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쓰는 '사랑과 전쟁'

자녀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부모가 만들어 줄 수는 없지만 그 준비를 시켜줄 수는 있다. 자녀가 어떠한 배우자를 자신의 마음에 들어 하는지는 각자의 성격적 특성에 따른 것이므로 부모가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다.

그러나 자녀가 어떤 가치관을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는지는 부모의 영향에 크게 좌우된다. 이는 우리가 하는 많은 행동들은 상황에 따라 자신이 선택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부모의 생활태도에서 배운 선택기준이 자신도 모르게 이미 내면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결혼생활에 큰 영향을 주는 가치관들 중에 하나가 경제적 태도이다. 요즘엔 누구나 경제적 여유를 중시하지만, 결혼 전부터나 결혼한 후에 빠른 부(富)의 축적을 목표로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노후를 대비하는 것도 좋지만 그 과정에서도 여유롭게 살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다른 돈을 아껴서라도 유명 브랜드의 제품을 구입하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런 것을 못마땅해한다. 만약 이런 남녀가 결혼을 하게 되면 계속되는 불화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들의 이런 경제적 태도는 각자의 개성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부모의 결혼생활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물론 그 중 일부는 부모의 경제적 태도를 그대로 닮아온 경우도 있고 반대로 부모의 태도를 못마땅해하여 반대의 경제적 태도를 가지게 된 경우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의 남녀가 연애 때는 자신과 다소 반대되는 성향을 가진 이성에게 끌리지만, 결혼 후에는 자신의 태도대로 살고자 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인생의 경험이 많은 부모들은 자신이 지켜 살아온 신조가 비록 자신에게는 도움이 되었지만 누구에게나 반드시 옳은 것만은 아니며, 세상에는 또 다른 삶의 방식이 많다는 점도 함께 가르치는 것이 자녀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줄 수 있다.

자녀의 행복에 끝없이 애쓰는 우리나라의 부모들에게 특히 아쉬운 점은 장성한 자녀들을 경제적으로 독립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부모 자신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경우에도 자녀에게서 물질적인 도움을 기대하지 않는 것을 포함한다. 물론 생면부지의 궁핍한 사람에게도 물질적 도움을 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므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혼기 자녀에게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그다지 큰 잘못은 아니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도움이 항시적인 것이 되어버리면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면서 키워가야 할 자녀 부부의 행복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려움을 겪는 자녀에게 당장의 금전적 도움을 주기보다는 부모 자신들이 과거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왔는지를 평소의 삶이나 잦은 대화를 통해서 알려주는 것이 시간이 지난 후에 더 큰 보람으로 돌아올 것이다.

아울러 부모들은 자녀에게 당장의 경제적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는 부부의 화목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잘 살면서 불화하는 것보다 부유하지는 못해도 부부간에 신뢰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삶인지를 체험적으로 실천해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자녀가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기를 바라기 전에 부모 자신이 과연 자녀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불행히도 부모가 경제적 여유를 가지지 못하여 사랑하는 자녀를 불편하게 하고 그래서 설령 자녀가 부모에게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더라도, 그 자녀는 머지않아 자신의 부모를 자랑스럽게 여기게 될 것이라 믿는 것이 좋다. 부모에게서 돈을 물려받은 자녀 부부가 그 돈을 손자 대에까지 물려줄 수 있을지는 회의적인 데 비하면, 부모의 옳은 가치관과 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행복해하는 모습은 자자손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훨씬 높다.



박수룡 백상신경정신과의원 원장 sooryong@medimai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