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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트렌드] 불황 속 명품 보수냐 혁신이냐





전세화 기자 candy@hk.co.kr



클래식 스타일로 회귀할까, 과감한 혁신행보가 계속될까.

예사롭지 않은 경제위기가 세계를 강타한 지난해 말부터 명품업계를 둘러싼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다.

불황엔 (엄숙하고 절제된) 보수성향의 소비가 대세라는 게 일반적인 논리다. 따라서 브랜드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강조한 클래식 스타일로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패션계 안팎에서 유력시되고 있다.

그러나 2009년 상반기 한국 명품시장은 고전적인 이미지에서 탈피하지 못한 브랜드는 외면한 채 개성으로 승부하는 브랜드에 열광하는 하이엔드 소비자의 호불호(好不好) 경향이 여전하다.

경제한파 속 클래식의 부활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명품의 혁신은 계속될까.

1,2-랑방 신사복
3-돌체&가바나 파자마룩
4-랑방 아크네진


2009년 상반기 명품 혁신행보 여전

서울 청담동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관. 구찌, 프라다, 에트로, 샤넬, 크리스찬 디오르 등 여러 브랜드의 매장들이 모여있다. 이 중 가장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은 루이비통 매장이다. 명품매장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물건을 사러 몰려드는 고객들로 연일 북적인다.

더욱이 명품 브랜드들이 일제히 겨울철 정기세일에 들어간 시기에, 루이비통만은 올해도 변함없이 '노 세일(No Sale)' 정책을 고수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더욱 놀라운 현상이다.

세일도 하지 않는 루이비통으로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려드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힌트는 먼저 쇼윈도에서 찾을 수 있다. 올해 1월 출시된 '로즈라인' 가방과 모노그램 그래피티 스카프가 걸린 이 매장 쇼윈도는 신선한 자극을 원하는 명품족의 눈에 단연 돋보인다.

이곳 점원은 "로즈라인 가방은 들어온 직후부터 주문이 폭주하고 있다"고 전했다. 루이비통의 변신을 대표하는 모노그램 변형 컬렉션 중 하나인 로즈라인은, 모노그램 그래피티 컬렉션을 제작한 뉴욕의 아티스트 스테판 스프라우스에 의해 탄생됐다. 루이비통 모노그램 위에 스프라우스가 실크 스크린 기법으로 장미꽃을 그려 넣은 로즈라인 가방은 예술적이면서 시크한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고전적인 스타일을 내세운 매장에는 '30~50%할인' 이라는 간판문구에도 불구하고 구경하는 손님조차 드물다.

경기침체 속에서도 개성을 추구하는 하이엔드 소비자들의 행태가 주춤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례다.

이 같은 소비자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럭셔리 업체의 도발적인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발리도 이번시즌 고급스러우면서도 장난스러운 분위기의 제품을 대거 내놓으며 더욱 화려한 변신을 선포했다.

발리는 올해 신사화의 고정 스타일에서 벗어나 다양한 스타일의 신발을 선보였다.

소재의 다양화도 발리의 확실한 변화 중 하나다. 특히, 벨벳 소재의 이브닝 슈즈와 부츠, 양털 소재의 스니커즈¹, 장갑처럼 얇은 가죽으로 만든 웰링턴 부츠² 등은 개성파 남성들이 주목할 만큼 충분히 파격적이다.

발리 신제품을 접한 패션리더들의 반응은 벌써부터 뜨겁다. 패션 스타일리스트 정윤기 씨는 "주변의 멋쟁이들이 이번 시즌 발리의 변신에 열렬히 환호하고 있다. 앞으로 발리의 인기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랑방이 청바지 브랜드 '아크네 진'과의 공동 디자인 작업을 통해 제작한 '익스클루시브 데님 컬렉션'(exclusive denim collection)도 화제다. 데님 컬렉션에는 테일러드 형식의 주름이 특징적인 바지, 반바지, 클래식한 블레이저 재킷³ 등이 포함돼 있다. 나만의 개성을 추구하는 젊은층이 최고급 패션브랜드인 랑방에 거부감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한 시도다.

크리스찬 디오르 남성복 브랜드 '디오르 옴므'도 이번 시즌 기성복 형식에 펑키(funky)하고 가벼운 터치를 더한 메탈릭 가죽 재킷, 박쥐 날개 모양의 레인코트 카굴(cagoule), 보석이 장식된 골드 가죽 진을 선보이며 개성파 멋쟁이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밖에도 명품의 고정관념을 넘은 새로운 시도는 유명 브랜드에서 앞 다퉈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09 봄여름 파리컬렉션에서 크리스찬 디오르의 수석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는 아프리카 여행에서 얻은 영감으로 동물 패턴과 원시부족 장식을 브랜드에 도입해 섹시하고 현대적인 제품으로 승화시켰다. 전형적인 프랑스 프리미엄 브랜드가 신개념 패션 컨셉트로 고상함 대신 모험을 선택해 관객에게 일종의 반전 효과를 느끼게 한 셈이다.

1-루이비통 그래피티 가방
2-랑방 2009 봄여름 남성컬렉션 더비슈즈
3-다이안본퍼스텐버그의 2008년 원더우먼 테마 가방과 티셔츠
4-스니커즈/웰링턴 부츠/블레이저 재킷


불황 속 괴짜 명품 롱런할까

하지만 일부 프리미엄 패션 브랜드의 과감한 변신이 혹독한 경기침체 속에서 과연 언제까지 강세를 떨칠 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조차 의견이 분분하다.

그 중 불황이라 해서 상류층의 패션 소비패턴이 크게 변하는 것은 아니라며 혁신 낙관론을 펴는 이들이 한 축을 이룬다.

패션스쿨 사디(SADI)의 고석규 교수는 "지금의 명품 족들은 오랫동안 명품을 써오며 높은 패션 안목을 갖추게 됐고, 차별화 욕구가 기존 어느 세대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해 경제사정 때문에 쉽게 보수성향의 소비패턴으로 선회하진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쉴새 없이 새로운 스타일을 갈구하는 이들의 성향은 유명 브랜드들의 소량생산 한정판(limited edition)의 인기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통상 일년에 두 번, 봄/여름 그리고 가을/겨울 시즌 컬렉션을 선보이는 디자이너 브랜드로는 발 빠르게 변하는 요즘 소비자들의 욕구를 따라잡기 힘들다. 이 때문에 유명 브랜드들은 시즌 정규 컬렉션 외에 소수 마니아를 위한 소량 생산 한정판(limited edition)을 매 분기마다 내놓고 있다. 업체들은 이들 한정판에서 명품의 엄숙하고 고상한 스타일에서 벗어나 과감한 모험을 시도하고 있다.

고급 여성복 브랜드 다이안본퍼스텐버그의 2008년 원더우먼 테마 가방과 티셔츠 등 이들 한정판은 출시와 동시에 사회적인 화제를 뿌리며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상류패션에 걸맞지 않은 괴짜 스타일과 소량생산에 의한 희소가치가 개성을 추구하는 하이엔드 소비자의 소비심리를 자극한 것이다.

혁신을 점치는 이들은 이런 점만 보더라도 명품시장의 주를 이루는 감각적인 소비자들이 주머니 사정 때문에 개성을 포기하겠느냐고 반문한다.

더욱이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는 "경기가 안 좋은 때일수록 남에게 초라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고,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심리가 강해진다"며 "불황여파로 개성 있는 고가 브랜드의 인기는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점쳤다.

따라서 업계에선 불황기에 명품의 가치 전락을 우려하는 기존 명품족 사이에서 개성 있는 한정판 상품이 더욱 인기를 끌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한다.

반면, 복고를 예견하는 이들은 불황이 장기화됨에 따라 서서히 사치품의 소비패턴이 바뀔 것이라고 주장한다. 패션업계 일각에선 명품업계가 올해부터 기본적인 스타일로 오랫동안 인기를 누려온 '스테디 셀러'의 공급량을 늘릴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세계적인 거부들(super-rich)조차 지갑을 열지 않는 상황을 고려할 때 상류층 소비자들도 잔뜩 소심해져 있다는 것이다. 인터패션플래닝 박세은 연구원은 "이런 상황에선 명품족이라 해도 누구나 어느 브랜드의 제품인지 알 수 있을 만큼 인지도가 높은 확실한 아이템을 사고자 하는 게 설득력 있는 논리"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시각은 해외 주류언론의 전망과 맥을 같이한다.

영국의 유력 경제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해 말 명품업계가 2009년엔 현대예술과의 합작 등을 통한 화려한 혁신행보를 멈추고 브랜드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강조한 클래식 스타일을 부활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 등 명품의 본거지에서조차 '불황 속 엄숙주의'라는 일반적 전망이 꼭 맞아 떨어지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얼마 전 인터패션플래닝이 발표한 0910 가을겨울 남성 해외 칼렉션 트렌드 설명회 보고에 따르면 본격적인 불황기에 접어든 지난해 말, 돌체&가바나가 기존의 틀에 박힌 남성복에 딴지를 걸 듯 출시한 '파자마 룩'이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보수적인 남성복에서조차 혁신적인 벗어난 디자인이 선호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한 예다.

이런 이유로 불황 속에서도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명품의 혁신행보가 쉽게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1. 스니커즈 - 캔버스 슈즈의 일종. 레저용 바지, 특히 청바지나 진으로 만든 스커트와 함께 많이 신는 이 운동화는 유행에 따라 패션화 되고 있어 최근에는 구두와 같이 전체적으로 신발 바닥의 창이 두꺼운 것도 있다.

2. 웰링턴 부츠 - 영국인들이 군화 또는 승마용으로 신는 무릎까지 올라오는 긴 장화

3. 블레이저 재킷- 블레이저는 '불꽃처럼 타오르다'라는 뜻.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보트부 학생들이 진홍 빛 상의를 착용한 데서 비롯됨. 금속제 단추가 달린 화려한 색의 신사복 상의를 통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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