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life] 고환율·경기 침체 속 수입차 시장 변화 급물살

(위 왼쪽부터) 메르세데스-벤츠The new generation M-Class ,폭스바겐골프2.0 ,BMW 120d 쿠페
(아래 왼쪽부터)혼다 어코드3.51, 인피니티 뉴G37, 렉서스 ES350

'일제차, 엔고로 입지 축소 가속화' '일본차 이대로 무너지나' '일본차 몰락하고 독일차 뜨는가?' '독일차에 밀린 일본차, 고환율 폭탄에 추락?' '한국 온 일본차 환율에 졌다?' 일본차를 둘러싸고 연일 화두로 떠오르는 이슈들이다.

경기 침체와 환율 급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최근 국내 수입 자동차 시장에서 국가별로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그간 상대적으로 '저가'를 무기로 시장 공략에 나서던 도요타 닛산 혼다 등 일본산 수입차 판매가 급감하는 반면 BMW 벤츠 등 유럽산 승용차들은 오히려 선전하는 양상을 띠고 있어서다.

경기 침체가 본격화하기 시작한 지난 해 말부터 '주춤'하는 듯 했던 일본산 수입차의 '위기론'이 가시화한 것은 혼다코리아가 올 초 차량 가격을 2~3% 올리면서부터다. 더불어 지난 해 1만2000 여대를 팔며 수입차 판매 1위에 올랐던 혼다코리아는 올해 판매 대수를 4000대로까지 제한했다. 혼다가 한국 시장에서 차 값을 올리고 판매 대수도 줄여 잡은 이유는 물론 엔고 때문이다.

하지만 더욱 시장을 놀래킨 것은 혼다코리아가 3월 들어서자 마자 차량 가격을 320만~890만원씩 추가 인상을 '단행'했다는 점이다. 불과 두 달 전 인상 때 차종 별로 오른 액수가 80만~190만원 이었던 것에 비하면 상승폭이 훨씬 더 커진 셈이다. 특히 혼다의 차량 가격 인상은 새로 선보이는 신차가 아니라 이미 시장에서 팔리고 있던 모델에 적용된 이례적인 사례라는 점에서 시장에 미치는 여파가 더욱 크다. 덕분에 혼다 3.5 어코드의 경우 국내 수입 가격이 3980만원에서 이번에 4590만원으로 뛰어 올랐다.

굳이 혼다 만이 아니라 일본차들의 '위기론'은 최근 공개된 실적에서도 여실히 입증되고 있다. 한국수입차협회에 따르면 지난 2월 국내 시장에서 혼다는 228대 판매에 그치면서 7위로 내려 앉았다. 지난 해까지만 해도 월별로 기본 1000대 이상 판매하던 '양호한' 성적에 비교하면 가히 충격적인 결과다.

이 같은 사정은 다른 브랜드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인피니티는 2월 한달 간 192대, 닛산도 119대를 판매하는 부진한 성적으로 각각 8, 10위로 처졌다. 렉서스만 283대로 5위 자리를 지켜내며 간신히 체면을 유지했다. 또한 지난해 말 한국에 상륙한 닛산은 미처 자리도 잡기 전에 기존 인피니티와 조직을 통폐합하고 일부 구조조정을 실시하는 등 어려운 사정을 노출했다.

일본차들이 이처럼 부진한 실적에 고심하는 데 반해 유럽차들은 최근 연일 승승장구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역시 최근 발표된 2월 판매 대수에서도 BMW와 아우디, 메르세데스 벤츠 3사는 나란히 판매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 지난 해까지는 절반을 갓 넘는 수준에 머물던 유럽산 브랜드 승용차의 국내 점유율도 상대적으로 높아져 벌써 60%를 넘어섰다. 국내 도로를 달리고 있는 수입 승용차 10대 중 6대 이상이 유럽산 차량이라는 의미다.

유럽산과 일본산 수입차가 이처럼 국내 시장에서 대조적인 양상을 보이는데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제기된다. 어려운 경기 여건, 고환율, 수요 부진 등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설. 하지만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경제 위기 상황인데도 유럽산 수입차와 달리 유독 일본차들에게만 '가혹한 대가'가 주어지고 있다는 데 대해서는 여전히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다.

우선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되는 사항은 '환율 차이'다. 원화가 다른 화폐들에 비해 저평가되면서 환율이 많이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 한 마디로 '엔화의 상승폭이 유로나 달러 보다 더 크다'는 지적이다.

실제 최근 외환 시장에서 100엔에 1600원 대까지 올랐던 환율은 1년 전인 지난해 2월 100엔에 880원에 불과했다. 2007년 9월 이전에는 700원 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거의 두 배 가까이 오른 셈이다. 때문에 유로화나 달러 보다 상대적으로 인상폭이 큰 엔화의 환율 때문에 일본차들이 가격 경쟁력에서 불리할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더불어 치솟은 환율에 따른 부담을 '흡수해 내는' 방식에 있어서도 나라별, 브랜드별로 차이가 있다는 점도 '경쟁력을 차별화'시키고 있다. 일본산 수입차들이 대부분 '엔화' 결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면 유럽 승용차 회사들은 아직까지는 '원화' 결제를 수용하고 있는 양상.

즉 유럽산 자동차는 원화의 환율이 떨어지더라도 비싼 유로화 기준으로 본사에 송금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여전히 국내에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BMW나 벤츠 등 유럽산 자동차 회사들 경우 본사가 직접 나서 환율 상승에 따른 부담을 덜어주는데 적극적이란 점도 무시할 수 없다.

환율 못지 않게 자동차를 판매할 때 고객들에게 적용하는 리스 운용에서도 유럽산 브랜드들은 더 유리한 상황이다. 벤츠나 BMW 경우 자체 리스 회사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최근 불황 여건에서도 신축적으로 조건 적용이 가능했다.

하지만 외부 리스 회사를 주로 이용하는 혼다나 닛산 등은 재정 규모와 운용 조건에서 그런 '유연성'이 부족한 것이 사실. 때문에 최근 경기 상황에서는 유럽산 승용차 구입이 상대적으로 더 쉬운 형국이다. 국내 일본차 중에서는 렉서스만이 자체 리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렉서스 판매 실적이 혼다나 닛산 보다 상대적으로 타격을 덜 받은 것도 이런 여건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다.

더불어 일본과 유럽, 거리 등 지리적인 요인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거리가 가까운 일본은 차량 이동, 운송 시간이 짧기 때문에 지금까지 실시간으로 차를 들여 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멀리 떨어져 있는 유럽은 '일찌감치' 차를 들여와 '미리 대기'시켜 놓는 방식. 창고와 보관 비용이 들더라도 구조적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강했다.

그런데 고환율이라는 '역풍'을 맞으면서 두 가지 다른 수입 방식에 명암이 엇갈리게 했다. 진작에 국내에 들어와 기다리고 있던 유럽산 차량들은 환율 인상에 따라 가격을 올리지 않고 종전 환율을 적용할 수도 되지만 일본산 수입차들은 새로이 오른 환율을 적용해야만 하기 때문.

이런 속사정은 차량 가격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BMW는 528i를 360만원 깎아주고 있고 메르세데스벤츠는 지난 2월 신형 M클래스를 시판하면서 ML280 CDi의 가격을 종전 8150만원에서 7990만원으로 오히려 160만원 낮췄다. 유로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1년새 40%나 오른 것을 감안할 때 뜻밖의 조치다. 폭스바겐도 오히려 골프 모델에 무이자 할부를 시행하고 있다.

이와 함께 경기 위축으로 그간 경제적으로 여유 있던 국내 중산층이 적잖은 타격을 받았다는 사실도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그간 유럽산 승용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저가 공세'를 펼치던 혼다 등 일본산 수입차의 주고객층이 '직격탄'을 맞았다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자동차 업계에서는 "고환율을 비롯한 위기 상황을 맞아 대응 방식에 있어서도 수입자동차 회사들간에 입장 차이가 대조적으로 드러난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유럽 자동차 회사들이 '마치 예상한 듯 당황하지 않고 침착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어느 정도 준비되고 또 한국 시장에서 누적된 오랜 경험에서 나온 대처'라는 설명이다.

BMW 주양예 부장은 "IMF 패닉상황 때도 오히려 더 투자를 늘리고 저리로 자금 지원을 하면서 한국 시장 기반을 다지는데 주력한 BMW의 경험 사례가 최근에도 섣부른 조치나 행동을 자제케 하는 것 같다"며 "지금 위기가 시장을 길게 보는 장기적인 안목과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적 네트워크 간 신뢰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교훈을 되새기게 해준다"고 촌평했다.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