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쓰는 '사랑과 전쟁'

자녀가 있는 부부가 이혼을 하면서 가장 염려하는 것이 자녀의 행복과 장래에 미치는 영향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실제로 어떻게 해야 좋은지를 잘 몰라서 어려워한다. 이혼 결정이 내려지면 가급적 빨리 부부가 함께 자녀에게 말하는 것이 좋은데, 어떤 내용을 어떻게 말할 것인지는 미리 상의하여야 한다.

사실 어떤 내용을 이야기하느냐에 못지않게 어떻게 이야기하는가가 중요하다. 부모가 이혼에 대해서 잘 합의되어 있고 이혼 후에 생길 문제에 대해서도 잘 처리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어야 자녀가 덜 불안해 한다.

자녀의 나이에 따라서 부모의 이혼에 대해 이해하는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자녀의 나이에 따라 배려를 해주어야 한다. 특히 어린 자녀에게는 자신 때문에 이혼하는 것이 아니며 부모의 이혼 후에도 부모 자식의 관계는 지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려줄 필요가 있다.

어린 자녀들은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부모의 재결합에 대한 환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이혼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명을 해주는 것이 좋다. 좀 나이가 든 자녀에게는 부모 중 누구든 이성 친구를 사귀거나 재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미리 알려두는 것이 좋다.

자녀에게 통지한 후에는 자녀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 비록 처음에는 질문할 것이 없다고 해도 다음에 몇 차례 질문을 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자녀가 자신의 감정을 잘 정리하게 도와준다. 부모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에는 무리해서 대답을 하는 것보다는 충분히 의논해서 다음에 말해주기로 약속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전 배우자에 대한 원망이나 배신감, 또는 복수하고 싶은 욕구가 남아있더라도 그 사람이 자녀에게는 또 다른 부모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만약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협조가 어렵거나 자녀 양육에 대해 의견 차이로 갈등이 커진다면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나 변호사 등 전문가에게 중재를 의뢰하는 것이 낫다.

이런 중재를 통하여 부부의 갈등이 감소되면 부모의 이혼에 대한 자녀의 적응이 더 쉬워진다. 이혼 후에도 자녀의 양육에 관련하여 전 배우자와 교류를 할 필요가 생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녀를 위한 것이어야 하며, 부부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 자녀를 이용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점에서 자녀를 두고 이혼한 부부는 서로를 자신의 자녀를 양육하는데 필요한 동료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자녀를 맡은 사람은 가능하면 자녀를 맡지 않은 전 배우자도 자녀에게 관심을 보이도록 하는 것이 좋다. 대개 자녀를 맡지 않는 부모라도 자녀와의 접촉이 많을수록 자녀에 대한 책임감이 더 생기며 용돈이나 양육비 지원에도 너그럽기 때문이다. 전 배우자가 자녀의 인생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상대와 자녀에게도 확인시킬 필요가 있다.

따라서 자녀가 상대 배우자와 접촉하는 것을 제한하지 말고 오히려 권장하는 것이 좋다. 이런 점에서 자녀의 생일이나 전 배우자의 생일, 조부모의 기념일 등을 활용할 수도 있다. 만약 상대가 명백히 자녀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에는 자녀를 보호해 주기 위해서 교류를 막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것이 자신의 감정 때문인지 잘 판단해야 한다.

가장 나쁜 것은 자녀 앞에서 전 배우자와 양육 문제로 다투는 것이다. 이미 이혼의 충격을 겪고 있는 자녀는 자신이 마치 문제의 원인인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전 배우자에게 알릴 것이 있으면 어른끼리 직접 처리해야 하며, 자녀를 시켜 말하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자녀가 두 부모 사이에서 충성 갈등을 겪거나, 자신의 편리를 위해서 부모 사이에서 요령을 부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자녀들 중에서는 문제 행동을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이혼한 부모는 그것이 자신들의 이혼 때문이라고 자책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이혼은 누구에게나 힘든 경험이지만, 인생에 주어진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 애쓰며 살아가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박수룡 백상신경정신과의원 원장 sooryong@medimai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