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한국전통음식연구소 3년간 작업끝 떡갈비·갈비찜 등 20여가지 선정

"순두부 찌개가 너무 맛있네요. 제 입 맛에는 딱 맞는 것 같습니다…"

최근 한국전통음식연구소에서 열린 한식 세계화를 위한 대표 메뉴 선정 발표회. 이 자리에 참석한 빰 띠엔 반 주한베트남 대사는 해물이 들어간 순두부 찌개 요리를 특히 좋아했다. 해물이 듬뿍 들어가 베트남 내음이 나면서 얼큰한 한국의 국물 맛과 잘 어우러진다는 것이 그의 촌평.

이 날 발표회는 한국전통음식연구소(윤숙자 소장)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외식산업경영연구원 등과 함께 '해외 한식당의 문화적 고품격화 사업'의 일환으로 마련한 자리. 3년 여의 준비와 작업 끝에 홍콩과 베트남 사람들이 좋아하는 한국음식 20여가지 메뉴들이 각각 선정, 공개됐다.

결과는 당연한 듯 하면서도 뜻밖. '비슷하게 나올 수 있다'는 예상과 달리 베트남 사람들은 떡갈비와 돼지갈비강정을, 홍콩 사람들은 갈비찜과 돌솥비빔밥을 가장 선호하는 한식 메뉴로 꼽았다. 같은 동남아권에 자리하고 있지만 두 나라가 '입 맛'에 있어서 만은 서로 다른 각각의 고유한 특성을 고스란히 나타낸 셈이다.

이번 메뉴 선정에 특히 신빙성을 더해 주는 것은 3년 여의 오랜 시간에 걸쳐 치밀하게 벌인 사전 조사 작업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검증은 나라별로 식재료 선정에서부터 조리 방법과 과정, 음식 시식, 설문 조사 등 다방면에 걸쳐 이루어졌다. 현지의 재래시장과 일반마켓, 백화점과 현지 한식당 등이 모두 조사 대상 방문지들.

조사팀은 지난 해부터 홍콩과 베트남 현지를 직접 찾아가 현지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식재료와 또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식재료, 그리고 그 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맛을 먼저 살폈다. 그리고 홍콩과 베트남 사람들이 좋아하는 한국음식 50가지를 각각 만들어 현지의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기호도 조사를 벌였다. 해외 현지 뿐만 아니라 국내에 거주하는 베트남과 홍콩사람들을 대상으로도 똑 같은 조사가 실시됐다.

최종 결과 한식을 대하는 두 나라 사람들의 입 맛은 '확연한 차이'를 드러낸다. 우리와 지리적으로 더 가까운 홍콩 사람들은 해산물을 매우 좋아하는 성향이 강하게 나타났고 베트남 사람들은 채소를 요리하지 않고 생으로 먹는 특징이 두드러졌다.

홍콩 사람들이 특히 선호한 식재료들은 새우와 랍스터, 게, 조개, 생선, 특히 대구 등의 흰살생선과 전복 등. 더불어 이들 해산물이 들어간 그린빈 새우볶음, 김치해물죽, 대구조림, 대구 맑은탕, 우엉 흰살생선조림, 양상추새우샐러드 등이 인기 메뉴 자리에 올랐다.

홍콩 사람들이 육류 중에서는 소고기와 돼지고기, 닭고기, 오리고기 순의 선호도를 보인다는 점도 이채롭다. 이 같은 선호도를 반영, 한식 메뉴 중 궁중갈비찜과 너비아니 겉절이, 단호박 불고기, 전복삼계탕 등이 랭킹에 들었다.

또 홍콩 사람들은 채소류 중에서 버섯류, 상추, 브로콜리, 오이 등의 신선한 채소를 특히 선호했다. 버섯잡채, 양상추, 새우 샐러드, 오이물김치, 호박전 등이 같은 계통의 인기 메뉴들. 양념류 중에서는 특히 간장 양념류를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음식을 담고 먹는 테이블 문화도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빼놓을 수 없는 고려 요인이 된다. 홍콩 사람들은 음식을 큰 그릇에 담아 보통 4인분 기준으로 돌려 나눠 먹는 식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결론은 한식을 큰 그릇에 풍성하게 담아야 한다는 것.

온갖 종류의 채소를 다 갖고 있는 나라인 베트남 사람들이 채소를 요리하지 않고 생으로 먹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고수와 숙주를 들 수 있다. 국내에서도 인기 메뉴로 자리잡은 베트남 쌀국수 집에서도 쉽게 경험할 수 있는 부분. 이런 특성을 반영해서인지 고수오이생채, 숙주잡채, 브로콜리김치, 아스파라거스 조개관자적 등이 인기 메뉴로 꼽힌다.

해산물류로는 재래시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고등어, 삼치 등이 베트남 사람들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식재료로 떠올랐다. 삼치구이와 깨소스, 고등어김치말이조림 등이 베트남인들을 위한 추천 한식 메뉴. 새우와 베트남쌀을 이용해 볶음밥을 만들고 라이스 페이퍼를 그릇 대용으로 꽃과 같이 튀겨 그 안에 김치 해물볶음밥을 넣는 것도 한식이 현지인들에게 친밀하게 다가설 수 있도록 하는 아이디어로 주목받을만 하다.

또 베트남에서는 시장에서 절단한 낙지가 흔한 편인데 때문에 낙지볶음과 갑오징어 해물파전 등도 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메뉴로 선정됐다. 특히 베트남은 세계적으로 후추가 유명하고 후추를 이용한 음식이 많은데 이들이 좋아할 만한 후추가 많이 들어가는 음료로 배숙이 추천됐다.

조사를 지휘한 윤숙자 소장은 "지난 해 완성된 한식의 조리법 표준화 작업을 토대로 이 번에는 한식에 외국인들의 입맛을 담아 본 시도"라며 "현지인들의 미각에 맞춰 한식을 담아냄으로써 한국 음식의 품격이 한 층 더 높아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전 시식 과정부터 적극적으로 조사에 참여한 부인과 함께 행사에 참가한 빰 띠엔 반 베트남 대사도 "이번 행사와 음식을 통해 양국과 국민들이 더 가까워 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호평했다.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