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쓰는 '사랑과 전쟁'

우리나라의 많은 부모들은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것이 조상에 대한 자손으로서의 책임을 다 하는 것이며, 자식을 결혼시키는 것이 자녀에 대한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 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자녀의 교육에 최선을 다하며 형편에 과하더라도 자녀의 혼수와 주택 자금까지 준비하려 애쓴다. 나아가 자녀의 결혼 후에도 할 수만 있다면 손자의 양육에까지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나라 부모들의 마음이다.

부모로서의 책임감이 이처럼 크다 보니 자녀의 결혼에 대한 관심이 많을 수 밖에 없는데, 대개의 부모들은 자녀의 이성교제나 배우자 선택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래서 성년이 된 자녀에게도 섣불리 이성교제를 시작하지 않기를 바라다가, 결혼 적령기가 지나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남들 연애할 때 너는 뭐했느냐?’고 탓하며 ‘좋은 짝’을 찾아주기 위해 애를 쓴다.

어떤 면에서는 자녀가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을 가지는 것도 ‘좋은 배필’을 만나기 위한 준비과정으로 생각한다.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자녀에게 성형수술이나 치과교정을 해주는 것도 건강뿐 아니라 시집 장가를 잘 보내기 위한 경우도 있다.

이러한 부모의 과도한 관심은 자녀의 결혼 생활에 대한 간섭으로 이어져 자녀들의 부부갈등의 큰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물론 부모의 관심이 자녀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비난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관심이 주로 물질적인 것이나 외형적인 것에 편중되어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를 자녀에게 충분히 교육을 시키지 못하는 편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급격한 경제적 성장과 침체를 겪는 동안 누구나 사는 것은 대체로 비슷한데 역시 경제적 곤란이 가장 힘들더라는 경험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또 빠른 사회문화적 변화와 정치적 혼란을 거치면서 부모 자신이 건전한 가족관을 경험하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신체적으로도 건강하고 경제적 여유가 생겼지만 정작 그 몸과 그 돈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모른다면, 그 건강과 재산은 의미가 적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자신과 남에게 해롭게 쓰일 수도 있다. 이는 마치 인류가 과학과 기계 문명을 발달시켰으나 그것을 어떻게 선용해야 하는지를 몰라서 인류를 살상하고 자연을 파괴하였던 사실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건전한 가치관이 밑받침이 되지 않으면 양성 평등이 무분별한 성 개방으로, 개인의 권익 존중이 향락적 무질서로, 여성의 지위향상이 이기적인 치맛바람으로, 자유로운 경제활동의 기회가 투기와 탐욕으로 이어지기 쉽다.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서는 국가적 홍보사업보다는 가정의 가치관 교육이 효과적이다.

자녀에게 건전한 삶과 행복한 가정생활을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부모들 자신이 모범이 되어야 한다. 이는 반드시 ‘사회적인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대외적으로 높은 명성을 누리든 물질적으로 힘들게 살든 부모 자신이 어떤 자세로 살려고 애쓰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자녀는 부모가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서 세상에 대한 막연한 원망이나 일확천금의 꿈을 버리고 삶에 대하여 건강한 긴장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을 배울 것이다.

또한 부모가 자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주 중요한데, 이 때는 일방적인 훈계보다는 쌍방적이고 지속적인 대화의 자세가 중요하다. 즉 부모가 정답을 알고 있다는 자세를 벗어나 자녀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도 들어야 한다. 물론 부모도 자신의 경험과 의견을 솔직하게 표현하되 어디까지나 하나의 의견이라는 데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대화는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렇게 되려면 당연히 부부가 서로를 존중하고 있어야 할 것인데, 이런 가정의 자녀라면 행복한 결혼생활에 절반은 이미 성공하고 있는 셈이다.



박수룡 백상신경정신과의원 원장 sooryong@medimai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