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께스 데 까세레스(Marques de Caceres)오크통 숙성시간 과감히 단축, 새로운 스타일의 고급 와인 명성 쌓아가

'와인' 하면 생각나는 나라는 프랑스, 이탈리아, 칠레,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 그러고 보니 스페인이 빠졌다. 아무래도 스페인 와인이 아직까지 국내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와인까지는 아닌 듯 싶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스페인의 유명 여성 와인 메이커가 최근 한국을 찾아왔다.

크리스틴 포르네르. 첫 인상 만으로도 '중년의 멋쟁이' 감각이 물씬 풍겨 나는 그녀는 와이너리 '마르께스 데 까세레스(Marques de Caceres)'의 소유주(오너)이다. 그녀의 첫 방한은 비록 은은하지만 한편으로 '스페인 와인의 공격'이 시작된 것으로도 일컬어진다.

스페인 와인은 2006년까지 시장 점유율 4~5% 정도의 미미한 수준으로 국내 와인 수입국가 6위에 그쳤으나 2007년부터 18%를 웃돌며 수량 면에서 프랑스, 칠레에 이어 상위 랭킹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포도 재배면적으로 따진다면 세계 1위이고 와인생산량으로도 세계 3위를 차지하는 스페인은 와인 분야에서 한동안 '잠자는 거인'으로 불려왔다. 비교적 값싼 테이블 와인이나 벌크 와인의 생산 수출에만 주력해 왔기 때문. 하지만 전통적 와인 산지인 리오하가 현대화되면서 스페인 와인도 고급 와인으로 명성을 쌓아오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마르께스 데 까세레스가 서 있다.

마르께스 데 까세레스가 특히 관심을 끌기에는 그만의 독특한 이유가 있다. 집안 이력부터 그녀의 개인 경력, 그리고 다양한 문화 라이프스타일까지 한 마디로 이채롭다.

그녀의 가문은 1964년 이래로 프랑스 메독 지역의 샤또 까망삭, 샤또 라로즈 뻬르강송을 소유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와인 양조와 보르도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와인 산업의 변화 흐름을 감지할 수 있었던 그녀는 학위 과정과 와인 양조 코스도 모두 보르도에서 밟았다.

때문에 그녀가 만드는 와인 또한 프랑스의 영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프랑스 와인들을 접하며 쌓았던 경험과 노하우를 리오하 와인에 접목시켜서다.

아메리칸 오크를 대신해 새 프랑스산 오크통을 수입해 사용하거나 스테인리스 탱크 통을 도입, 발효시 온도 조절을 하는 등의 시도가 단적인 예들. 또 와인을 나무통에서 수년간 숙성시켜 오크의 풍미가 강한 와인을 만들어 내던 그 지역의 전통 양조 양식을 버린 것 또한 그녀다.

오크통에서 짧은 시간 동안만 숙성 과정을 거치는 대신 그녀의 와인은 병 속에서 충분한 숙성 기간을 갖는다. 보통은 15일 정도이지만 25일 이상의 침용 과정을 길게 갖는 것도 기본 원칙이다. 그 결과 와인 병을 언제 오픈하더라도 진한 컬러와 함께 잘 익은 과일의 미감과 섬세한 오크 풍미가 밸런스를 이루고 매끈한 타닌의 우아한 와인으로 탄생됐다는 평을 받는다.

그래서 '그녀의 와인'들은 대체로 신선하고 과일의 뉘앙스가 물씬 풍긴다는 얘기를 듣는다. 오크통에서 숙성시키는 시간을 과감하게 단축시켜 새로운 스타일의 와인을 만들어낸 덕분이다. 더불어 대개 고급을 의미하는 '레세르바(Reserva)' 와인에만 빈티지(생산년도)를 표기하던 관례를 벗어나 생산되는 모든 와인에 빈티지를 표기한 것도 새로운 시도다.

까세레스 와인은 또한 많은 '명사들과 스토리'를 함께 함으로써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스페인 왕가가 마드리드의 사르수엘라궁에서 공식 만찬을 가질 때 즐겨 마시는 것으로 유명하며 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 등 세계 3대 테너의 콘서트 때 지정와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스페인의 유명 디자이너인 파코 라반과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도 까세레스의 주요 행사에 얼굴을 내미는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글ㆍ사진 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