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은 찐빵이 뜨거운 찐빵보다 낫네"손반죽 고수, 두 번 숙성한 반죽에 팥 으깨넣고 솥에서 최종 완성



겨울철의 대표적 간식거리, 안흥 찐빵을 먹어 본 이들의 한결 같은 평가!

"빵이 쫄깃하고 속 팥이 알차다" "식어서 먹는 찐빵 맛이 뜨거울 때 보다도 낫다" "냉동실에 넣어 얼려 놓았던 찐빵 인데도 맛이 그대로네!" 등등…어쨌든 '시중의 호빵'과 다르다는 얘기는 여기저기서 나온다.

강원 횡성 읍내에서도 차를 타고 20여 분 더 들어가야만 하는 시골(?) 안흥면. 상주 인구도 2만 여명에 불과한 면 단위 소재지인 이 곳은 늘상 전국에서 온 방문객들로 붐빈다. 모두 면사무소를 중심으로 도로변에 늘어서 있는 '안흥 찐빵' 집들에 들르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들 찐빵 집집마다 뿜어 나오는 '뜨거운 김'. 솥에서 찌는 찐빵이 거의 다 익었을 때 새어 나오는 김은 실내를 후끈 달군다. 그리고 사람들의 미각과 식욕까지. "아줌마! 여기 찐빵 한 박스 더 싸 주세요." 꽁꽁 묶어 놓았던 지갑을 여는데 결코 주저하지도 않는다.

다 같은 찐빵이나 호빵일 텐데 안흥 찐빵의 열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불과 한 개에 350원 꼴 하는 찐빵이 마을 전체를 먹여 살리는 효자 상품이 된지는 이미 오래다. 찐빵 하나로 인한 부대 산업과 매출 효과만 수백억 원대 이상으로 추산될 정도.

모양은 그냥 밀가루 반죽 속에 팥을 넣고 찐 조그만 빵 덩어리. 겉으론 간단해 보여도 안흥 찐빵을 만드는 과정은 제법 복잡하다. 빵 반죽부터 시작해 숙성과 건조, 그리고 나서야 찌는 과정을 거치는 것. 이런 과정 곳곳에 조금씩 '안흥 찐빵 맛의 비결'이 숨어 있다. 그리고 비결은 한 두 가지 만도 아니다.

"36년 전 안흥에 시집 왔을 때 동네 사람들이 다 빵을 빚고 있었어요. 그 때는 못살던 시절이었는데 주식이 수제비나 칼국수, 찐빵 이었다 해도 틀리지 않아요. 농사라곤 언덕 밭에 팥과 옥수수, 감자 정도를 심었죠"

안흥 면사무소 옆에서 '원조안흥찐빵' 집을 꾸려오고 있는 안주인 김인규씨는 예전 찐빵 만들던 모습을 이렇게 전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손반죽 만을 고수하는 안흥찐빵의 전통은 변함이 없다는 것. 지금도 이 곳 어느 빵집에서든 어르신들이 직접 빵을 빚는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빵 반죽 만을 전문으로 하는 이들만 350여명이나 된다고. 거의 대부분 장년 층 이상의 연령대다.

밀가루 반죽은 손반죽으로만 그치지도 않는다. 일단 반죽이 되면 둥그런 찐빵 모양으로 만들기 전 숙성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상온에서 몇 시간씩 놔두면서 때를 기다리는 것. 그러고 나서야 찐빵 모양으로 성형을 한다. 찐빵 모양이 갖춰진 반죽 또한 다시 한번 숙성이 기다린다. 숙성만 여러 번, 그것도 몇시간 째인지 모른다.

1-원조안흥찐빵의 안주인 김인규씨가 찐빵의 숙성도를 살펴보고 있다. 2-솥에서 갓 쪄낸 안흥찐빵
1-원조안흥찐빵의 안주인 김인규씨가 찐빵의 숙성도를 살펴보고 있다.
2-솥에서 갓 쪄낸 안흥찐빵
김인규씨는 "옛날에는 시댁에서 막걸리 알갱이를 효모로 삼아 밤새 찐빵을 숙성시켰다"고 기억한다. 효모 역할로 생이스트를 사용하는 지금은 숙성 시간은 전 보다는 짧아졌다.

이처럼 찐빵 숙성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두 차례 각각 오랜 시간 동안 숙성을 거쳐야만 빵(반죽)에 기포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포가 반죽 틈에 자리잡고 있어야만 빵에 쫄깃한 맛이 더해진다.

기포는 육안으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빵을 갈라 보면 반죽 사이로 듬성듬성 성긴 것이 보이는데 빈 공간이 바로 기포다. 숙성이 덜 된 것은 기포가 생기지 않고 그 상태로 찌면 상품 가치도 떨어진다. 이 곳에서 '파치'로 불리는 찐빵들이 그것이다.

속에 들어가는 팥 또한 맛을 좌지우지한다. 안흥에서는 통팥을 갈지 않고 그대로 쑨다. 장시간 푹 삶아 낸 뒤 다시 단맛을 추가해 졸여내는 순서로 만들어 내는데 이 과정 역시 거의 하루 종일 걸린다고. "시간도 필요하지만 (가스)불도 오래 때야 하고 손이 많이 들어가요. 팥에 돌이 없게 고르는 것도 손으로 마무리하는 등 잡일이 여간 많은 게 아니에요."

안흥 찐빵을 한 입 베어 물을 때 묻어 나오는 속 팥의 구수하면서도 살아 있는 느낌은 이런 정성 덕분이다. 그럼 시중의 여느 호빵 혹은 찐빵과의 차이는? 팥이 부드러운데 이는 통팥이 아닌 팥을 으깬 까닭이다.

빵 반죽 또한 부드럽지만 결코 쫄깃하지도 않다. 더더욱 식기라도 하면 맛이 떨어지고 식은 호빵을 다시 찌거나 데우면 맛이 예전 같지도 않기 일쑤다. 반죽이나 팥을 가공하는데 기계를 많이 사용하게 되면 손 맛이 전혀 느껴지지도 않는다. 밀가루나 설탕이야 어쩔 수 없이 수입해 쓴다지만 안흥에서 팥 만은 현지 농민들이 재배하는 '신선한 팥'만을 수매해 수용한다.

반죽에 팥이 들어가고 숙성이 끝난 반죽은 솥에서 최종 완성된다. 수십 여분 뜨거운 열기에 쪄내는데 김이 모락모락 새어 나오는 것이 절정을 이룰 때가 마지막 완성 순간이다. 김이 솥뚜껑 사이로 조금씩 넘쳐 나올 때 다 익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오랜 경험만이 말 해준다. "김을 봐가면서 감각으로 압니다."

예전에는 지금의 '양솥'이 아닌 가마솥을 사용했다. 그런데 가마솥은 무거운데다 가열되는 데도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려 지금은 대부분 양솥을 사용한다. 안흥 찐빵이 내는 고유의 맛 또한 이 솥에서 나온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찜기에서 찐빵을 찔 경우에는 김이 전혀 새지 않아 에너지 효율이 높아진다. 하지만 비록 김이 새면서 에너지 사용량이 늘어나더라도 안흥에서는 솥을 찜기로 바꾸지 않는다.

유명한 음식 동네에서는 가끔 원조 논쟁이 붙는다. 김인규씨의 가게 이름도 '원조안흥찐빵'이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아무도 시비 붙는 사람이 없다.

"안흥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원조 찐빵입니다. 모두 다 원조 안흥 찐빵의 제조 방식을 사용하고 있어서죠. 맛의 기본은 다 같습니다. 하지만 가게 별로 조금씩 손 맛이 다를 수는 있겠죠."

안흥찐빵은 식어도 맛있다고 하는 이들이 많다. 따뜻할 때 보다 빵의 질감이 더 쫄깃해서다. 일단 쪄진 찐빵은 대부분 냉동 보관하는데 다시 쪄 내도 원래의 맛과 큰 차이 없다는 것이 일반의 평. 방부제를 사용 안해 3일 이내만 상온에서 신선도를 유지하는데 가끔 "곰팡이가 핀다"고 항의 전화를 하는 이들도 있다. 이제는 반대로 상온에서 놔둬 보았다가 혹시라도 "왜 곰팡이가 피지 않았죠?"라고 물어봐야 할 듯 싶다.

메뉴 안흥찐빵 20개들이 한 박스 7,000원, 흑미찐빵 단호박찐빵 쑥찐빵 등은 25개들이 9,000원.

위치 강원 횡성군 안흥면 (033)344-5800



글ㆍ사진 안흥=박원식기자 parky@hk.c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