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쓰는 '사랑과 전쟁'

우리나라에서는 실제로 결혼하고 사는 11쌍의 부부 중에서 한 쌍의 비율로 이혼을 선택한다. 즉 우리가 결혼식 하객으로 참석하여 축하했던 신혼 부부들의 10분의 일은 이혼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이혼이 드물지 않게 된 현실에 적절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이혼을 특별한 개인에게만 발생하는 사건으로 보지 말고 누구의 결혼에도 뒤따를 수 있는 대단히 일반적인 현상으로 파악해야 한다.

동시에 각 개인은 행복한 결혼을 선택하고 원하지 않는 이혼을 피할 수 있도록, 또 불가피하게 이혼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라면 불행한 결혼보다 이혼 후에 행복한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충분히 학습을 할 필요가 있다.

부부갈등이 어떻게 이혼으로 연결되며 이혼 후에 얼마나 행복하게 느끼는지의 여부는 각 개인의 특성 및 부부 상호관계, 그리고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배경이 모두 복잡하게 포함된다.

이는 이혼이 법적으로 인정되는 순간에 완결되는 사건이 아니라 당사자 개인과 가족에게 수년간 지속되는 진행형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혼을 하게 된 사람들은 단순히 법적인 혼인관계에서 벗어나는 것만 아니라 여러 가지 분리 과정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이들은 먼저 ‘정서적 분리’를 겪게 된다. 이혼을 하게 된 부부는 대개 훨씬 이전부터 상대 배우자와 정서적 관계가 단절되어 있다. 과거 애착의 대상이었던 배우자에게 버림을 받는 경우든 자신이 적극적으로 벗어나려고 애쓰는 경우든 그 정서적 분리의 고통은 상상 외로 크다. 대개 최소 2년은 걸려야 그 고통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혼으로 인한 정서적 분리의 고통을 성공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심리적인 독립을 얻고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충분한 독립을 이루지 못하면 상대에 대한 미련이나 미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자책에 빠져서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누구나 짐작하지만 ‘경제적 분리’는 생각보다 어렵다. 단일 경제단위로서의 가정경제가 해체되면 각자 개별적인 경제적 책임을 져야 한다. 이혼은 특히 경제적 자립수단이 약한 개인에게 불리한 경우가 많다. 실제로 남성보다 여성이 이혼 과정과 그 여파로 인한 경제적인 후유증을 더 많이 경험하게 되는데, 연구들에 따르면 이혼으로 여성의 평균 수입이 73% 감소되거나 이혼 후 약속한 양육비를 받는 여성이 50%에 못 미친다.

양육할 자녀가 있는 여성은 직업선택에 제약을 많이 받을 뿐 아니라, 이혼가정의 자녀는 부모의 이혼에 따른 심리적 충격 외에도 교육의 기회와 생활복지 등 여러 면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또 ‘부모역할의 분리’가 일어난다. 배우자가 주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혼을 고려하는 사람도 혼자서 자녀의 양육을 전담하기에는 자신을 갖기 어렵다. 용기를 내어 이혼을 했더라도 그 자녀가 부모의 이혼에 대해 불만을 갖는 경우에는 어찌해야 할 지 막막하게 된다.

또 배우자에 대한 나쁜 기억이 이혼 후에 자녀를 통해 되살아나는 경우에는 자신이 무엇을 위해서 이혼을 하고 또 자녀를 선택했는지 뒤늦게 후회하게 만들 수 있다. 더구나 자신의 어려운 선택이 자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점을 깨닫게 되면 이혼을 해서라도 행복을 찾겠다는 결단이 헛된 꿈이었던 것 같아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끝으로 ‘사회적 분리’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혼을 한 사람은 결혼으로 유지해 온 양가 가족과 부부 공동의 친구들에게서 분리된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기존의 인간관계에서 스스로를 소외시키게 되지만,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도 사실 여러모로 어렵다. 이혼은 개인의 대인관계에도 변화를 일으켜 이혼 후 생활에 적응하는데 적잖은 장애를 겪게 한다

꿈처럼 달콤하기만 한 결혼생활이 없듯이 이혼도 엄연한 현실이다. 부부상담을 받거나 이혼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이혼을 잘 하기 위해서뿐 아니라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박수룡 백상신경정신과의원장 sooryong@medimai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