐달라는 하소연을 적지 않게 듣는다.

이들 중에는 결혼 전 교제기간이 짧아서 상대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결혼한 것을 후회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상대가 이미 결혼 전부터 문제가 많았다는 것을 알고서도 결혼한 경우도 많다.

또 아직 결혼 전이지만 자신의 남자 친구가 술에 취하면 폭력적으로 변하는데 좋은 방법이 있는지 질문하는 여성들도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소위 ‘나쁜 남자 증후군’이라 말하기도 한다.

사람은 자기 자신이 자신의 삶을 바꾸려고 결심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그를 변화시킬 수 없는데, 문제는 이런 ‘나쁜 남자’들은 굳이 자신의 태도를 바꿀 이유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데에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이런 남성들 본인에게만 아니라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이런 남성에게 빠져들어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들 자신에게도 있다.

그녀의 가족이나 친구들은 이 ‘나쁜 남자’에게서 하루 바삐 헤어질 것을 권하지만, 정작 본인은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헤어질 것을 결심하지 못한다. 결혼하고 아이까지 있는 경우라면 헤어지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결혼 전의 경우에는 왜 헤어지지 못하는 것일까?

남녀의 사랑은 대부분 이성적인 판단에 의한 결정이 아닌 전 인격적인 선택의 결과다.

그래서 출생 이전에 결정되는 유전적 소인에서부터 태어나서 겪은 의식적 및 무의식적 경험, 그리고 개인적 소신 외에도 자신이 속한 사회의 가치 체계 등 모든 것들이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자신이 이미 결정한 것을 망설이거나, 분명히 잘못된 줄을 알면서도 어리석은 선택을 하여 불행에 빠져들기도 한다.

소위 ‘나쁜 남자’를 사랑하는 여성은 흔히 공감능력이 뛰어나 그의 외로움과 마음 속 고통에 대한 연민을 느끼고 그에게 위안을 주고 싶어한다. 또 고도의 직관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그의 잠재능력을 발견하고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한다.

그래서 그를 사랑하게 된 뒤부터는 그가 남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 자기 인생의 목표가 된다. 이런 마음을 아무도 몰라주는 것이 야속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헌신이 보상받을 수 있는 날을 묵묵히 기다리면서 그 고통의 과정을 견딘다. 반면 ‘나쁜 남자’는 그녀의 희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뿐 아니라, 싫다면 언제든지 떠나라고 하거나 그녀가 떠나지 못하도록 억압을 가한다.

그녀는 이런 그가 원망스럽지만, 아마도 자신에 대한 사랑의 다른 표현일 것이라고 믿고 더 불쌍하게 여긴다. 만약 그가 어쩌다가 작은 친절이나 감사의 표현이라도 한다면, 그녀는 감격하여 더 많은 노력을 쏟아 붓는다.

그런데 그녀가 발견한 그의 가능성은 잠재되어 있을 뿐이기 때문에 그것이 언제 어떻게 실현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연애나 결혼생활이 길어질수록 현실적인 삶의 부담은 점점 커져가므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실망하고 불화가 깊어져 간다.

그녀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후회하면서도 그 동안 자신이 기울인 노력에 대한 미련, ‘남 좋은 일만 시켜주었다’는 억울함, 그리고 새로운 삶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변화를 선택하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그녀는 그의 갱생을 통해서 자기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다가 ‘실패한 투자가’로 비유할 수 있다.

이런 여성이 ‘나쁜 남자’에게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람은 언제든지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을 할 수 있으며, 자신의 불행에 대한 책임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아무리 뛰어난 치료자라도 ‘자신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상담은 가능하지만, 치료실에 있지 않은 사람을 ‘어떻게 해달라’는 부탁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박수룡 www.npspecialist.co.kr
입력시간 : 2008-12-04 13:46


박수룡 www.npspeciali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