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국내 1호점 오픈 10주년 맞아 덕수궁 정관헌에서 재현

구한말 고종 황제가 마셨던 커피 맛은 어땠을까? 마셔본 이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괜찮네요!’ 정도. 일국의 황제가 마셨다는 커피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빈약한(?)’ 평가처럼만 들린다. 물론 ‘당시의 실제 커피’가 아닌 ‘재현된’ 커피 맛에 국한된 얘기다.

스타벅스코리아는 최근 서울 덕수궁 정관헌(靜觀軒)에서 100여년 전 고종 황제가 처음 마신 커피를 재현해 보는 기회를 가졌다. 1900년 러시아 건축가에 의해 세워진 서양식 건물인 정관헌은 고종 황제가 아관파천 시절 외교 사절들과 커피와 연회를 즐겼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적 기록들과 문헌, 다양한 자료들을 토대로 종합해 ‘고증된’ 고종 황제의 커피는 지금으로 치면 ‘드립(drip) 커피’의 전단계 수준으로 보여진다. 구체적으로는 원두를 갈아 그 가루를 물에 타서 설탕과 섞은 형태. 당시만 해도 지금의 에스프레소 머신이나 원두커피 기기가 없었을 시절이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재현된 ‘고종 황제 커피’를 만드는 방법도 무척 간단하다. 먼저 컵에 (아주 곱게) 간 커피를 넣은 다음, 컵에 각설탕을 (1~2개) 넣는다. 그리고는 뜨거운 물을 붓고 잘 저어 준 다음 2~3분 후 커피가 가라 앉으면 커피를 마시는 순서. 이들 동작과 과정을 아무리 크게 나눠도 4단계까지로 밖에 정리되지 않을 만큼 단순하다.

이를 지켜 본 청중들의 첫 반응은 ‘웃음’. “여기까지입니다.” 고종 황제 커피 재현을 마친 이병엽 스타벅스 홍보대사의 마무리 멘트가 나오자 대부분은 (싱겁다는 듯) 크게 웃었다. 생각 보다는 짧고도 간단한 시연에 놀란 듯, (속으로는) ‘애게! 겨우 고거야?’하는 눈치.

하지만 실제 당시의 커피 발전 단계를 되짚어 보면 충분히 납득이 간다. 유길준의 서유견문록에 따르면 커피가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은 중국을 통해서인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역사 기록상으로는 고종 황제가 우리 나라에서 가장 먼저 커피를 맛 본 인물로 적혀 있다. 고종황제는 러시아 베베르 공사의 처형인 독일계 러시아인 손탁의 권유로 커피를 처음 접하게 되었고 당시 세자이던 순종과 함께 커피를 즐겼다.

때문에 당시 국내에 갓 소개된 커피란 정황상 ‘지금처럼 훌륭한 커피 용품’의 혜택을 고종황제는 누릴 수 없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물론 고종 황제가 어떤 커피를 어떻게 마셨다는 기록은 지금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재현된 고종 황제의 커피는 러시아 전통식 커피와도 무척 가깝다. 러시아인들은 과거 전통적으로 커피 가루를 잔에 넣은 후 각설탕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은 다음 커피 가루가 가라 앉으면 마신다. 러시아인들 중에서는 지금도 이런 전통적인 방식으로 커피를 마신다. 때문에 당시 러시아와 밀접할 수 밖에 없었던 고종으로서는 러시아식 전통 커피를 접할 기회가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종황제 커피 만드는 과정

고종 황제가 마셨을 커피는 그럼 어느 나라, 어떤 품종일까? 이 역시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인도네시아 슬라웨시산 커피로 ‘낙찰’됐다. 당시 유럽, 특히 러시아에 커피를 전파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한 네덜란드 상인들이 식민지 인도네시아산 커피를 유통시켰을 확률이 가장 크다는 이유에서다. 슬라웨시는 수마트라, 자바 등과 함께 인도네시아에서 고품질의 커피를 다량 생산하는 커피 명산지로 손꼽힌다.

어쨌든 재현에서 완성된 고종 황제의 커피는 처음 보면 ‘탁해’ 보인다. 아무래도 뜨거운 물을 만난 커피 가루가 둥둥 떠 있기 때문. 심지어는 잔 안쪽 면에 달라 붙어 있는 커피 가루 덩어리도 눈에 띈다.

하지만 (그리 보기 좋지는 않은) 이들 커피 가루는 시간이 지나면서 잔 바닥으로 가라 앉는다. 이 때쯤이면 잔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커피도 맑기만 하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아까 보다는’ 커피가 식는다는 것. 제법 시간이 흐른 후 고종 황제 커피를 마셔 본 김탁환 작가는 ‘맛있네요’라는 인사말을 잊지 않았다. 대부분 커피 전문가들의 평가는 “진한 듯 하지만 부드러우면서도 생각 보다 깔끔하다”는 것이 중론.

스타벅스코리아가 고종 황제 커피를 재현하는 행사를 마련한 것은 국내 1호점 오픈 10주년을 기념하면서 일반인들에게 우리 커피의 역사를 체험해 보는 기회를 제공해 주려는 의도에서다. 여러 기록과 문헌을 찾아 보고 추적과 자문을 거쳐 가장 당대에 근접한 커피를 재현하기에 이른 것.

특히 고종황제 커피가 재현된 정관헌에서는 커피와 함께 ‘저자와의 대화’도 함께 진행, 커피와 문학, 그리고 문화와 역사를 같이 아우른다는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우리 문화재지키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스타벅스가 이이령 전 문화부장관, 외화 번역가 이미도씨 등을 초청, 역사의 현장에서 저자와 독자들이 만나 서로 대화를 나눌 기회를 마련해 준다는 것.

이석구 스타벅스코리아 대표는 “어떤 의미에서 현대인들은 옛날 황제나 귀족들이 마셨을 커피 보다도 더 맛있는 커피를 지금 맛보고 있는지도 모른다”며 “단순히 커피를 상품으로서만이 아닌 커피를 통해 그 이상의 문화와 역사를 소비자들이 느꼈으면 한다”고 촌평했다.



글ㆍ사진 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