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셰프와 친해지기] (8) 오키친 스스무 요나구니뉴욕서 25년간 프랑스 요리 경험으로 한국 최고 요리사들 키우고 파

뉴욕에서 25년 간 프랑스 요리를 한 일본인의 감독 아래 만들어진 한국 조리사들의 음식. 이 퍼즐 같은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오키친의 음식에는 국적이 없다. “잘 만든 음식은 튼튼한 집처럼 기둥이 훌륭해야 한다” 라고 말하는 스스무 요나구니의 신념이 있을 뿐이다.

뉴욕에서 돌아와 요리 학교를 운영하는 한국인 아내를 도와 제자 양성에 열을 올리던 스스무는 칭찬 일색인 한국의 레스토랑 리뷰를 무색하게 만드는 가감 없는 비평으로 국내 요식업계에 잔잔한 반향을 불러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2006년 말 오키친을 오픈하자 세간의 관심이 쏠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평한 당신은 얼마나 잘 하나 보자’라는 시선에 그는 당당하고 확신에 찬 음식으로 답하고 있다.

오키친을 연 지 어느덧 2년이 넘었다

근 3년이 되어간다. 처음에는 가르치는 학생들이 실제로 요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지금은 가회동 오키친을 접고 이태원 점만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의 실습을 위한 공간이라면 간혹 시행 착오도 있을 수 있겠다

오키친의 음식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일단 내가 인정하지 않는 음식은 테이블로 나가지 않기 때문에 손님이 불만족하더라도 그것은 스스무의 음식에 만족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또 지금 주방에서 일하는 요리사들은 현재 배우는 중인 학생들이 아니고 졸업을 한 요리사들이다.

나는 이들이 유명 레스토랑의 요리사들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한국 최고의 요리사들을 키우는 것이 내 꿈이자, 요즘 나의 가장 큰 기쁨이다.

제자들이 만든 음식이 성에 차지 않을 때도 있나

당연히 있다. 마감이 제대로 안돼 있거나 맛에 비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도 불합격이다. 다른 것이 모두 만족스럽더라도 가치관이 들어가 있지 않으면 그 음식은 의미가 없다. 기준에 못 미치는 음식이 손님의 테이블에 나간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그럼 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만 꼽으라면 무엇을 선택하겠나

기본이다. 음식은 집과 같다. 굵고 실한 줄기가 있어야 가지와 꽃의 화려함도 의미를 가진다. 육수 내기, 소스 만들기 같은 기본적인 것들이 손에 익지 않은 요리사는 아무리 화려한 음식을 내더라도 자격이 없다.

만약 감기에 걸려 맛을 볼 수 없다면 그날은 어떻게 요리할 셈인가? 마치 운전처럼 머리로 생각하지 않아도 자신의 손이 이미 최고의 맛을 알고 있어야 한다. 반복을 통해 기본기를 갖추고 여기에 자신만의 창의성을 더해 새로운 음식을 내놓을 줄 알아야 한다.

(우) 직접 기른 민트와 깻잎을 얹은 고등어 파스타와 으깬 완두콩과 생크림으로 만든 완두콩 프랑

요리사의 창의성은 타고난다고 생각하나

최근 많은 과학 잡지에서 재능이라는 것은 애초에 없다고 하더라. 결국 요리사의 창의성이라는 것도 노력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창의적인 요리라는 것은 이제까지 본 적도 없는 음식을 말하는 게 아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창의적이고 요리사의 개성을 실은 음식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들으면 나는 재료를 보라고 말한다.

요리사는 재료가 원래 가진 맛이 더 확실하게 드러나도록 돕는 사람이다. 도봉산 자락에 직접 농장을 운영하며 유기농 채소들을 기르고 새벽에 노량진 시장에 가서 해산물을 고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고의 요리사는 캐비아, 트뤼플(송로버섯), 푸아그라를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다. 감자 하나를 가지고 자기 요리를 보여주는 사람이 진짜 요리사다.

젊은 요리사들의 창의성이 오키친의 음식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나

오키친의 메뉴는 2~3일에 한번 꼴로 바뀐다. 이곳에는 거리를 지나가다 들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이 단골 손님이기 때문에 자주 오더라도 늘 새로운 음식을 맛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음식에는 맛뿐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의 측면도 있다. 지루하지 않게, 먹는 사람으로 하여금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 당연하다.

애피타이저는 특히 예쁘게 장식하고 향에도 신경을 쓴다. 코스의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재료가 나가지 않는 건 기본이고 순서도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박진감이 있게 배치한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디저트는 클라이막스다운 화려함이 있어야 한다.

음식도 음식이지만 인기 레스토랑을 거침없이 비판한 글로도 유명하다. 한국의 레스토랑에 대해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느낌을 받았나

그렇지 않다. 인상적인 곳도 많았다. 다만 처음 잡지에 나와 있는 리뷰를 보고 찾아간 레스토랑에서 리뷰와는 너무 다른 음식을 접하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 라고 생각했다. 솔직하게 비판함으로써 한국 식문화 수준이 한 단계 발전한다면 그것이 내가 줄 수 있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일반 잡지들은 섣불리 나쁜 평을 쓰기가 어렵고 온라인 블로거들의 평은 단순히 맛있다, 맛없다에 그치고 있다. 차에 비유한다면 외관만 보는 사람들과 달리 나는 후드를 열고 안을 들여다 보는 격이다. 어떤 소스를 썼는지, 재료들의 콤비네이션은 어떤지, 요리사의 크리에이티브는 어떻게 반영이 되었는지…주방에 1분만 서 있어도, 아니 냄새만 맡아도 그 식당의 수준을 알 수 있다.

앞으로는 어떤 계획이 있나. 기회가 된다면 다시 레스토랑 비평을 할 의향도 있는지

물론 기회가 된다면 언제라도 하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어서 다른 계획이 없다. 다음 일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시들해지면 그때 생각해보려고 한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