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셰프와 친해지기] (7) 델리지오제 김형준 셰프훗카이도산 관자 등 최상의 재료 사용프렌치·이탈리안 섞인 코스 요리로 승부

(사진 우측 위쪽) 홋카이도산 가리비 관자살을 곁들인 고르곤졸라 치즈 리조또와 초콜릿을 곁들인 푸아그라 무스

초등학교 짝꿍도 찾아주는 인터넷이 인기 레스토랑의 셰프 정보를 모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요즘 세상에는 참 드물게 베일에 꽁꽁 싸여 있는 델리지오제 김형준 셰프는 그가 고수하고 있는 신비주의(?) 콘셉트에 맞지 않게 참 잘 웃고 싹싹한 사람이다.

하지만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예의 그 옹고집이 드러난다. 재료비 때문에 다투고 가격 책정을 놓고 싸우다가 못 참고 뛰쳐나와 직접 연 곳이 델리지오제다. 10년 넘게 쌓인 경력도 감추고 싶다. 주방 구석구석까지 꿰고 있는 이곳에서 만든 음식이 진짜 김형준의 음식이기 때문이다.

유난히 알려진 정보가 없다. 왜 그렇게 비밀에 싸여 있나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요 (웃음), 굳이 어디 출신이라고 알리고 싶지 않았어요. 이전에는 제가 운영에 참여를 못 하니까 마음에 차지 않는 부분이 많았거든요. ‘이 음식에 이 가격은 너무 비싸다’ 라든가 ‘이 재료 말고 다른 재료를 쓰자’ 같은 말을 할 수 없는 입장이니까 답답했어요.

그래서 나와서 여기를 차리게 된 거죠. 아내와 저, 그리고 아르바이트 생 한명 뿐이에요. 보조 요리사도 없고 저 혼자 모든 음식을 다 합니다.

오너 셰프 레스토랑이라고 해도 사장 혼자 요리를 다 하는 경우는 처음 보는 것 같다

처음에는 쉬지 않고 요리를 계속 하는 바람에 손목에 탈이 나 병원에도 다녀 왔어요. 오너라면 가끔 홀에 나와서 손님들과 대화도 나누어야 하는데 그걸 못 하는 게 아쉽기도 해요. 하지만 지금은 누군가와 분담하거나 맡기기 보다는 제가 다 하고 싶어요.

어떻게 보면 욕심인데, 재료 선정부터 주방 어디에 뭐가 있는지 까지 훤히 알고 있어야 직성이 풀린다고 할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손님에게 제 요리를 평가 받고 싶고요.

음식을 말하기 전에 위치 먼저 이야기하자. 장소와 음식이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

맞아요.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안 오죠. 서강대 앞은 5만원 짜리 코스가 팔리는 상권은 아니니까요. 약 2년 반 전에 나만의 레스토랑을 열기로 결심했을 때 빚을 내서 청담동이나 삼청동에 낼 수도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혹시라도 망하면 아무 데나 들어가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오픈했죠.

첫날에는 아니나 다를까 손님이 한 명도 없더군요. 처음에는 스파게티로 이름이 나기 시작했는데 점차 대학 총장님이나 청와대 등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코스 요리에 집중하기 위해 스파게티는 중단했지요.

코스를 보면 프렌치와 이탈리안이 섞여 있다

요즘에는 정통 프렌치를 표방하는 곳에서도 파스타를 함께 내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요리를 일찍 시작해서 우리 나라 1세대 셰프들에게 배웠는데 그 분들 중에는 정통 방식만이 최고이고 변화를 준 것들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들이 계셨어요. 그런 걸 보면서 나는 나중에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했죠.

그분들에게도 배울 점이 있고 젊은 유학파 셰프들의 창조적인 면도 배울 점이 많아요. 그들의 장점만을 모아서 제 요리에 녹여내고 있어요.

델리지오제를 말할 때 가격 대비 좋다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아마 그건 재료 때문일 거에요. 희귀한 재료를 쓰는 건 아니에요. 새우도 토마토도 다 익숙한 것들이지요. 하지만 다른 곳에서 먹었을 때와 맛이 다르다는 것을 손님들이 먼저 아세요.

고기 배달하러 업체에서 사람이 오면 슬쩍 물어봐요. ‘저기 호텔에서는 어떤 고기 써요?’ 라고. 그리고 무조건 그것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걸로 달라고 하죠. 그럼 제 마음이 뿌듯해요.

제가 원하는 건 이런 거에요. 비싸지만 비싼 값을 하는 음식. 손님들로부터 ‘가격이 싸지는 않지만 다른 곳 가서 이 정도 음식 먹으려면 더 비싸’ 라는 말을 듣고 싶은 거죠.

특별히 이 곳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재료가 있나

이곳에서만 볼 수 있다기 보다는 제가 자주 쓰는 재료가 몇 가지 있어요. 홋카이도 산 관자인데 우리 나라 해물도 좋지만 관자는 훗카이도 산이 최상품이에요.

요즘 환율이 올라서 가격이 1.5배로 뛰었지만 그래도 손님들이 계속 찾으니까 어쩔 수 없어요. 저희는 인건비가 안 들어가잖아요. 인건비와 매장 임대료에서 절약한 비용이 고스란히 재료비로 들어가는 거에요.

오너 셰프가 되면 따로 음식을 배우거나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적을 것 같다

예전에는 소문난 레스토랑을 찾아 다니면서 많이 먹어 봤는데 요즘에는 한식이나 일식, 중식 등 다른 장르의 음식들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편이에요. 푸아그라 같은 경우 워낙 기름지다 보니 그대로 조리하면 열에 일곱은 싫어해요. 그래서 무스 형태로 만들고 달콤한 초콜릿을 곁들이는 식으로 변형해서 인기 메뉴가 됐죠.

어떤 손님들은 저보다 음식에 대해 더 해박해서 가끔 지적을 하시는데, 그런 이야기들이 제 발전의 원동력이에요. 제일 무서운 손님은 어떤 손님인 줄 아세요? 아무 말 없이 나가서 다시는 찾지 않는 손님이에요.

지금보다 더 유명해지면 장소를 옮길 의향이 있나,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계획이 있긴 한데 밝히기가 좀 쑥스럽네요. 사실 서강대 앞이 이대나 연대 앞과 비교하면 유난히 활성화 되어 있지 않잖아요. 이 거리에 학생들이 즐겨 갈 수 있는 저렴한 비스트로 형식의 레스토랑을 몇 군데 열고 싶어요.

이미 개발돼서 복닥복닥 거리는 곳에 뛰어들기 보다는 이곳을 미개척지라고 생각하고 저희 레스토랑을 시작으로 변화가 일어났으면 해요. 너무 거창한가요? (웃음)

최고의 셰프가 사랑하는 최고의 재료
크레송


샐러드와 스테이크 가니쉬로 사랑 받는 크레송. 물냉이라는 토속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귀한 채소다.

채소류 중에서도 영양가가 풍부해 피부 미용, 혈액 노화 방지, 강장 효과 등의 역할을 하며 최근에는 항암 효과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김형준 셰프는 크레송을 애피타이저로 사용해 그 톡 쏘는 듯한 씁쓸한 맛으로 미각을 일깨운다. 약과 다를 바 없으니 굳이 요리에만 쓰지 말고 올리브 유를 떨어 뜨려 수시로 섭취하라고 귀띔한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