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이징 vs 드라이 에이징 체험기] 숙성방법따라 달라지는 풍미전문 스테이크하우스 문 열어

1-드라이 에이징한 고기로 만든 스테이크
2-?? 에이징한 고기로 만든 스테이크
3-드라이 에이징 중인 고기
4-?? 에이징 중인 고기

체험이라는 표현이 맞을 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한국에서 제대로 된 드라이 에이징 스테이크를 맛 보기가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다소 자신없게 시작하는 이유는 일부 레스토랑에서 이미 드라이 에이징 스테이크를 내고 있기도 하고, 또 알려지지 않은 고기 장인이 산 속 어디에선가 숙성 기술을 개발해 아는 사람들끼리 나눠 먹고 있을 수도 있다.

다만 자체 숙성고를 갖추고 온도, 습도 조절해가며 직접 스테이크에 자기네 숙성 노하우를 실어 파는 곳은 없었다는 얘기다.

에이징은 그러니까 숙성이다. 스테이크의 숙성에 대해서 논한다는 것은 이 시점에서 아주 적절하고 필요한 일이다. 스테이크에 대해 대중에게 첫 번째 알려진 지식이 웰던, 미디움 등 굽기라면 이제는 숙성으로 눈을 돌릴 시점이 온 것이다.

소를 도축한 후 굽기까지 어떤 환경에서 어떤 방법으로 보관하느냐에 따라 맛은 완전히 달라진다. 숙성 방법은 크게 ? 에이징과 드라이 에이징으로 나뉜다. 얼마 전 오픈한 신사동 Goo STK 528에서 그 차이점을 직접 보여주었다.

“썩은 고기 아니냐구요?”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정면 2층에 자그마한 숙성고가 보인다. 한쪽 보드에는 USDA 프리미엄 쇠고기만을 취급한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숙성에 신경 쓰는 곳 치고 고기 질에 집착하지 않는 곳은 없다. 숙성을 하면 할수록 고기의 품질이 더 확연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질 나쁜 고기는 공 들여 숙성할 가치가 없고 좋은 고기는 제대로 숙성할수록 그 가치가 수직상승한다. USDA 프리미엄 급은 미국 쇠고기 생산량의 3%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최고급 스테이크 하우스나 호텔에 거의 전량이 들어가는 고기다.

“숙성고에 들어가 보면 안되나요?”

거대한 고기 덩어리에서 기름을 떼어내던 주방장이 “그러시라”며 안내한다. 노란 불 하나 달랑 켜진 서늘한 숙성고에는 드라이 에이징과 ? 에이징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앞쪽 비닐팩에 꽁꽁 싸인 고기가 ? 에이징 되고 있는 거라면, 저쪽 구석에 거무스름하게 썩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저것이 바로 드라이 에이징 되고 있는 고기이리라.

체험기이자 비교 분석기라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드라이 에이징에 좀더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드라이 에이징은 전통의 숙성 방법이자 복고풍 열풍을 타고 돌아온 가장 ‘핫’한 트렌드이기 때문이다. 진공팩이 개발되기 전 사람들은 고기에 아무런 포장을 하지 않고 공기 중에 걸어 숙성시켰다.

온도와 습도를 제대로 맞춰주지 않으면 고기가 금방 부패하고 말기 때문에 상당히 번거로운 작업이었다. 그 후로 진공팩이 개발되면서 ? 에이징의 시대가 열렸다. 신선도도 높아지고 고기 손실율도 줄어들었으며 무엇보다 숙성 기간이 짧은 장점들 때문에 대세를 형성했지만 곧 이전의 고기맛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드라이 에이징 특유의 삭혀진 맛을 ? 에이징이 흉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드라이 에이징은 숙성 기간에 따라 2주차, 3주차, 4주차까지 있는데 오래 숙성시킬 수록 근섬유에서 수분이 날아가면서 향과 맛이 응축되는 효과가 있다. 근육 내 글리코겐이 분해되면서 달콤한 우유 맛이 진해지기도 하고 자가소화작용에 의해 근섬유 조직이 끊어지면서 텐더라이징이 이루어진다.

이런 작용들로 인해 복합적인 맛이 형성되는 데 반해 ? 에이징은 좀 더 순수한 고기 맛에 가깝다. 이것저것 섞인 맛이 아닌 전형적인 고기 맛이랄까? 풍미에 대한 호불호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철저하게 갈리기 때문에 무엇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숙성고에서 나와 스테이크를 기다렸다. 똑 같은 부위(립 아이)를 각각 ? 에이징과 드라이 에이징을 거쳤을 때 과연 어떻게 다른 맛이 날까. 금방 끝날 줄 알았던 기다림은 의외로 30분이나 이어졌다. 4.5cm를 넘는 스테이크 두께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구우면서 육즙이 고기 속으로 배어들어가야 하는데 스테이크 두께가 얇으면 육즙이 다 빠져버려요.” 지루한 기다림을 위로라도 하듯이 건축가이자 오너인 김현석 사장이 다가와 말을 붙였다.

“드라이 에이징 스테이크는 마니아들이 주로 찾아요. 일반적으로 여기 스테이크 잘한다면서요? 라고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는 ? 에이징을 권해주죠. 자칫 좀 심하게 드라이 에이징 된 고기는 이거 썩은 고기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지방이 산화되면서 고기로 들어가 맛이 나는 셈이니 한 마디로 썩은 향이 맞아요. 뼈가 붙어 있으면 더 좋죠. 뼈의 맛 성분까지 고기로 들어가니까. 하지만 국내에는 쇠고기 수입 기준 때문에 뼈가 붙어 있는 고기는 거의 안 들어와요.”

순수 고기 맛 VS 복합적 풍미

고기가 나왔다는 말에 고개를 돌렸다. 크기도 색깔도 두께도 다른 두 개의 스테이크가 앞에 놓였다. 소스는 없고 머스타드와 홀스 래디쉬가 곁들여졌다.

“이쪽 먼저 드세요”

종업원이 훨씬 더 두껍고 촉촉해 보이는 스테이크를 가리켰다. ? 에이징이다. 왜냐고 묻자 드라이 에이징이 더 맛이 강하기 때문에 먼저 먹으면 맛이 묻혀 버릴 수 있단다. 양념 치킨보다 프라이드 치킨을 먼저 먹어야 하는 것과 비슷한 건가? 썰기도 버거울 정도로 두꺼운 스테이크를 덥석 무니, 아, 드라이 에이징에 은근히 집중돼 있던 생각이 미안해질 정도로 풍성하게 밀려들어오는 육즙이 환상적이다.

오래 구워 바삭해진 겉 표면은 소금과 후추로 양념돼 있어 야들하고 담백한 속살과 잘 어울린다. 손님들이 보통은 먹지 않는 쇠기름까지 다 먹어 치운다는 말이 새삼 실감 난다.

반면 드라이 에이징은 색이 좀 더 연하고 무엇보다 두께가 반 정도로 얇다. 드라이 에이징 과정에서 고기 손실율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 숙성 중에도 수축이 일어나고 숙성 후에는 거무스름하게 말라버린 겉껍질을 다 잘라 낸다 – ? 에이징 스테이크와 같은 두께로 내려면 가격이 너무 높아지기 때문이다. 씹는 순간 치즈 맛이 강하게 났다. 그것도 마스카포네 치즈처럼 크림 향이 아닌 블루 치즈 같은 꼬릿한 맛이다.

아몬드 향이 살짝 지나가기도 하고 흙 냄새도 비슷하게 나는 것 같다. 먹는 내내 눈을 굴리다가 갑자기 와인이 마시고 싶어졌다. 복잡다단한 맛이 와인과 통하는 면이 있을 것 같다. 주인은 와인 리스트도 갖추고 있지만 맥주와도 훌륭하게 잘 어울린다며 영국 Fuller’s의 런던 프라이드를 권해준다. 살짝 단단한 식감도 특징적이다. 아무래도 수축 때문인 것 같다. 오래 구우면 질기고 뻣뻣해지므로 미디움 이상의 굽기는 의미가 없어진다고 한다.

드라이 에이징으로 갔던 나이프가 다시 ? 에이징으로 옮겨진다. 한결 부드러운 육질, 익숙한 맛. 그날 새로운 맛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나는 ? 에이징에, 일행은 드라이 에이징에 한 표를 던졌다. 사실 더 맛있다라는 평가가 무의미할 정도로 두 스테이크의 매력은 완전히 다른 선상에 있었다. 앞으로 자장면이냐 짬뽕이냐, 물냉면이냐 비빔냉면이냐 외에도 또 하나 고뇌할 거리가 생긴 것 같다.

이런 고민 거리를 안겨주는 스테이크 하우스들이 더 생기는 건 물론 대환영이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