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세, 위스키 라벨 첫 테이프… 허영만, 와인 콜레보레이션 도전

한국을 대표하는 두 만화가, ‘식객’의 허영만과 ‘공포의 외인구단’을 쓴 이현세.

만화가로서 최고의 경지에 올라와 있는 두 거장은 최근 서로 ‘경쟁’을 벌이진 않았다. 하지만 한 사람은 ‘뜻하지 않게’ 한 발 앞섰고, 다른 한 사람은 ‘본의 아니게’ 한 발 늦었다. 그것도 서로가 의식하지 못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사이에. 다행히도 별로 기분 상할 일은 아니다.

요리 만화 ‘식객’을 통해 맛의 대가로 잘 알려진 허영만 화백은 최근 ‘공식 석상에서’ 이젠 ‘와인의 라벨을 그려 볼 만 하다’고 언급했다. LG상사 자회사인 트윈와인과 함께 ‘와인과 음식의 매칭’ 작업에 나서고 있는 허 화백으로서는 와인에 관한 한 가장 ‘공격적인 스탠스’를 보인 것. 해외에서 유명 화가나 예술가들이 명품 와인의 라벨을 그려왔다는 점도 자극이 됐다.

그리곤 며칠 후 열린 위스키 ‘임페리얼15 리미티드 에디션’의 런칭 발표장. 뜻 밖에도 이현세 교수(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 교수가 자리를 함께 한 이유는 신제품 위스키의 출발을 축하만 해주기 위해서? 아니, 그가 직접 그린 위스키 병의 라벨 때문이다.

그래서 이현세 교수는 만화가로서 ‘국내에서 최초로 위스키 병의 라벨을 그린 작가’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허영만 화백으로서는 ‘술의 종류는 약간 다르지만’ 라벨 작품을 그리는 데 있어서 만큼은 ‘스타트’를 놓친 셈이 된 것. 그렇게 이현세 교수는 국내 주류업계에서 ‘로컬 브랜드 병 라벨을 장식한 첫 주인공’이라는 영예를 안았다.

이현세 교수가 병 디자인에 참여한 제품 ‘임페리얼 15리미티드 에디션’은 어쨌든 국내 만화가와 위스키의 최초 만남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이미 해외에서는 와인이나 샴페인은 물론 위스키 분야에서도 예술가들이 라벨 디자인 작업에 참여하는 콜래보레이션(협업 Collaboration) 바람이 거세게 불어온 터. 국내에서는 이제서야 첫 걸음을 내딘 셈이다.

만화가 이현세와 임페리얼 간의 협업은 임페리얼의 탄생 1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히 기획됐다. 위스키 업계의 리더인 페르노리카 코리아가 출시 15주년을 기념해 스코틀랜드의 최고급 원액만을 사용한 15년산 한정판 위스키를 만들고 라벨 작업을 이현세 교수에게 의뢰한 것.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위스키 임페리얼을 보면서 황제를 떠올렸고 그 이미지는 용으로 이어졌습니다. 또 럭셔리, 프리미엄의 가치를 표현하기 위해 메탈색을 사용했죠. 지난 15년간 최고의 자리를 지켜온 리더십과 개척자 정신, 황제의 위용을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15년간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임페리얼은 그래서 대한민국 대표 위스키라고도 불린다. 1994년 국내 최초의 프리미엄 위스키로 탄생, 국내 최초 100만 산자 돌파, 국내 최초 위조 방지시스템 개발, 세계 최초 3중 위조방지캡 도입 등 국내 위스키의 역사를 만들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이번 리미티드 에디션 또한 시바스 브라더스의 마스터 블렌더가 블렌딩한 슈퍼 프리미엄 스카치 위스키로 태어났다. 아쉬운 점이라면 7, 8월 두 달만 생산되는 한정판이라는 것. 유통 또한 ‘리미티드’란 이름처럼 제한돼 일반 업소와 가정용으로는 유일하게 롯데백화점에서만 판매된다. 뜻밖에도 출고가는 12년산(500ml)과 동일한 가격인 2만2990원으로 책정됐다.

이현세 교수 또한 로컬 브랜드 라벨 1호 작가로서 ‘잔잔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제가 만화계에 입문한 지 30년인데 이런 작업은 처음 해봅니다. 만화 인생 30년 중에서 가장 잊지 못할, 두고 두고 기억할 만한 매우 신선하면서도 재미있는 도전이었습니다. 제가 술을 워낙 좋아하는데 ‘결국 좋아하면 만나게 되는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당대 최고 예술가와의 콜래보레이션 작업에 대해 페르노리카 코리아 또한 무척 고무돼 있다. 프랭크 라뻬르 사장은 “변화와 혁신을 선도해 온 임페리얼이 고객의 변함없는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리미티드 에디션을 선보이게 됐다”며 “이번 제품을 계기로 매년 혁신적이고 개척적인 아이디어가 반영된 제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좌) 만화가 이현세 교수가 페르노리카 코리아의 프랭크 라뻬르 사장(오른쪽), 찰스 드 벨르네 마케팅전무와 함께 병 디자인에 참여한 제품 ‘임페리얼 15리미티드 에디션’을 들어 보이고 있다. (우) 서울 광장을 배경으로 전시된 임페리얼 15리미티드 에디션
(좌) 만화가 이현세 교수가 페르노리카 코리아의 프랭크 라뻬르 사장(오른쪽), 찰스 드 벨르네 마케팅전무와 함께 병 디자인에 참여한 제품 '임페리얼 15리미티드 에디션'을 들어 보이고 있다. (우) 서울 광장을 배경으로 전시된 임페리얼 15리미티드 에디션

이현세 교수도 “제가 디자인한 리미티드 에디션을 많은 이들이 사랑하게 되면 기쁜 일이 될 것 같다”며 “리더의 자리에 오르고 그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다시 한 번 느꼈고 저 또한 기억되는 작가로 남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허영만 화백은 비슷한 시기 와인과 꽃게, 아귀와의 매칭 작업을 벌이며 이슈를 불러 일으켰다. 와인과 한식의 맛을 조화시키려는 노력이 가끔 시도되지만 꽃게찜이나 아귀찜 같은 메뉴와 아우르는 것은 꽤 색다른 접근.

“한 여름 무더위를 앞두고 입맛을 잃기 쉬운 요즘 여름 보양식 보다 더 입맛을 재촉하는 꽃게와 아귀를 떠올렸어요. 제철 맞은 꽃게와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의 아귀도 괜찮잖아요. 물론 내가 먹고 싶은 것이기도 하고요.”

허영만 화백은 특히 꽃게찜과 아귀찜 같은 재료를 두 가지 요리로 주문했다. 하나는 양념을 곁들였고 나머지 하나는 양념 없이 식재료 본연의 맛과 향을 살린 방식. 양념이 없는 찜 요리에는 이탈리아 와인인 예르만 샤르도네와 예르만 피노 그리지오, 뉴질랜드산 실레니 에스테이트 쇼비뇽 블랑을 그는 추천한다.

물론 붉은 양념이 가미된 꽃게와 아귀찜 요리에는 뉴질랜드산 실레니 에스테이트 피노누아, 스페인의 타페냐 가르나챠, 남아공 와인인 맨 빈트너스 피노타지 등 레드 와인을 얹었다. “매콤한 양념이 뿌려지면 아무래도 화이트 와인 보다는 우아한 풍미를 지닌 가벼운 레드 와인이 더 맛있죠.”

허영만 화백은 “같은 재료라도 조리법에 따라 다양한 와인과 매칭할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고 촌평했다. 하지만 허영만 화백은 아직 국내에서 와인 분야에 관한 한 ‘첫 라벨 콜래버레이션 작가’가 될 기회와 시간을 아직 남겨두고 있다. 어쩌면 ‘의무나 책임(?)’까지도.



글 사진 박원식기자 parky@hk.co.kr