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쓰는 '사랑과 전쟁'] 분노의 표현에도 기술이 필요해


영화 <싸움>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부당한 대우나 상사의 모욕, 또 동료의 배신과 같은 여러 이유로 분노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데 원만한 가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힘든 하루를 마치고 가족에게 돌아가 지내면서 이러한 분노를 털어내거나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을 얻어 또 새로운 하루를 희망을 가지고 시작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가정은 각 개인의 안식처일 뿐 아니라 가장 효과적인 치유시설 및 사회복지 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국가가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분노가 가정에서 시작된 사람들은 적절한 치유장소를 발견하기 어렵다. 사람들에 따라서는 직장에서의 성공이나 친구들의 위로를 통해서 시름을 달래기도 하고 때로는 유흥시설을 도피처로 삼기도 하나, 이런 방법으로는 마음 깊은 안식을 얻을 수 없으며 그 가정은 점점 더 황폐한 곳이 되기 쉽다.

어느 부인의 남편은 소위 '잘 나갔을 때'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위세 부리느라 돈 쓰기 좋아하고 가정에는 인색한 사람이었다. 남편의 직장이 갑자기 문을 닫게 되면서 돈벌이가 힘들어 지고 어울리던 친구들이 멀어진 후에야 가정의 소중함을 알고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였다. 남편은 택배와 야간 경비를 하면서 뒤늦게 애쓰고 있지만, 그 동안 남편에게 무시 받으며 가정을 꾸려오던 부인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젊었을 때 '퍼 쓴' 돈을 다시 찾아오라거나, 늦게나마 호강 좀 해보자며 '명품' 아니면 '짝퉁'이라도 사달라며 남편을 몰아세우기 일쑤였다. 자녀들이 말리기라도 하면 '애써서 키워놨더니 제 아비 편을 든다'며 더 사나워지곤 했다.

다른 경우로, 어느 남편은 자신의 부인이 동창 모임에 나가서 외도를 저지르고 온 것을 알게 된 후에 '사람이 달라졌다'. 성장한 자녀들 앞에서 부인의 옷을 벗겨 무릎을 꿇고 빌게 한 것으로도 부족하여 수시로 무리한 성 관계를 요구하거나 손찌검을 하곤 하였다. 견디다 못한 부인이 이혼을 조르면 '아직도 반성하지 못한다'며 더 심하게 대했다. 남편은 점점 더 생업에 소홀해져 갔고 가정 경제도 어려워져 갔다. 남편은 부인이 몇 차례 자살을 시도하고 난 후에야 '독한 년'이라며 자신도 '조금 지나친 면이 있었다'고 인정하였다.

분노는 그 발생 이유가 충분히 타당하더라도 그 처리가 적절하지 못하면 자신과 주위 사람 모두에게 심각한 문제를 불러온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을 분노하게 만든 상대의 잘못에만 집중하고, 그 사건 전의 이유나 사건 후의 수습책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리고 해결을 위한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권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자신에게 반대하고 잘못한 상대를 편드는 것처럼 반응한다. 이들이 분노 감정을 적절히 처리하지 못하는 것은 그 감정이 이성을 압도하여 통제력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강한 분노 감정은 우리들의 무의식에 남아있는 원시적인 양분적 사고방식을 자극하여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자신은 일방적인 희생자로써 상대의 잘못을 응징할 권리가 있다는 단순획일적 사고방식에 사로 잡힌다. 그리고 그 결과로 빚어지는 분란의 모든 잘못이 상대에게 있음을 강조한다. 또 자기 자신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는 희생자가 되어 버린 것으로 느낀다.

이들은 상대의 잘못으로 자신이 깊은 상처를 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이 처리해야 할 대상에는 상대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과도한 분노 감정도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상대가 잘못하기는 했으되, 자신의 감정 폭발이 현 상황을 과연 개선시키고 있는지 아니면 악화시키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파괴적이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분노를 적절히 표현하는 방법이 있으며, 또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는 방법에도 분노 표현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배울 필요가 있다. 이런 방법들을 배우면 상대의 잘못에 굴복하지 않으면서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할 수 있다.


박수룡 백상신경정신과 클리닉 원장 www.npspecialist.co.kr
입력시간 : 2009-02-26 10:12


박수룡 백상신경정신과 클리닉 원장 www.npspeciali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